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진정한 제자로 살아가려면
약속된 메시아 하느님 아들로 만나야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물 위를 걸으심 (6, 45~52)
오천 명을 먹이신 빵의 이적사화에 이어 예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신 기적 이야기가 보도된다. 구약 성경에서 하느님이 나타나신 이야기 양식(시현(示現) 혹은 신현(神顯) 사화라 함)을 본떠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의 현존이 계시되고 예수님의 신성이 드러났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사건을 통해 역풍을 만나 고생하는 제자들이 구제되고, 예수님의 신비가 드러날수록 예수님을 향한 군중들의 신뢰심도 높아져간다(6, 53~56).
예수님께서 빵의 기적을 통해 군중과 제자들에게 자신이 누구신지 알리셨다면, 이제 물 위를 걸으신 기적을 통해서는 제자들에게 더욱 확실히 자기 자신을 드러내신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에서도 빵의 기적에서처럼 예수님께서 실제로 물 위를 걸으셨느냐, 이런 기적이 과연 가능한가 하는 따위의 물음은 중요하지 않다. 이미 시간이 늦어(35절)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재촉하여 호수 건너편 벳사이다로 먼저 떠가게 하시고 군중을 돌려보내신 후, 당신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에 가신다.
앞서 전도여행에서 돌아와 휴식을 취하지 못한 제자들에게 우선적으로 쉼이 필요했던 것 같다(31절). 예수님의 쉼은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진 것일까?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려고 산에 가셨다는 말에서 그분의 삶이 언제나 갈라짐 없이 하느님을 향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제자들이 타고 있는 배가 호수 한가운데에서 역풍을 만나 제자들은 바람과 맞서느라 애를 쓰고 있다(47~48절). 어느 시대에나 세상의 흐름에 맞서야 하는 그리스도인의 모습과 같다. 예수님을 따라 산다는 것은 이렇게 힘드는 것일까?
밤 사경쯤(오전 3~6시) 예수님께서는 호수 위를 걸어 그들 쪽으로 오시다가 그들 곁을 지나가려고 하신다. ‘지나가다’는 동사는 하느님의 영광이 모세와 엘리야 앞을 지나갔다는 구약의 사건을 상기시킨다(탈출 3, 14; 신명 32, 39; 이사 41, 4 등). 물은 생명의 원천이면서 동시에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파괴력을 갖고 있기에 두려움의 대상이다. 그러나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홍해에서 구출하셨고 요르단 강을 건너게 하신 분이다.
제자들은 물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유령인 줄로 생각하여 겁에 질려 비명을 지른다(49절). 신적(神的) 체험은 두려움과 놀라움을 동반한다. 루카복음에서는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고 유령을 보는 줄로 생각하였다고 한다(루카 24, 37~39).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자신을 계시하시면서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50b절)고 격려의 말씀을 하신다. “나다”라는 표현은 본디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드러내시는 말씀이다(탈출 3, 14). 이제 하느님의 아들로서 예수님의 신비로운 존재가 드러나는 것이다. 광야에서 당신 백성을 배불리 먹이시고 바다를 지배하시는 하느님의 권능이 예수님에게서 드러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니 바람이 멎었다(51절).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두려움을 몰아내신다.
마르코는 제자들이 물 위를 걸으신 기적의 뜻도(51b절),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의 뜻도(52a절) 깨닫지 못하였는데, 그들의 마음이 오히려 완고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직 때가 이르지 않은 것이다. 마르코는 제자들의 몰이해를 폭로함으로써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만 역사상 예수의 삶에 대한 이해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다.
겐네사렛에서 병자들을 고치심 (5, 53~56)
예수님의 일행이 겐네사렛에 이르자 사람들이 곧 예수님을 알아보고 병자들을 데려와 치유를 받게 한다. 군중들의 태도에서 달라진 것은 없다. 그들은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알고 싶은 마음보다는 자기들의 필요에 관심이 모아져 있다. 그들은 예수님의 옷단에 달린 술만이라도 만져서 치유를 받고 싶은 소망이 간절하다(5, 27 참조). 예수님은 이러한 인간적인 원의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그들에게 치유를 통한 구원을 맛보게 하신다. 이 대목을 통해 마르코는 앞에서 언급했던 예수님의 활약상을 다시 한번 요약하여 하나의 단락을 매듭짓고 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의 진정한 제자가 되려면, 기적행위자 예수님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예수님의 기적 능력은 하느님의 선물로 주어지는 표징일 뿐이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을 놀라운 능력을 지니신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약속된 메시아’, ‘하느님의 아들’로서 만나야 한다.
최혜영 수녀 (성심수녀회.가톨릭대 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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