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교구 설정 40주년 기념 심포지엄…
“한국땅에 ‘복음의 씨’ 뿌리려 노력했을 것”
마산교구는 6월 2일 진해시민회관에서 ‘세스뻬데스 신부의 방한과 선교활동’을 주제로 교구설정 40주년 기념 심포지엄을 열었다. 이번 심포지엄은 1593년 진해 웅천에 상륙해 같은 해 12월 27일 미사를 봉헌했다는 세스뻬데스 신부의 방한과 활동을 살펴보고 새로운 각도에서 그 의미를 살펴보고자 마련됐다.
마산교구 사목국장 허철수 신부는 환영사를 통해 “이번 심포지엄은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었던 교회사적인 기존 입장인 북방전래설을 반대하여 남방전래설을 주장하기 위해서나 혹은 양극화 논리로 논쟁으로 삼으려는 것이 아니다”면서 “세스뻬데스 신부를 통해 하느님께서 우리 민족에게 드러내신 사랑의 표징이 무엇인지를 재발견하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심포지엄은 마산교구장 안명옥 주교의 기조강연과 박화진 교수(부경대)의 ‘16세기 일본에 주재한 선교사들의 포교활동’, 박철 총장(한국외국어대)의 ‘한국에서 세스뻬데스 신부의 선교활동’, 마백락 부소장(영남교회사연구소)의 ‘초기 한국천주교회 복음전파 과정’ 발제로 진행됐다.
안명옥 주교는 기조강연에서 “세스뻬데스 신부가 조선에서 머물렀던 1년이란 세월의 의미와 무게를 제대로 헤아려 보고 싶다”면서 “오늘 이 자리는 세스뻬데스 신부의 삶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철 총장은 발제를 통해 “세스뻬데스 신부가 전쟁을 돕기 위해 일본군을 쫓아 한국땅에 온 것이 아니라 예수회 선교사로서 한국 땅에도 복음의 씨를 뿌리기 위해 노력했을 것으로 생각된다”며 “비록 그가 일본군의 요청에 따라 한국을 방문하게 됐지만 종교적 임무가 방한의 가장 큰 이유였음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박총장은 또 “세스뻬데스 신부의 방한은 종교적 인연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이를 계기로 그가 전쟁을 목격한 서양의 유일한 증인이 되었다”면서 “보고 들은 여러 사실을 4통의 서간문으로 남겼는데 이것이야말로 16세기 한국에 관한 최초의 직접적인 기술로 큰 의미를 지닌다”고 밝혔다.
이에 박총장의 논찬자로 나선 전수홍 신부는 “세스뻬데스 신부의 방한 목적에는 분명 종교적 임무를 띠고 일본군들에 대한 사목?선교활동과 조선인들에게도 선교활동을 펴려는 의지를 지녔다는 점을 추측해볼 수 있다”며 “하지만 행동의 제약과 적대감을 지닌 조선인들이 그에게 교리를 듣고 세례를 받는 일이 가능했겠는가 하는 점은 이에 대한 사료가 나오기 전까지 의혹으로 남는다”고 지적했다.
발제요지
“일본 근세문화 형성에 지대한 영향 미쳐”
-16세기 일본에 주재한 선교사들의 포교활동(박화진 부경대 교수)
1549년부터 1643년에 이르는 그리스도교시대에 일본에서 활약했던 서양 선교사들의 활동은 크게 예수회, 프란치스코회, 아우구스티노회, 도미니코회 4개 수도회로 나눌 수 있는데, 후일 탄생한 일본교구까지 포함한다면 5개 수도회가 있었다. 당시 활약한 총 318명의 선교사 중에서 수도회별 선교사 비율은 예수회 191명(60%), 프란치스코회 64명(20%), 도미니코회 32명(10%) 등으로 예수회 소속 선교사가 전체의 2/3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스도교시대 초기부터 말기까지 활동한 선교사들은 예수회이며 이들이 1549년 이래 34년동안 초기 일본 그리스도교 전례 보급에 주로 활약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0년 단위로 서양 선교사들의 입국동향을 살펴보면 1570~1610년대의 경우 최소 30여명 이상 증가하였는데, 특히 1600년대의 경우 10년동안 98명이나 급증 했다.
