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만하던 어머니 세상 떠나
유랑공연 생활
미싱보조로 공장서 일해
바가지를 들고 밥동냥을 다니며 어렵사리 피난시절을 겪어내던 시절. 그래도 공부는 포기하지 않으려 대구여자중학교를 찾아갔다. 거기서 가마니를 깔고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멀리선 보이지도 않는 조그마한 흑판 하나에 수백명이 둘어앉아 배웠다.
그러나 하도 굶주려 머리는 어질어질하고, 선생님 말씀은 잘 들리지도 않았다. 배고프다는 생각, 우리 엄마를 살려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다시 한번 이를 악물고 군복 만드는 공장에 미싱 ‘시다’(보조)로 들어갔다. 어린 나이였지만 부지런히 미싱을 배웠다.
세상 어느 곳에도 믿을 사람도 없고 의지할 사람도 없었다. 나는 갈수록 악바리가 되어갔고, 무슨 일이든 두려움없이 덤볐다. 작은 체구였지만 나무도 직접 하러다니고 노동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그렇게 자존심은 잠시 접었지만 어머니에 대한 애처로움은 갈수록 커져갔다.
저녁이면 혼자 숨죽여 우는 어머니가 너무 불쌍했다. 먹고 살만한 외가댁에 섭섭한 마음만 들었다. 외손주들을 돌보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당신 딸, 당신 누이라도 좀 챙겨주시지. 전쟁 전에 잘살 때는 어머니한테 온갖 것을 다 빼앗아가며 가깝게 굴더니, 얻어낼 만한 것이 없으니 박대만 하는 외가 사람들이 밉기도 했다.
급기야 나는 “엄마 시집가라. 동생들은 내가 돌본다. 우리 김씨 집안과 연결돼 고생하지 말아라”라고 소리질렀다. 당시 혼자 아이들을 키우는 어머니를 보고 주변에서 중매하려는 이들도 많았다. 날마다 저녁이면 어머니와 실랑이를 벌였다.
그때 우겨서라도 어머니를 시집보내야했는데…. 죽도록 고생만 한 어머니는 결국 굶주림에 지쳐 세상을 떠나셨다.
내 인생에서 가장 고마운 사람이 바로 그때 생겼다. 베일을 곱게 쓴 수녀님. 가난한 살림에 장례식은 엄두도 못내고, 전쟁통에 누구도 돌봐주지 않았던 어머니의 시신을 안장해준 사람은 수녀님들이었다. 지금도 수녀님의 모습은 늘 마음 한켠을 차지하고 있다.
그럭저럭 시간이 흐르고, 나는 연극계에 발을 들였다. 시집가기 싫은 마음도 연극무대에 뛰어든 이유 중 하나였다. 극단 ‘대중’에서의 활동이 첫 시작이었다. 시작부터 ‘똘똘하다’고 인정받은 나는 다른 배우들과 달리 연구생 시절을 보내지 않고 바로 주인공으로 발탁됐다. 당시는 TV도 없는 시절이라 사람들에게는 연극이 큰 즐거움이었다. 극장을 찾아다니며 유랑공연생활을 이어갔다.
여배우로 한참 활동하다 결혼
극단 생활도 배고프긴 마찬가지였다. 특별히 월급이 나오는 것도 아니었고, 극장에 관객이 좀 적다 싶을 때면 밥값을 못내 여관에 볼모로 잡혀있기도 했다.
당시 극단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여주인공이었기 때문에, 돈을 갖고 올때까지 늘 여주인공을 붙들어두곤 했다.
선배들은 나를 무척 애지중지 돌봐줬다. 그 시절엔 여배우들이 귀했다. 기존에 활동하던 배우들은 북한으로 많이 넘어갔다. 선배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게다가 머리가 좋다는 칭찬도 많이 받자 나는 콧대가 높아져 버릇없이 굴기도 했다.
그런 나를 하느님께서 그냥 두시지 않았다. 그 이후 겪은 수많은 고난들은 하느님께서 나를 깨우치도록 이끈 도우심이 아닌가 생각한다.
여배우로 한창 활동하던 시절, 아버지의 권유로 한 남자를 만나 결혼했다. 그리고 4.19 혁명, 5.16 쿠데타 등의 여파로 극단은 그만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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