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건 신부님 생각하며 고통의 길 달리고 달렸죠”
21.0975㎞, 10㎞, 5㎞.
세상 모든 일이 그런 것처럼 욕심을 부리면 안된다. 그래서 자신 있는 사람은 하프 마라톤(마라톤 42.195㎞ 절반)에 도전했다. 그리고 조금 힘이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10㎞에, 달리기를 즐기기 위한 사람은 5㎞를 선택했다.
5월 14일 경기도 안성 미리내 성지에서 열린 제1회 미리내 성지마라톤 대회. 성 김대건(안드레아) 신부 순교 1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수원교구 생명환경연합과 미리내 성지위원회가 공동주최한 이번 대회에는 전국 각 교구에서 2000여명의 신앙 달림이들이 함께했다.
성인의 시신이 지나온 길 되짚어
미리내 성지는 성 김대건 신부의 묘소가 있는 곳. 마라톤 참가자들은 160년 전 김대건 성인의 ‘시신(屍身)’이 지나온 길을 거꾸로 되짚어 달린다. 성지 인근 미곡사거리와 고삼저수지를 돌아오는 길. 특히 오르막 길이 많아 만만치 않다. 그만큼 고통도 심할 터.
하프 마라톤에 도전한 윤지섭(요셉.41)씨. “왜 달리냐”는 질문에 오히려 반문을 한다. “하느님을 믿는데 무슨 이유가 있습니까? 우리가 하느님 자녀이기 때문에 신앙을 가지는 것이 당연합니다. 마찬가지로 마라톤도 달려야 하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옆에 있던 손기준(가브리엘.48) 서안나(안나.43) 손진서(다니엘.14) 손나영(다니엘라.11)씨 가족도 “늘 성당도 함께 나가고, 달리기도 함께하는 우리 가족은 행복해요”라고 환하게 웃음 지었다.
시간 흐를수록 상쾌함은 고통으로
오전 9시. 참가자들이 출발에 앞서 ‘와’ 함성을 질렀다. 그리고 ‘공기 청정기’가 필요 없는 성지의 신선한 아침 공기를 듬뿍 들이마셨다. 드디어 출발. ‘탁탁탁탁’ 질주가 시작됐다.
겉으로 보기엔 군중이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혼자서 달린다. 군중속에는 최고령 참가자인 오현숙(데레사.86.분당 마태오본당) 할머니도 수원교구장 최덕기 주교도 함께였다. 대구와 광주, 부산, 포항의 신자 한 명 한 명이 ‘결승점 통과’라는 분명한 목표를 갖고 달렸다.
처음은 상쾌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상쾌함은 고통으로 바뀐다. 몸에 있는 에너지가 완전히 고갈되는 물리적 고통. 발목과 무릎의 통증과도 싸워야 한다. 때로는 보폭을 줄이는 지혜도 필요하다. 얼마나 꾸준한 훈련을 했느냐, 그리고 얼마나 정신력이 강한가가 ‘완주’(完走)의 열매를 맛볼 수 있는 관건이다.
드디어 결승점 도착 ‘환희와 행복’
5㎞ 참가자들부터 결승점에 속속 도착하기 시작했다. 고통을 이겨낸 이들에게는 축하 환호와 함께 ‘목적지 도착’이라는 환희가 주어졌다. ‘49분 7초’ 기록으로 5㎞를 완주한 최덕기 주교도 미리내 본당 주임 강정근 신부와 함께 두 팔 번쩍 들고 환하게 웃음 지으며 결승점으로 들어왔다.
“오직 신앙을 위해 고난의 삶을 사신 김대건 신부님을 묵상하면서 달렸다”는 최주교는 “끈기와 인내를 필요로 하는 마라톤 처럼 신앙인들도 힘든 인생살이 속에서도 하느님을 증거하는 삶을 살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아들과 딸, 아내 등 가족이 함께 참가한 최각용(마르코.시흥연성본당)씨도 “우리는 거북이 가족이지만 토끼 가족 못지 않게 행복하다”며 땀 흘리는 두 자녀를 꼭 껴안았다.
하프 마라톤 여자부 우승을 차지한 박미라(크리스티나.43.포항 죽도본당)씨는 “앞에서 뛰어가는 주님을 따른다는 생각으로 달렸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을 한 채 손목에 찬 묵주팔찌를 들어보였다. 각기 다른 인생, 다른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 하지만 도착점에서의 ‘환희와 행복’은 하나였다.
사진설명
▶5월 14일 제1회 미리내 성지마라톤 대회에 참가한 전국 각 교구 신앙 달림이들이 출발선 앞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최덕기 주교가 환하게 웃음지으며 결승점을 통과하고 있다.
▶한 어린이 참가자가 경품으로 받은 쌀을 들고 환한 웃음을 짓고 있다.
▶클레인 위에서 찍은 대회 전경. 사진 문수영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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