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의 인습.전통 지키는 것 보다
하느님 계명 따라 사는 것이 중요
9. 조상들의 전통에 대한 논쟁 (7, 1~23)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처럼 습관이 한번 몸에 배고 나면 걸음걸이 하나도 고치기가 쉽지 않다. 하물며 여럿이 함께 길들여진 전통에 있어서는 더할 나위가 없다. 어떤 집단이나 공동체에서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오는 관습이나 사상, 행동 따위의 양식들은 역사적 생명력을 갖고 있기에 어떤 강력한 자극이 없는 한 그냥 조상들의 것을 답습하게 된다.
예수님 시대의 유다인들에게도 그들이 불변의 것으로 따르고 있는 관습이 있었다. 이른바 ‘조상들의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율법뿐만 아니라 모세와 여호수아의 구전 계율을 물려 받아 전해준 선현들의 가르침을 철저하게 따르고 있었다.
마르코 7장의 논쟁사화에서는 8장부터 나올 이방인 선교에 앞서 마르코 복음사가의 공동체에 있었을 법한 논쟁을 보여 준다. 조상들의 전통에 따라 사는 유다인들과 예수님의 가르침을 새롭게 받아들인 이방계 그리스도인 사이의 갈등이다.
앞서 유다인 영역에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6, 30~44), 물 위를 건너심(6, 45~52), 예수님의 놀라우신 치유 능력에 대한 집약문(6, 53~56)에 이어, 조상들의 전통에 대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사이들과 율사 몇 사람과 논쟁을 벌이시는 장면이 나온다(7, 1~23).
논쟁은 ‘빵을 어떻게 먹느냐’는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유다인들에겐 세정(洗淨) 인습이 있어 음식을 먹기 전에 손과 몸을 깨끗이 씻거나 그릇을 씻는 관습이 있었는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손을 씻지 않고 빵을 먹었다는 것이다.
유다인들은 더러운 손을 부정(不淨)한 손이라고 칭하였는데, 손을 씻고 안 씻는 것이 위생상의 문제가 아니라 제의(祭儀)적인 법규였기 때문이다. 이들은 ‘조상들의 전통’ 가운데 생활 규범을 ‘할라카’(‘걸음’이라는 뜻)라고 불렀고 모세의 율법을 명확하게 하는 규정들과 관습들인 전통을 고수하는 일을 생명처럼 여겼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식사 전에 손을 씻는 것이 인습을 따르는 일이지 하느님을 섬기는 일은 못된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신다.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8절) 본말(本末)이 전도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빵을 먹는 고마움에서 여러 가지 세정 의식이 나왔음 직한데 본래의 의미는 사라지고 형식만 남았을 때 우스꽝스러운 일이 벌어진다.
인간의 전통이 하느님의 계명을 어떻게 어길 수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예가 코르반 인습에 관한 논쟁이다(9~13절). ‘코르반’(히브리 말로 ‘예물’이라는 뜻) 서약을 통해 부모에게 공양할 물건을 성전에 바친다고 맹세하면 공양의 의무가 면제되었는데, 전통을 지킨다는 명목하에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어기는 사례가 종종 있었던 것이다.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15절)
이어서 금기 식품과 관련된 인습을 비판하시는 말씀이 군중들과(14~16절), 또 제자들에게(17~23절) 반복하여 나온다. 레위기 11장과 신명기 14, 3~21에 따르면 정결한 식품과 불결한 식품을 가려 놓았는데, 예수 시대 유다교에서는 금기식품법이 더욱 강화되었다. 초대교회에서는 유다인들의 관습과 이방인들간에 융합하기 어려운 점들이 많았다. 그런데 특정 음식에 대한 금령의 폐지는 그리스도교인들의 식사 공동체에서 유다 출신들과 이방 출신들 사이의 벽을 없애게 된다(사도 10~11, 18; 갈라 2, 12).
예수님께서는 죄악의 원인은 인간의 외부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내부의 악한 마음에 있다고 단언하신다(7, 23). 사람의 마음에서 온갖 나쁜 생각들과 죄악이 나온다고 말씀하시는데(20~23절), 복음서에서는 죄악 목록들이 여기에서만 나온다. 예수님께서는 이 논쟁으로 모든 음식은 깨끗하다는 말씀으로 종결지으시고, 띠로와 시돈, 데카폴리스 등 이방 지역으로의 여행 갈 채비를 마치신다(24절).
유다인들의 전통에 대한 논쟁이 한국인에게는 생소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얼마나 많은 편견이 있는지? 어느 사회나 독특한 식습관이나 관습들이 있는데 나라마다의 독특한 문화를 이해하여 상대적인 것과 절대적인 것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할 것 같다.
하느님의 원초적인 뜻에 부합되지 않은 유다인들의 인습을 비판하는 예수님의 권위 있는 모습이 드러난다.
최혜영 수녀 (성심수녀회.가톨릭대 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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