‘친교와 화해, 정의와 평화’에 헌신
수도자들 한데 모여 구체적 연대 논의 “큰 의의”
소외된 이 위한 ‘관상적 예언자’로서 투신 다짐
4월 24일~5월 4일 경기도 의왕시 아론의 집에서 개최된 제14차 AMOR(아몰, Asia Oceania Meeting of Religious Women, 아시아 오세아니아 여성 수도자 모임) 회의는 100여명이 넘는 피부색이 다른 수도자들이 국경을 넘은 연대 의지를 표명하는 자리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특히 ‘구체적 연대 행위를 통해 아몰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일에 투신한다’고 결의한 것은, 아시아 오세아니아 교회의 연대의 초석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긍정적 평을 얻고 있다.
회의 마지막 날 수도자들은 4가지를 ‘믿겠다’고 했고, 6가지에 ‘투신하겠다’고 선언했다. △여성으로서 축복받았음을 믿겠다고 했고 △연대와 동반자 관계를 이루게 하는 육화의 영성을 믿는다고 했다. 또 △소외된 이들에게 평화를 전하는 관상적 예언자로 불림 받았음을 믿는다고 했고 △성령이 현존이 마리아와 함께 하셨듯이 우리 안에도(여성 수도자들 안에) 머무심을 믿는다고 했다.
이처럼 수도자들이 사회적 투신을 강조하기에 앞서 ‘축복받은 여성으로서 관상적 예언자로 불림 받았음을 믿는다’고 고백한 것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마리아와 함께 하느님과 성령의 힘으로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것은 봉헌자로서의 신원을 재확인하려는 의지로 풀이된다. 오늘의 맥락 안에서 아시아에서 수도자로 살아가는 신원과 사명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이 고민 후 수도자들은 ‘무릎을 짚고 일어서며’ 6가지에 투신하겠다고 선언한다. △여성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일 △서로 다른 인종, 종교, 신분, 정치적 이념, 사회 경제적 조건의 사람들 사이에 친교와 화해의 유대를 형성하는 일 △성경과현대 신학에 근거하여 마리아를 재발견하는 일 △정의와 평화를 이룩하는 일 △교회와 사회, 전체 창조물 안에서 올바른 관계를 형성하고 그것을 위한 일 △구체적 연대 행위를 통해 아몰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일이 그것이다.
이 6가지 ‘약속’은 크게 친교와 화해, 정의와 평화에의 헌신으로 요약된다. 아시아 오세아니아 특유의 지리적 역사적 종교적 배경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는 대목이다. 만약 유럽 수도자들이 모였다면 이런 종류의 약속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수도자들은 다양한 종교 문화적 전통을 가진 아시아인 만큼 친교와 화해에 무게를 두었다. 특히 정의와 평화에 대한 투신은 아시아에 아직도 불합리와 불평등, 비평화가 잔존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현실에 대한 적극적 투신이 바로 봉헌자의 역할 중 하나임을 선언한 이 약속들은 ‘침몰하는 배에서 물을 퍼내는’실천적 노력에 대한 열의를 표현한 것이다.
하지만 6가지 ‘약속’ 그 자체가 이미 말하고 있듯이, 이 같은 약속들이 현실화 되기 위해서는 우선 ‘구체적 연대 행위를 통해 아몰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 오세아니아 수도자들의 연대 없이 이번 약속들은 단순한 ‘말 잔치’에 그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연대는 ‘같은 뜻을 갖고 자주 모이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이번 회의도 모임 그 자체로 가장 큰 의미를 지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AMOR 회장 마리아 빈센트(Mary Vincent d’ Souza, 활동갈멜수녀회, 인도) 수녀는 이번 회의를 정리하는 자리에서 “모든 아시아 수도회 대표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중요한 의미가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만남’은 ‘인식의 확대’를 가능하게 한다. 이번 회의에서 다양한 나라의 수녀들이 돌아가면서 주도한 미사성제와 창의적 기도예식은 다양성과 보편성을 함께 체험하도록 도왔다. 또 다양한 대화를 통해 각 나라의 걱정과 희망을 나눴다. 수도자들은 3일 동안 이뤄진 현장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사회와 한국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관심사)과 이 문제들을 한국의 수도자들이 어떻게 예언자적이며 관상적으로 응답하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모임’은 인식의 시냇물이 모여 강물이 되고 바다가 되는 나눔의 신비를 체험하는 장이기도 했다.
이 같은 모임과 나눔, 연대는 장기적으로 정체성의 확립으로 이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오늘의 맥락안에서 아시아 수도자로서의 신원과 사명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동시에 서로 경청하고 격려하며 지지와 결속력을 다지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번 회의기간 중 이주노동자 시설을 둘러본 한 방글라데시 수녀가 말한 것이 어쩌면 이번 회의의 전망을 밝혀 줄지도 모른다.
“지금까지는 다른 나라 수도회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위해 노력하고, 무엇을 향해가는지 몰랐습니다. 각 나라들의 고민도 알지 못했습니다. 이번 회의를 통해 다양한 고민들과 그 고민을 극복하려는 모습을 보면서 나 자신도 크게 성장했음을 느낍니다. 나눔이 이렇게 소중한 것일 줄 몰랐습니다. 나눔으로 성장한 각 개인 수도자들은 연대를 통해 투신으로 나아가고, 그 투신은 하느님 나라 건설을 앞당길 것입니다. 이번 모임을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해 노력해 주신 모든 한국 수도자 분들께 두 손모아 감사 기도를 드립니다.”
사진설명
아몰 참가 수녀들이 폐막미사에서 ‘우리는 소외된 이들에게 하느님의 연민과 치유, 평화, 조화를 전하는 관상적 예언자로 불렸음을 믿는다’는 내용의 성명을 함께 낭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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