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토착화는 복음화 응답
‘토착화’는 과거 ‘선교지’였던 제3세계 지역의 교회들이 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서구 교회의 경우 이미 토착화를 끝낸 것처럼 말하고는 한다.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교를 전파하는 과정에서 선교 효과를 높이기 위해 불가피하게 혹은 어쩔 수 없이 토착화를 해야 하는 것으로 여기기도 한다.
토착화는 소통의 문제
그러나 토착화란 근본적으로 소통의 문제이고, 주체성과 연대의 문제이다. 먼저 소통의 관점에서 보자면, 토착화는 하느님의 존재 방식 자체에서 기원한다. 하느님이 존재하신다는 것은 하느님이 지속적으로 소통하신다는 것을 말한다. 하느님은 하느님의 세 위격 사이에서는 물론 온 창조계와의 관계 속에서 ‘생명 살림의 뜻’을 끊임없이 육화시키고 구현시키신다. 이 과정에서 당연히 하느님의 자기 전달과 소통이 발생하는데, 나는 하느님의 이 창조적 자기 전달과 소통을 하느님의 주체적 토착화 과정으로 본다.
‘삼위일체’는 하느님이 어버이이신 하느님과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으로 존재하시면서 서로 일체를 이루신다는 것을 아름답게 표현한다. 이것은 곧 하느님과 그리스도와 성령이 서로 온전히 일치하면서도, 세 위격이 서로 존중하시고 또 서로 자유를 갖고 계시다는 것을 말한다.
삼위가 각각 고유하게 생명의 질서를 품으시고 함께 실현해 갈 때, 다른 위격이 가지신 뜻을 존중하며 자유로이 받아들여 상호 육화시키는 행위가 나타난다. 삼위의 하느님의 상호 존중과 자유가 세 위격의 뜻이 서로에게 소통되고 육화되는 과정을 발생시키는 것인데, 나는 하느님의 이 ‘생명의 질서의 육화’를 ‘토착화’로 인식해 왔다.(‘육화로서 토착화’의 깊은 의미에 관해서는 〈한국 토착화신학의 구조〉 참조) 이런 맥락에서 토착화란 이미 삼위의 하느님 자신에게서 비롯된 하느님의 존재 방식이고, 삼위의 하느님의 상호 커뮤니케이션이야말로 토착화의 원형을 이룬다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토착화란 단순히 지역 문화와 관계에서 그리스도교를 심기 위해 수행하는 작업인 데서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삼위의 하느님 사이에서 발생하여, 아래에서 볼 수 있듯이, 온 창조물과의 관계에서 나타나고, 하느님과 온 생명계와 인간이 형성하는 일체의 관계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현상이다.
온 우주 만물과 인류는 하느님의 이 창조적 자기 전달과 소통을 만나서 그분의 생명의 숨결을 자기의 방식으로 육화시키면서 하느님과 소통의 장을 펼쳐 간다. 온 생명계는 그것들대로 하느님에 의하여 계시된 창조의 질서에 접하여 하느님의 생명의 구조를 육화, 개현시키고, 이를 통하여 그것들 나름의 토착화를 자기 삶의 조건에서 이루어간다.
이를테면, 하느님이 온 생명계에 전달하시는 그분의 생명의 질서를 뿌리내리게 하는 데서 우주 만물의 토착화가 발생한다. 이것은 토착화의 지평이 온 창조계에 열려 있다는 것을 뜻한다.
토착화 없는 교회는 없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흐름 속에서 신앙 전통의 비추임에 따라 하느님의 생명의 질서를 자각하여 그것을 공동체의 삶의 에너지로 작용시킨다. 바로 이것이 교회가 하느님의 생명의 질서를 육화시키는 토착화의 근원적 형태이다. 단적으로 교회는 온 우주와 모든 종교인과 함께, 종교의 장벽을 넘어서, 하느님의 생명의 구조를 체득하고 이를 육화시키는 근본 사명에로 불리었다. 이런 점에서 교회의 토착화란 하느님의 계속적인 자기 전달에 대한 지속적이고도 책임있는 복음적 응답이라 할 것이다.
따라서 토착화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혹은 시간이 흐르면서 저절로 되는 무엇이 아니다. 교회가 있고 나서 따로 해야 하는 무엇인 것도 아니다. 교회가 하느님의 생명의 질서를 구현하고자 하는 한, 토착화는 언제나 존재한다. 그것은 삼위의 하느님이 서로에게 지니신 그 깊은 존중과 자유를 본받아서, 주체적으로, 자기의 온 존재를 걸고 수행해야 할 사명이다.
우리 교회는 이 사실을 철저하게 자각할 필요가 있다. 실로, 토착화 없는 교회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삼위의 하느님이 먼저 토착화하시고, 그분들의 생명의 질서를 육화시키는 지속적인 창조 활동에 온 생명계와 모든 그리스도인을 누구도 예외 없이 초대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황종렬(미래사목연구소 복음화연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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