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페니키아 여인의 대담한 행동은
굳센 믿음 간직한 그리스도인의 모형
10. 이방인들을 상대로 활동하신 예수님(7, 24~37)
시로페니키아 여인의 이야기(7, 24~30)
바리사이와 율사들과의 긴 논쟁 후에 예수님께서는 ‘띠로’라는 이방인 구역으로 향하신다. 갈릴래아 북쪽과 맞닿은 이 지역에는 여러 민족이 살고 있었고 주로 이방 종교를 믿고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도 알아차리지 않도록 어떤 집에 살짝 들어가셨는데, 결국 사람들에게 알려진다(24절). 예수님께서 숨어 계시고자 하나 결국 드러나시고 말았다는 것은 마르코가 즐겨 사용하는 소재로(1, 44~45; 6, 32~33; 7, 36), 숨어 계시는 것은 선교 사명과는 부합하지 않는다.
더러운 영이 들린 딸을 둔 어떤 부인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와서, 그분 발 앞에 엎드린다. 자기 딸에게서 마귀를 쫓아내 달라고 청하는 이 부인은 헬라(이교도) 사람으로서 시리아-페니키아 출신이라고 소개된다. 그녀의 이름은 밝혀지지 않은 채 언어, 문화, 종교, 국적, 인종, 성 등의 특성을 통해 신원이 알려진다. 다른 때와 달리 이 이야기에서는 군중과 제자들이 등장하지 않고 예수님과 이 여인만이 독대하고 있다(25~26절).
언뜻 보기에 구마 기적사화에 속하는 이 이야기는 여느 기적 이야기와 달리 전개된다. 예수님께서는 치유(악령에서의 해방)를 거부하시고, 이야기의 중심이 기적 이야기에서 예수님과 여인 사이의 논쟁으로 넘어간다.
예수님의 태도는 평소 사람들의 필요에 마음이 움직여 곧바로 행동에 옮기시는 것과는 달리, 여인의 청원을 거절할 수 있는 우월한 위치에서 여인에게 결코 호의적이지 않은 태도를 보이신다. 오히려 예수님의 태도에서 당시 유다인과 비유다인간의 인종적인 갈등, 가부장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자와 남자의 불평등한 관계를 그대로 볼 수 있다.
가부장 사회에서 여자들은 남자들의 말을 지지하고 긍정하는 데 익숙하며, 자신들의 명예가 손상되고 무시되는 것과는 상관없이 상대방을 긍정하고 지원하는 방식으로 말한다. 이는 여자들이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여인은 물러서지 않고 사정한다. 여인과 예수님 사이에 논쟁이 벌어진다.
예수님: “먼저 자녀들을 배불리 먹여야 한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27절)
여인: “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28절)
여인은 성경에서 드물게 자기 목소리를 가지고 예수님께 직접 말한다. 이들의 대화는 빵-자녀-식탁-집-개 등에 대한 신학적 논쟁이 중심에 있다.
여인의 대답은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의 우선성을 존중하면서도 비유다인들도 예수님의 식탁 공동체에 포함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다.
예수님: “네가 그렇게 말하니, 가 보아라. 마귀가 이미 네 딸에게서 나갔다.”(29절)
여인은 예수님의 모욕적인 비유 말씀을 논박의 근거로 삼아 논쟁하고, 예수님으로 하여금 자신의 말에 따라 딸의 치유를 선언하시게 함으로써 딸의 행복을 얻어낸다. 비난과 거부에 굴복하지 않고 이를 역습하면서 반박하는 여인의 태도에서 자신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굳은 의지와 확신을 살펴볼 수 있다.
이 여인의 대담성과 용기는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이런 중요한 신학적 논쟁을 여인과 예수님의 대화 안에 담은 이유는 무엇일까?
해설자는 30절에서 “그 여자가 집에 가서 보니, 아이는 침상에 누워 있고 마귀는 나가고 없었다.”고 말함으로써, 예수님에 의해 일어난 기적을 증언하는 증언자의 역할을 하게 된다.
이 이야기는 집의 안/밖, 유다 본토/외국 땅, 유다인 남자/이방인 여자, 정결/불결, 자녀/개, 믿음/불신 등을 대조적으로 보여줌으로써, 당시 사회 안에 존재하던 여러 종류의 차별을 폭로하고, 이제 새 시대가 되었으니 부조리한 관습과 제도를 넘어 이방인을 위한 구원의 정당성을 인정할 수 있도록 초대한다. 시로페니키아 여인의 행동은 유다인과 대조적으로 굳센 믿음을 간직한 이방계 그리스도인의 모형으로서 이방 선교의 신학적 근거를 마련해 줄 것이다.
최혜영 수녀 (성심수녀회.가톨릭대 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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