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요구-세계화 잘 조절할 때 좋은 정부
3개 세미나 통해 국제연대 노력 당위성 확인
인간주권·민주주의 등 넓은 틀에서 활동모색
“농민단체 연대·운동, 교회 가르침이 기초돼야”
가톨릭농민회국제연맹(FIMARC, 이하 피막)은 5월 1일부터 3일간 대전교구 정하상교육회관에서 ‘인간적인 발전을 위한 민주주의와 주권, 굿 거버넌스’ 주제로 국제세미나를 가졌다.
세미나에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영향으로 위협받고 있는 각국의 민주주의에 대해 고찰하고, 다국적·초국적 기업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세계무역기구(WTO)·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국제부흥개발은행, IBRD) 등 국제 기구들의 정책을 바로잡아야 할 방안이 논의됐다. 아울러 인간 존엄과 공동선이라는 교회 정신이 반영된 민주주의 정부의 모습이 어떤 방법으로 구현되어야 할지에 대한 논의도 이뤄졌다.
이번 세미나는 식량주권에 대한 호소나 정부정책 반대 집회로만 알려진 가톨릭농민단체가 거시적인 안목, 즉 인간의 주권과 민주주의라는 넓은 틀에서 활동 방향을 모색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이는 세미나의 대 주제에 분명히 드러나 있다.
농민을 단순히 먹을거리의 생산자, 농업정책의 피해자로만 보지 않고 상호 존중하는 민주주의 사회의 주권을 가진 한 주체로 여기고자 민주주의의 개념과 주권에 대해 다루고 있다. 특히 농민을 우리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 불가결한 요소인 식량을 생산하는 중요한 사회구성원으로 조명하면서 식량 주권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생소한 개념인 굿 거버넌스, 즉 좋은 정부는 이처럼 주권을 가지고 있는 농민들의 요구를 균형있게 조절하고 세계화의 요구를 조화롭게 만들며, 그 나라가 가지고 있는 훌륭한 전통과 문화를 수용하며 주권을 지켜내는 것으로 설명되어진다.
피막은 ‘민주주의와 굿 거버넌스’, ‘WTO 제6차 각료회의 이후와 식량주권’, ‘굿 거버넌스의 윤리·도덕적 관점’ 등 각 주제에 따른 세미나 내용을 토대로 5월 12일 폐막미사 때 총회 및 세미나 최종선언문을 발표할 계획이다.
■제1주제 : 민주주의와 굿 거버넌스
5월 1일 열린 ‘민주주의와 굿 거버넌스’ 주제 세미나에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해 위협받고 있는 세계 각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보고와 함께 경제적·사회적 민주주의를 이룩하기 위한 전 지구적·국제적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기조강연에 나선 조희연 교수(성공회대학교)는 독점적 지배집단의 지배력 약화여부, 사회·경제적 관계 평등화의 정도를 좋은 정부의 평가기준이라고 설명하고, 무엇보다도 사회·경제적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조교수는 “경제적 민주주의는 시장경제의 불평등 속에서 차별을 받고 있는 농민 등 약자들이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보장받도록 하는 것이고 사회적 민주주의는 사회적 집단이 정치·경제 권력에 평등한 접근권을 갖도록 하는 것”이라며 “극소수의 권력층이 사회적 약자에 가하는 착취와 억압 요인을 없애고 소수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민주주의가 이룩돼야 한다”고 밝혔다.
조교수는 이어 “우리는 세계화되고 있는 자본주의에 공적 통제를 가해야 할 시점”이라며 “국민.국가적 차원의 규제를 넘어 전 지구적·국제적 차원의 규제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세미나에서는 인도와 세네갈, 페루, 스페인 대표가 독재정권 하에서의 시민사회의 위상과 역할, 일상적 삶 속의 민주주의에 대해 발표하고 각국이 겪고 있는 경제·사회적 민주주의 억압의 모습들을 나눴다.
참가자들은 가난하고 힘없는 나라들의 경제를 부유한 나라들의 입맛에 맞게 바꾸려는 극소수 권력층에 대응해 인권과 평화 등 보편적인 가치의 지구화를 모색해 나가는 행동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모았다.
■제2주제 : 세계무역기구(WTO) 제6차 각료회의 이후와 식량주권
세계무역기구와 국제통화기금 등 국제 기구들의 신 자유주의 세계화 정책으로 세계 각국의 농업은 붕괴되고 있으며, 농민들은 도시빈민으로 전락하거나 자살하는 등 각종 인권문제에 시달리고 있음이 한국과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농민단체 대표들의 발제로 드러났다.
