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눈길 머무는 곳에
영화가 끝나는 자막이 오르면 어둠 속에 잠겨있던 극장 안에 불이 켜지고, 사람들은 방금 본 영화 속의 세상에서 벗어나 저마다의 느낌을 안고 현실이라는 세상 속으로 하나 둘 씩 빠져 나갑니다.
가끔 감동적인 영화를 보고 나면 사람들이 다 빠져 나간 극장 안에서 한 참 동안 머물게 됩니다. 영화 속에서 본 장면들이 아직도 가슴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어서 현실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선뜻 내키지 않는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영화 속 세상이 아닌 일상이라는 현실로 돌아가야 합니다. 영화는 세상 속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현실은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것을 바쳐 사랑했던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님은 이제 더 이상 예수님의 모습을 눈으로 볼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제자들이 당면했던 ‘현실’입니다.
예수님의 승천은, 제자들에게 하늘나라의 신비를 가르쳐 주시고,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주시기 위하여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고, 당신의 살과 피를 나누어 주시며, 십자가 위에서 당신의 목숨마저 벗들을 위하여 내어주신 주님께서 이제 부활의 생명으로 함께하신다는 믿음을 간직하고 키워 나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밝혀주는 신앙의 고백입니다.
예수님의 승천은 부활하신 주님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간직하고 살아가는 삶의 최종 목적지를 보여주지만, 동시에 그 믿음을 살아가야할 현실이 어디인지를 가르쳐줍니다.
‘갈릴레아 사람들아, 왜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느냐?’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체험했던 제자들은 이제 더 이상 눈으로 그 분을 볼 수 없는 현실 안에서 그분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분명하게 드러내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우리의 시선을 어디로 향해야 할 것인가? 우리 삶의 최종 목적지가 하느님 사랑의 나라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우리 신앙인들은 우리의 삶이 향하고 있는 최종적 미래의 모습을 다른 이들에게 현실의 삶을 통해서 보여 줄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만 합니다.
하지만 신앙인인 우리마저도 눈앞에 보이는 표면적인 현실에만 몰두하고 있다면, 사랑 보다는 소유하려는 삶의 태도가 신앙인들 안에서도 계속 되고 있다면, 주님의 승천은 우리의 시선을 어디로 향해야 할 것인지를 일깨우게 하는 은총의 사건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인들에게 ‘오늘’은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분 안에서 살아가는 현실입니다.
‘오늘’은 어제의 내일이며 내일의 어제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어제라는 과거가 기억되고, 내일이라는 미래의 비젼(Vision)이 이루어지는 현실입니다.
주님의 승천은 ‘오늘’을 사는 우리의 시선이 향해야 할 곳이 어디인지를 보여줍니다. 서양 격언에 ‘코는 숫돌에 시선은 언덕에 두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이라는 숫돌을 갈면서도 우리의 시선은 항상 언덕 너머의 목표를 향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코와 시선이 숫돌에만 머문다면 우리의 삶은 반복되는 일상의 단조로움과 지루함에 짓눌리게 될 것이며, 코와 시선을 모두 언덕에 두게 되면 현실 안에서 우리가 살아야할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러한 삶은 땅에 발을 디디지 못하고 허공에 뜬 것처럼 공허하고 맹목적인 삶이 되어버립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부활하신 주님께서 승천하시며 제자들에게 명령하신 이 말씀은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의 ‘현실’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승천은 제자들이 선포할 기쁜 소식을 통해 이제 영원한 현존을 지속해 가시는 출발점임과 동시에 심판의 기준점으로 자리매김하는 결정적 사건인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나날의 삶에서 그리스도 현존의 의미를 살아가는 사람들이어야 하고, 그러한 그리스도 현존의 의미를 세상에 증거 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현실이라는 세상은 ‘사랑’을 열매 맺는 텃밭인 까닭인 것입니다.
믿음과 현실 사이에서 어디에 눈길을 두어야 할지 모르는 우리에게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땅 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
주님께서 앞서 가신 하늘나라에 대한 희망을 간직하고 산다면 우리의 삶은 신명나게 복음을 선포하는 삶이 됩니다.
비록 우리가 가끔은 삶의 무게에 짓눌려 눈을 들어 당신을 바라볼 지라도, 오늘이라는 현실의 쳇바퀴가 덧없어 눈을 들어 당신을 부를 지라도, 당신의 사랑에 목말라하고 당신께서 앞서 가신 길이 우리를 위해 마련한 축복의 길임을 믿고 있기에 우리는 희망하며 지금 또 다시 당신의 부르심에 응답합니다.
“주님을 향한 하늘 길 … 저와 항상 동행하여 주십시오.”
김영수 신부 (전주 용머리본당 주임 henkys@hanmail.net〉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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