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동구 천호공원 인근에 위치한 반지하방. “안녕하세요”라는 인사와 함께 들어서자 특유의 눅눅함이 온몸을 감쌌다. 방과 마루의 구분이 없는 안쪽 어디에선가 “네…”라는 단음절의 가녀린 목소리가 들렸다.
임숙희(예비신자·62)씨. 임씨의 얘기를 듣고자 마주 앉았다. 혀 전체에 끼어있는 백태. 말하기도 힘든 상황. 임씨는 차가운 음료로 혀와 목을 축이며 삶의 실타래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타래는 풀리지 않았다.
가정사에 대해 물었다. 2남 1녀 중 둘째. 오빠는 결혼 후 바로 이혼, 그 후 과도한 음주로 인해 간암 발병 후 사망. 막내 남동생 역시 음주로 인한 간경화 입원. 친척 한명 없음. 여기까지 듣는데 10분이 넘게 걸렸다.
임씨는 자신의 힘들었던 삶을 풀어내려고 애썼다. 고등학교 졸업 후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어려운 일은 없었다. 돈만 받으면 됐다. 무식하게 일만 했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숨이 턱밑까지 차올랐다. 힘들어서 그러려니 했지만 걷기만 해도 숨이 찼다.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았다. 협심증. 당시가 1998년이었다. 임씨는 병원을 제집처럼 수시로 들락날락했다. 보증금 5백만원을 빼 썼다. 한푼도 없는 살림…먹고 살기 위해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갑상선과 심장에도 이상 신호가 왔다.
때마침 임씨에게 희소식이 찾아왔다. 국가에서 기초생활을 유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질병 치료를 해준다는 것이었다. 두말할 것 없이 수술을 받았다. 결과는 말 그대로 엎친데 덮친격. 집도의들이 수술 부위를 착각해 협심증 치료가 아닌 병을 더 키운 것이었다.
임씨의 삶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또 있다. 바로 임씨의 오른팔. 10여 년 전 화상을 당해 팔뚝부분은 흉하게 일그러져 있고 손은 제멋대로 휘어져 있다.
협심증을 비롯한 각종 질병이 발병하기 전에는 몸이라도 건강해 일을 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오히려 오른팔이 삶의 걸림돌이 돼버렸다.
그래도 죽으라는 법은 없는지 임씨의 소식을 알게 된 이들이 가만있질 않았다. 특히 천호동본당 빈첸시오 회원들이 앞장서 임씨를 물심양면으로 돕고 있다.
하지만 물질적인 면은 아무래도 한계가 있다. 임씨가 그간 받은 진료비와 수술비 등을 포함한 치료비는 이미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 돼버렸다. 거의 주변으로부터 얻어먹는 수준이라 생활비는 두말 할 나위 없다.
“미안하고 죄송합니다…” 힘내시라는 말을 남기고 반지하 방의 문턱을 넘었다. 귓가에 들리는 처절한 울음소리. 임씨는 기자와 함께 찾아온 천호동본당 빈첸시오 회원과 부둥켜안고 울고 있었다.
※도움 주실 분 우리은행 702-04-107881, 농협 703-01-360446 (주)가톨릭신문사
기사입력일 : 2006-05-28
카리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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