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에 근거해 불의의 현실 개선
엔론, 월드컴, 글로벌 크로싱, 대우, 동아건설….
한때 우량기업으로 꼽히며 영광을 구가하던 이들 회사는 파산의 길도 비슷한 모습으로 걸어가며 세계 경제에는 물론 사회 전반에도 적잖은 파장을 미쳤다. 파산의 가장 큰 이유는 이 회사들이 공통적으로 ‘분식회계’ 등의 비윤리적인 경영을 해왔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비윤리적 경영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들 모두 조직 내부에서 조직운영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음에도 담당 임원이나 최고경영자들이 이러한 내부 신고를 무시해 파국을 맞게 됐다는 점이다.
‘세계적’이라는 찬사가 수식어처럼 따라 다니던 이들 기업이 걸어갔던 길은 결국 조직 내부로부터의 건전한 문제 제기에 대해 적절한 조치가 없을 경우 그 조직은 개선의 기회를 상실하게 돼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닉슨 대통령의 하야를 몰고 온 ‘워터게이터 사건’도 ‘내부 신고’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가깝게는 근래 몇 년 동안 그룹 총수의 구속과 법정행이라는 위기를 맞은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의 행태도 이런 모습들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일련의 굵직굵직한 사건에 대한 반작용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실천적 대안의 하나가 내부신고제도(Whistle-blowing)다. 이 제도는 조직 또는 조직 내부 구성원의 불법, 비윤리적이며 공공의 이익에 반하는 행위 등에 대한 정보를 신고하거나 공개하는 행위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990년 재벌의 비업무용 부동산 보유 실태조사가 감사원 상부의 압력으로 중단된 사실을 폭로한 이문옥 전 감사원 감사관을 ‘공익제보’의 원조격으로 꼽는다. 그러나 그는 그 일이 있고난 후 가깝게 지내던 동료와 친척들마저 연락을 끊을 정도로 주변과 사회의 냉대가 심했음을 털어놓아 우리 사회에 오랫동안 똬리를 틀어온 또 하나의 모순을 확인시켜 주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여전히 내부 부조리를 방치하면 결국 국민들만 피해를 보게 된다는 소중한 경험적 진리가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소외받는 이들과 함께 해온 교회는 그리스도의 정의와 사랑을 바탕으로 사회 불의를 고발하고, 인간존엄성 회복을 위해 노력해왔다.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2차 총회 문헌 ‘세계 정의에 관하여’는 “교회는 사회적 국가적 국제적 각 분야에서 정의를 선포하고, 인간 기본권과 구원이 요구할 때에 불의의 현실을 고발할 권리와 의무를 가지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복음에 포함된 사랑과 정의의 필요성을 세상에 증명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런 증명은 교회 조직과 그리스도인 실생활을 통하여 이루어질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내부 문제에 눈을 뜨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나선다는 것은 깨어있는 자세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교회는 그것이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는 길임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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