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연장의 욕망이 생명을 파괴”
오늘 우리는 생명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다. 오늘의 생명위기는 생명의 연장을 가능하게 만든 생명기술이 가져온 역설적인 사태이다. 생명이 생명연장 기술에 의해 위협받고 있다는 역설은, 문명 그 자체의 역설이다.
동아시아 생명지혜의 원천인 노자(老子)는 문명에 내재한 그런 역설을 직시한 바 있다.
“문명의 이기(利器)가 많아질수록, 기술이 발달할수록 세상은 어지러워진다.”
욕망을 버려라
생명에 관해서도 다르지 않다. 생명연장을 위해 조작을 가할수록, 생명기술이 발달할수록 생명은 더욱 큰 위기에 빠진다. 기술의 발달로 초래된 생명위기는 사람들의 생명욕망이 극대화된 결과에 다름 아니다. 생명욕망이 생명을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노자는, “마음을 깨끗이 하고 욕망을 버리라”고 권유한다. “생명 그 자체의 근원으로 돌아가 피상적인 욕망 추구를 자제하라”고 권유한다.
이런 권유에 대해 ‘우리는’ 코웃음을 친다. 아니 욕망을 버리라니? 이제 겨우 살만하다 싶으니, 소박한 자연으로 되돌아가라? 뜬구름 잡는 헛소리 아닌가. 이 시대의 생명위기는 우리의 성장욕구, 성공욕구가 당연한 삶의 방식으로 자리 잡은 자연스런 결과이다. 그 성장과 기술발전의 물길을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거기에다, 왜곡된 애국주의는 생명기술(BT)의 선점을 국권의 회복과 동일시한다.
IT로 기술선진국이 된 대한민국은 이제 BT로 그 우위를 굳혀야 한다. 자동차 기술(MT)로 기틀이 다져진 한국경제는 IT를 넘어 BT로 나아가야 한다.
MT 입국으로 전 국토가 주차장이 되어도, 골목길 어린이 사망자 수가 세계 제일이 되더라도. IT 입국으로 모든 청소년이 게임중독에 빠져들고, 스팸 메일이 가득하고, 온 국토가 컴퓨터 게임장으로 변하더라도. 또, BT 입국으로 인간 가축화가 가속화되더라도. 그렇게 죽어가는 생명과 그렇게 파괴되어 가는 정신은, 문명화의 필연적 그림자일 뿐이다. ‘우리에게’ 문명화는 생명보다 더욱 소중한 지고의 가치가 되어 있다.
너도 나도 웰빙
승리자가 모든 것을 가진다. 처절한 경쟁세계다. 이미 선진국에 접어든 이 영광스런 시대에 딴지를 걸 수도 없다. 아니, 너 뭐했니? 무능하고 게으른 자여. 너도 이기면 돼. 싸워봐. 죽여 봐! 승리자인 그들은 다시 웰빙을 내세우며 낙오자의 처절한 절규를 무시한다. 호화스런 백화점은 더욱 호화스러워진다. 보통 매장으로는 부족하여, 명품관이다, 특별관이다, 생난리다. 그들은 입만 열면 웰빙을 부르짖는다.
게다가 그 웰빙은 항상 자연을 들먹이고, 생명을 들먹이고, 순수를 들먹인다. 영원한 젊음과 아름다움, 완전한 생명을 보장하는 자연. 그것은 백화점 명품관이나 일류호텔에서 질식한 자연이다. 성형 선진국 한국은 이제 웰빙 선진국이다.
게다가 정신의 웰빙을 위한, 보지도 듣지도 못한 갖가지 요가체조, 마음수련, 뇌호흡. 마음은 어디가고 아예 정신이 나가버렸다.
재미있는 것은 그런 모든 웰빙이 동양적인 자연으로의 회복을 기치로 내걸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웰빙은 지나치게 배부르고 등이 따스하여 생긴 질병의 다른 이름이다.
그 질병은 동양적 자연이 부족하여 생긴 것이 아니다. 동양적인 것을 말하는 자의 비애가 여기에 있다. 동양적인 생명사상은 사치와 허영과 불공정과 헛된 욕망을 방조하는 허접인가?
욕망을 버리고 생명의 근원으로 돌아가라는 노자의 권유는 웰빙의 구호 속에 색이 바랬다. 어디 노자의 가르침만 그러랴. 모든 가치 있는 것, 모든 진실한 것이 죽어가는 이 시대. 진실 중의 진실인 우리의 생명도 함께 버려지고 죽어간다.
이용주(일본 ICU대 교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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