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운동, 교회 전유물 아닌 모두의 책무”
낙태반대·자연 출산 조절법 보급…생명운동의 큰 축
한국교회, 인적 물적 투자로 새 도약 기반 다져 나가
본당이 생명운동 단체로 활동하도록 토대 마련해야
[전문]
“‘생명의 문화’와 “죽음의 문화”가 극적인 싸움을 벌이고 있는 현재 우리 사회의 상황 속에서는, 참된 가치와 진정한 필요성을 분별할 수 있는 예리한 비판적 감각을 계발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도의심을 총체적으로 동원하고, 생명을 지원하는 대대적인 운동을 활성화하기 위해 공동의 윤리적 노력이 절박하게 필요합니다. 우리는 모두 함께 새로운 생명의 문화를 건설해야 합니다.“(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생명의 복음’ 95항 중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회칙 ‘생명의 복음’에서 말하고 있듯이 오늘날 우리나라를 포함한 온 세상은 ‘생명의 문화’를 위협하는 ‘죽음의 문화’가 만연해 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인간 생명의 존엄성은 생명윤리 의식의 퇴색과 과학기술에 대한 맹신, 물질 만능주의와 이기적이고 쾌락적인 세속 문화의 영향으로 날로 심화되는 죽음의 문화에 위협받고 있다.
생명의 복음에 대한 공동의 노력
이러한 현실 속에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물론 선의의 모든 사람들과의 전폭적인 연대와 협력의 필요성을 요구받고 있다. 그럼으로써 생명을 수호하는 대대적인 운동을 위해 모든 사람들이 함께 하는 공동의 윤리적 노력이 요구된다. 그것은 바로 오늘날 한국 교회와 사회 안에서도 그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생명운동을 위한 연대의 구축이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생명의 복음’에서 여러 번에 걸쳐 이같은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89항에서는 여러 의료 기관들의 생명 수호 노력을 지적하면서 “생명의 복음에 관대하게 참여하며, 개인과 사회의 선익을 위해서 생명의 복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충분히 깨닫고 있는 사람들이, 생명에 봉사하는 기관과 센터들, 그리고 때때로 상황이 요구하는 다른 모든 자발적인 지원과 연대활동들을 지도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91항에서는 더 구체적이고 직접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생명의 복음에 대한 봉사는 다른 교회, 다른 교단들의 형제자매들과 긍정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가치 있고도 유익한 분야로 점차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타종교 신자들과, 선의를 가진 모든 사람들과 대화하고 공동으로 노력하기 위해서 적절한 영역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어떤 개인이나 집단만이 생명을 보호하고 증진할 독점권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의 임무이며 의무입니다.”
결국 생명을 수호하기 위한 노력, 생명운동은 교회의 전유물이 아니라 생명의 가치를 인정하는 모든 이들이 함께 이뤄나가야 할 공동의 책무라고 하겠다. 물론 여기에는 누구보다도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고 하느님이 주신 생명의 가치를 전폭적으로 수호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몫이 클 것이다.
생명운동 단체들
한국사회에서 생명윤리에 바탕을 두고, 인간생명의 존엄성 수호를 위한 ‘생명운동’이 나타난 것은 낙태반대 운동을 중심으로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1973년 2월 8일 제정되고 1986년과 1987년, 그리고 1999년 2월 8일에 개정된 모자보건법은 국가의 경제 건설이 사회, 정치의 모든 가치를 압도하던 시기, 그러한 사회 분위기에 편승해 제정된 법률이다. 그 저의는 국가 경제 개발을 최우선적인 가치로 내세우며, 그 전제 조건으로 인구억제 정책이 실시됐고, 그 수단으로서 유신 체제 하에서 이뤄진 가족계획 정책이 곧 이 법률인 것이다.
오늘날 비공식 추산 150만에서 200여만의 낙태 시술이 자행되어 전세계에서도 유례가 없는 낙태 빈발 국가가 된 우리나라에서 그 최악의 악법이 바로 ‘모자보건법’이었던 것이다.
한국교회는 법 제정 이전부터 모자보건법의 부당성을 경고하고 수 차례의 성명서를 통해 그 해악을 강조한 바, 그러한 활동은 한국교회 안에서 본격적인 생명운동의 시발이 됐다. 이때 교회 뿐만 아니라 한국사회 일각에서도 나름대로 인간 생명의 소중함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낙태반대운동이 시작됐고, 그 대표적인 단체가 지금까지도 꾸준한 활동을 해오고 있는 ‘낙태반대운동연합’이다.
이 단체는 낙태반대 운동을 간헐적으로 해온 몇몇 단체들과 이를 지지하는 가입단체들이 뜻을 모아 1994년 4월에 시작한 연합시민단체로서, 현재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 누가회, 대한기독간호사회, 새생명사랑회 등 주로 개신교 교회 등을 중심으로 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낙태반대운동에서 본격화된 한국 천주교회의 생명운동은 이후 생명의 요람인 가정과 생명의 깊은 연관성을 바탕으로 가정사목과의 연계 하에 이뤄져왔다. 특히 가톨릭 교회는 낙태 반대 운동의 지속적인 추진과 함께 자녀 출산 문제와 관련해 자연 출산 조절법의 권장을 교회의 공식적인 입장으로 임신을 직접 방해하는 방법을 사용하는 모든 종류의 인공적 피임 방법을 거부하고, 자연 출산 조절법의 보급을 위한 활동을 교회, 가정, 생명운동의 큰 축으로 삼았다.
