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님께 ‘충성’합니다”
군종병 전례 준비 도맡아
형·동생으로 서로 보듬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술래를 자원한 하종원(요한.28) 상병이 벽을 향해 돌아서 놀잇말에 가락을 넣어 부르는 동안 키득키득 하는 아이들의 웃음이 종종걸음 소리와 함께 흘러나온다. 5월 17일, 강원도 화천에 위치한 이기자본당(주임 오정형 신부). 신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성모의 밤 행사 준비에 매달리고 있는 사이 아이들에게는 아이들만을 위한 세상이 그렇게 마련되고 있었다.
힘들어도 함께, 그래서 기쁜
오전 8시. 점호를 마치자마자 달려온 김용근(마르코.30) 상병부터 8명의 군종병이 모였다. 10명이 넘게 모였어야 하지만 유격훈련에 휴가, 연대 훈련 등으로 어쩔 수 없이 빠져야 하는 이들이 꼭 한둘은 있어 다 모이기가 쉽지 않다. 성모의 밤 행사를 위해 시간 나는 대로 모여 특송곡을 고르고 입을 맞춰온 게 한달여. 지휘를 맡은 김상병의 마음이 조급해진다. 노래 연습 중간중간 성당 청소부터 성모상을 꾸미고 전례를 준비하는 일 등 대부분이 군종병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기자본당의 분위기는 주임 오정형 신부의 사목 의지에서 비롯됐다. 오신부는 지난 2004년 부임 직후부터 수동적으로 군생활을 하고 있던 신자들에게 자극을 주기 시작했다. 간식 때문에 성당을 찾는 이들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간식도 대폭 줄였다. 잠시 쉬어가는 프로그램 정도로 인식되던 군종병 집체교육도 뜯어고쳐 군종병들이 솔선수범하는 자세를 배워 돌아갈 수 있도록, 전에는 상상도 못할 프로그램들로 교육시간을 채웠다. 당장 불만이 터져 나왔지만 시간을 거듭하면서 지금은 병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 대부분을 군종병들이 진행해도 될 정도로 바뀌었다.
“형, 우리가 해냈어”
군종병들끼리는 계급보다 형 동생으로 서로를 대한다. “형, 좀만 쉬었다 해요. 목이 아파서 소리가 안 나오잖아요.” 박지만(빅토리노.23) 상병의 능청스런 요구에 모두들 김용근 상병의 표정을 살핀다. 형이 먼저 챙기면 동생이 한번 더 살피고…. 이렇게 서로를 챙기고 아끼다 보니 1년 남짓한 사이에 친형제 이상으로 정이 드는 게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그러다보니 제대한 병사들 가운데서 이때의 추억을 잊지 못해 모임을 만들어 수시로 만나는가 하면 함께 성당을 방문하기도 할 정도로 정이 두텁다.
드디어 밤 8시. 화관이 성모상에 씌워지고 촛불이 하나 둘 성당 안을 밝혀나갔다. 목이 아파서 소리가 제대로 안 나온다던 박상병도, 자신의 피아노 반주가 마음에 안 찬다던 서가인(예로니모.22) 일병도 제몫을 훌륭히 해냈다. 마지막 특송곡이 끝나자 그제서야 지휘를 맡았던 김상병의 얼굴에 웃음이 인다.
“형, 그래도 이 정도면 잘 한 거 아니야?” 성당을 찾았던 병사들이 어둠 속을 되짚어 돌아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던 손원기(미카엘.23) 상병의 말에 큰 끄덕임이 돌아왔다. 1명의 신부와 수녀, 10여명의 군종병, 그리고 군인가족 신자들…. 그들은 마치 어릴 적 놀이를 즐기듯 그렇게 고될 만도 한 삶을 즐겁게 헤쳐오고 있었다.
사진설명
▶성모의 밤 행사에 참가한 병사들이 성모상 앞에 초를 봉헌하고 있다(위에서 첫번째,두번째 사진)
▶행사 중 군종병들이 그동안 갈고 닦아온 특송을 선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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