16세기를 중심으로 일본에 주재했던 서양선교사들이 활동했던 시기는 매일 전쟁으로 시작하여 끝나는 전국시대의 와중이었으나 정치적으로는 중세시대에서 근세로 태동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계속되는 전란과 봉건영주들의 수탈, 하극상의 투쟁속에 전래된 그리스도교와 포르투갈 무역은 백성과 영주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었다. 1549년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의 그리스도교 포교활동 이후 매년 1~2만명 이상의 신자가 증가해 1600년 무렵엔 약 60만명의 신자가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그리스도교의 일본 전래는 단지 이질적 요소의 새로운 종교가 유입되었다는 사실에 그치지 않고 일본 근세문화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니 이른바 남만문화의 붐이었다.
“조선인 전쟁포로들과의 접촉 가능성 커”
-한국에서 세스뻬데스 신부의 선교활동(박철 한국외국어대 총장)
역사적으로 볼 때 스페인 마드리드 태생의 세스뻬데스 신부가 16세기 조선땅을 밟은 최초의 서양인이며, 임진왜란을 목격한 유일한 증인이다.
1597년 2월 26일자 세스뻬데스 신부의 편지에서 직접 지적한 것 처럼 그는 한국땅에서 1593년 12월 27일부터 일년여동안 체류했다. 세스뻬데스 신부는 2천여명의 일본인 천주교 병사들에게 강론을 하고 세례를 주었다. 그의 방한은 단순히 일본인 병사를 위한 복음전파사업 말고도, 예수회가 1566년부터 계획하기 시작했던 조선땅에 복음전파하는 과업을 실천에 옮길 계획도 있었을 것으로 보아야 한다. 물론 그의 방한이 가등청정의 밀고로 일년만에 끝나는 바람에 충분히 의도와 계획을 수행할 시간이 없었을 것이나 최소한 일본군 요새에 붙잡혀 있던 수많은 전쟁포로들과의 접촉 가능성은 크다고 본다.
일본으로 돌아간 그는 한국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꿈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전쟁 중에 수많은 조선인들이 포로로 일본에 잡혀간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규슈지방에서 예수회 선교사들은 조선인 포로들을 천주교 신자로 만들었다. 그중에는 조선인들이 가톨릭 신자가 되어 일본에서 순교했던 것이다.
사료만으로는 세스뻬데스 신부가 조선 땅에서 조선인들에게 복음전파를 했는지에 관한 직접적인 기술을 충분히 찾을 수 없다. 발견된 자료와 편지에 의하면 그는 단지 일본군의 요새 주위에서만 복음을 전파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일본땅에서 이루어진 조선인들의 천주교 개종과 순교가 그 이후 조선의 교회사에 영향을 미쳤다는 직접적인 증거가 미미하다고 해도 한국 교회사의 전사(前史)로는 인정해야 할 것이다.
“방한, 예수회 조선포교계획의 일환일 수도”
-초기 한국천주교회 복음전파 과정(마백락 영남교회사연구소 부소장)
중국의 천주교 수용 과정이 당나라, 원나라, 명나라 3단계를 거쳐 확실히 뿌리 내린 것 처럼 한국 천주교회도 △임진왜란 때와 병자호란 △1600년대 중국에 드나들던 사신들에 의한 서양문물과 서학서 소개 △1750년대 실학자 성호 이익 선생과 제자들의 서학서 연구 △1779년 및 1784년 이승훈의 북경 세례 후 동료들과 신앙공동체를 이루어 포교활동을 시작하므로써 이 땅에 복음이 확실히 정착되어 뿌리를 내린 4단계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을 침탈한 일본군 대장 소서행장(아우구스티노)은 오랜 전쟁으로 피폐해진 병사들의 사기진작을 위해 특별히 선교사 한명의 파견을 예수회 일본 준관구장인 고메스 신부에게 요청했다. 이미 1587년 풍신수길이 서양 선교사들의 추방 명령을 내리고 천주교 박해를 시작했음에도 그의 명령을 어기며 은밀히 선교사 파견을 요청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세스뻬데스 신부의 조선 파견은 공식적인 군종 신부의 신분이라기보다는 비공식적으로 소서행장의 요청에 의해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미 1571년 당시 일본에 머물고 있던 가스빠르 비렐라 신부가 조선의 포교활동을 위해 건너갈 계획을 세웠던 일이 있은 후 계속 조선 포교활동을 계획했던 예수회의 선교계획을 실행에 옮기려고 한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초기 한국천주교회의 복음전파 과정은 어느날 갑자기 짧은 시간에 이뤄진 것이 아니라 1593년 12월 임진왜란 때 세스뻬데스 신부의 방한부터 시작해 복음전파의 과정이 단계별로 숱한 어려움중에서도 자발적으로 노력해 마침내 완전히 뿌리를 내리고 정착, 202년만에 완전한 교회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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