1975년에는 주교회의 산하에 ‘행복한 가정운동’(행가운) 전국 협의회를 발족, 점차 전국 교구들로 확산했고, 이후 교회가 운영하는 병원들에 가족계획실을 개설해 이 방법의 보급을 정착시켜왔다. 현재까지도 교회 안에서 생명운동 단체로 분류될 수 있는 제 단체들은 대부분 행가운과 교구 산하의 가정 사목 담당 부서들이라고 할 수 있다.
생명과학 발달, 생명운동 확산 계기
교회 안팎을 포함해 국내의 생명운동에 큰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말부터다. 1997년 영국에서 복제양 돌리가 태어나면서 이제 생명공학은 지금까지 금단의 영역이었던 인간 생명의 영역까지 과학적 연구의 대상으로 삼기 시작했다.
생명공학은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생명체에 대한 연구를 상업적으로 이용함으로써 그야말로 엄청난 물질적 이익을 보장해주는 첨단 산업으로 간주됐고, 이에 따라서 생명공학자들과 국가 경제 발전을 최우선적인 관심사로 하는 각국 정부들에 의해서 정책적으로 뒷받침되기 시작했다. 첨단 과학과 의학은 이제 생명의 영역을 파헤치는 일이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 산업이라는 점에서 인공 출산의 기술을 선두로 배아 복제, 유전자 조작 등 인간 생명은 이제 상업적 과학 연구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생명공학의 발달로 인간 생명에 대한 위협과 도전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면서, 새로운 생명윤리 문제들이 야기됐는데, 우리 사회에서는 낙태 문제에 더해 또 다른 생명윤리 문제들이 크게 이슈화되고 있었다.
사형제도가 인간의 생명권에 대한 근본적인 침해라는 인식이 높아지면서, 우리 사회 안에서는 천주교회를 포함해 사형제도 폐지를 요청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었다. 1989년 5월 30일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사형폐지운동협의회가 발족했고, 국제사면위원회와 천주교회에서는 교정사목위원회가 꾸준한 사형폐지운동을 펼쳐왔다.
안락사 문제는 과학기술 발달에 따라 나타난 새로운 생명윤리 문제였다.
교회가 운영하는 의료 기관들은 철저하게 안락사에 대한 반대 입장을 갖고 있었으며 아직은 우리나라에서 안락사에 대한 논란이 비교적 크게 일지는 않은 상태이지만 서구 여러 나라에서 이에 대한 논란이 일어왔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장차 이를 둘러싼 논란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배아복제 연구, 첨예화된 생명운동 노력
하지만 한국 사회와 교회 안에서 생명윤리와 운동에 대한 인식이 본격화되고, 이에 대한 대처가 시급한 것임을 일깨워준 것은 생명공학의 발달에 따른 인간 배아 복제 문제가 사회적 논란으로 이슈화되면서부터다.
그 일차적 논란은 생명윤리법의 제정 과정에서 나타났다. 생명과학의 발달로 인해 다양한 윤리 문제들이 나타남에도 이를 규제할 수 있는 법체계가 전혀 마련되지 않고 있었던 우리나라에서 생명윤리법의 제정은 가장 시급한 문제였다.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 나아가 생명과학에 대한 지지 입장을 보면서 종교계와 시민단체들은 연대와 협력의 움직임을 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 ‘조석한 생명윤리기본법 제정을 위한 공동 캠페인단’이 결성된 것은 이러한 상황에 대한 인식의 발로였다.
이 캠페인단에 참여한 생명운동 단체는 모두 69개. 천주교와 개신교, 불교 등 종교단체들을 포함해 환경운동단체와 시민단체, 동물권 단체들까지 광범위한 연합 단체였다.
하지만 이들 캠페인단은 각자의 입장에 따라 주요 사안들에 대한 견해 차이를 나타냈고, 결집력 부족으로 생명과학계, 산업계, 정부의 강력한 배아 연구 정책 추진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최초의 생명윤리법인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은 인간 배아 연구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제정됐고, 한국 과학계의 최악의 수치일 수 있는 황우석 박사 연구진의 인간 배아 줄기세포 연구 사기극까지 발생하게 됐다.
황우석 사기극의 진행 과정을 통해 이제 생명윤리 수호를 위한 생명운동 진영은 나름대로 진열을 가다듬어왔다. 종교계는 물론 시민단체와 학술단체들 중에서도 생명윤리 문제에 대한 나름대로의 입장들을 정리하는 계기가 됐던 것이다.
한국 천주교회 역시 일련의 뼈아픈 경험들을 통해서 생명운동의 중요성을 더욱 깊이 인식하고 있으며 그 대처를 위해서는 범교회적인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서 적지 않은 인적·물적 투자를 통해 향후의 생명운동의 도약을 위한 기반작업을 다지고 있다.
특별히 한국교회는 최일선 사목현장, 곧 본당을 생명운동 단체들로 기능하도록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사진설명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간 사형수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사형제도 폐지와 종신형 입법화를 촉구하는 사형제도 폐지 기원미사가 세계 사형 반대의 날인 지난해 11월 30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봉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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