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베풀며 살았던 어머니!
고달팠던 피난시절
어머니는 내 삶의 모범
또래에 비해 무척이나 명석했던 아이. 나는 대화가 안된다싶은 사람과는 싸우지도 않고 그저 조용히 입을 다물어버리곤 했다. 지금 생각해도 무척이나 내성적인 소녀였다.
또 나는 4남매 중 맏딸이어서 더욱 조숙했고, 철도 빨리 들었다. 일찌감치 성숙한 사고를 하던 나는 친구들과 노는 대신 온종일 책을 읽거나 상상의 나래를 폈다.
그런 내 삶에 가장 아름다운 모범은 바로 ‘어머니’였다.
우리 어머니는 가여운 이들을 보면 자신의 입에 들어가는 것도 되뱉어 나눠주시는 분이셨다. 어찌나 착하기만 하셨던지…. 어머니 때문에 내가 되레 못되게 굴게 됐다.
“엄마, 그렇게 착하게만 살면 안돼요” “그렇게 참기만 하면 어떻해?” “그렇게 다 나눠주면 우린 뭘 먹어요?” 늘 내가 잔소리를 입에 달게 됐다.
나는 어릴 때 소위 ‘정의파’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비열한 것이나 잘못된 것은 참고 볼 수가 없었다. 그래도 내가 더 먹기 위해, 내가 더 가지기 위해, 나의 이익을 위해 나선 적은 없다.
그런 나에게 어머니는 늘상 걱정의 대상이었다.
“저렇게 순진해서 어떻게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갈까.”
게다가 아버지의 외도와 무관심으로 어머니의 고생은 갈수록 늘어갔다.
그리고 갑작스레 터져버린 6.25 한국전쟁. 그때 나는 한창 꿈을 키우던 중학교 1년생이었다.
전쟁통에는 우리 가족뿐 아니라 우리나라사람 모두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우리 가족은 피난민 대열에 끼여 서울을 떠나 대구로 피난을 갔다.
피난생활은 그야말로 날이면 날마다 굶는 고난의 생활이었다. 피난민 모두가 바가지를 들고 얻어먹으러 다닐 때였다. 대구 사람들은 참 인심좋게도 조금씩이라도 음식을 나눠줬지만, 피난생활이 오래 지속되자 “한두사람이어야지 먹이지…”라며 힘겨워했다.
어머니가 허드렛일을 돕고 받아오는 음식은 늘 부족할 뿐이었다. 산으로 들로 다니며 온갖 나물과 식물뿌리를 캐먹고, 개구리도 잡아먹고, 꽃을 따먹거나 나무껍질을 벗겨 씹어대고…. 허기를 면한다기보다 이렇게라도 입에 씹을 것을 넣어주면 위안이 됐다. 정말 지금 생각해도 영화 같은 삶이었다.
굶주림에 밥동냥 나서
전쟁은 내게 너무도 큰 좌절을 안겨줬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그래도 서울에선 나름대로 유복한 생활을 해왔는데, 밥을 얻으러 나가다니. 바가지를 들고 밥동냥에 나선다는 것은 10대 소녀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다. 나는 굶으면 굶었지 절대 동냥은 할 수 없다고 버텼고, 동생이 얻어온 밥을 먹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어린 동생들을 먹이느라 늘 굶어야했다.
굶고 있는 엄마를 보면서 내가 돌봐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를 보호하겠다는 생각 하나로 나는 모든 자존심을 접었다. 나는 바가지를 들고 밥을 얻으러 나갔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우리 남매들이 고생하며 사는 걸 알면서도 우리를 찾거나 도와주지 않았다. 내가 만약 하느님의 자녀가 되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러한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하고 살았을 것이다. 하느님을 알게 된 이후 내가 누군가를 그렇게 미워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하느님이 내게 주신 사랑 때문에 남을 용서할 수 있었다.
사진설명
하느님을 알게 된 후 내가 누군가를 미워할 자격이 없음을 깨달았고, 그분이 주신 사랑 때문에 남을 용서할 수 있었다.(SBS 사진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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