세미나는 각국이 겪고 있는 농업·농촌의 어려운 현실을 공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앞서 제기된 좋은 정부 실현을 위해 피막 등 국제연대가 노력해야 할 당위성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한국의 식량주권 현실과 식량-농업다양성 협약 촉구운동’ 주제 발제에 나선 한국가톨릭농민회 정재돈 회장은 “WTO 농업개방 결과 우리의 밥상은 오염되고 국민건강과 식량주권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며 “식량주권을 지키고 농업·농촌을 살리는 것이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사회양극화와 갈등을 해소하고 사회적비용을 줄이는 길이며 하느님 창조질서를 보전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정회장은 신자유주의 체제에 맞선 대안적 세계화를 ‘생명평화운동의 세계화’로 정의하고 △도시와 농촌이 함께 하는 녹색교류협력 생명운동 △식량주권과 식량·농업 다양성협약 체결운동을 구체적 방법으로 제시했다.
■제3주제 : 좋은 정부의 윤리·도덕적 관점
경제·사회적 민주주의 개념 정립과 현재 세계 농업·농촌의 현실을 짚어 본 세미나 참가자들은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좋은 정부의 모습 구현을 위해서는 농민단체들의 연대와 운동이 교회의 가르침에 기초를 둬야 함을 제시했다.
기조강연에 나선 프랑소와 오타(Francois Houtard) 대안세계포럼집행위원장은 세계은행의 스리랑카 쌀 생산 제한의 예를 들며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식량주권, 인구의 식습관, 역사와 문화, 심지어 영세농 자신들의 삶조차 감안하지 않고 있다”며 이같은 약자를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좋은 정부상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밖에도 세미나에서는 ‘급속한 산업화에서의 전통과 주체성’, ‘빈곤 국가에서의 신앙’, ‘무토지해방운동에 대한 소견’ 등 발제를 통해 윤리·도덕적 관점에서 본 좋은 정부의 모습을 살펴보고 신앙에 기초한 가톨릭농민운동의 정체성을 모색하는 시간이 마련됐다.
■인터뷰/헤르만 데이시 피막 사무총장
“생존권 위협받는 농민 지키자”
어려운 상황서 따뜻이 맞아준 한국 농민에 감사
친환경 중시·농산물 직거래 시스템 인상 깊어
“가장 우선적인 목표는 생존권마저 위협받고 있는 농민들의 권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현재를 제대로 알고 구조적 변화를 일궈나가는 방법을 찾는 데 이번 총회와 세미나의 목적이 있습니다”
헤르만 데이시(Herman Daisy) 피막 사무총장은 총회 및 세미나 주제인 ‘민주주의와 주권, 굿 거버넌스’에 대해 이같이 설명하고 민주적이지 않은 세계기구와 정부의 모습 안에서 농민들의 주권을 지키기 위해 나아가야 할 가톨릭농민단체의 방향이 이번 총회에서 제시될 것이라고 밝혔다.
헤르만 사무총장은 “현재 피막은 세계화로 인해 고통 받는 농민들에게 정보 제공 등 실질적인 지원을 할 뿐 아니라 인권을 침해당하고 있는 농민들의 목소리를 전 세계 네트워크를 이용해 알리고 개선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며 “농업시장개방 등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에서 총회가 열린 것은 여러 가지로 의미가 깊다”고 말했다.
4월 26일부터 3일간 마련된 농촌현장체험에 대해 헤르만 사무총장은 “짧은 기간이라 더 깊이 확인할 수 없었지만 한국의 농촌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방문 때 만난 농민을 통해 들을 수 있었다”며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방문단을 따뜻이 맞아준 한국 농민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이어 “친환경농업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농민들의 모습과 가톨릭농민회와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를 통한 농산물 직거래 시스템이 인상 깊었다”며 남아메리카 등 다른 나라에 비해 농토는 작지만 농업에 대해서만은 자부심과 열정이 높다는 것을 엿볼 수 있었다고 밝혔다.
사진설명
▶가톨릭농민회국제연맹 세미나 참석자들이 생활한복을 입고 한 자리에 모였다.
▶세미나에 참석한 각국 대표들이 발제자의 발표를 경청하고 있다.
▶4월 30일 본격적인 국제 세미나에 앞서 참가자들이 각 주제에 대한 소개를 듣고 있다.
▶헤르만 데이시 피막 사무총장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