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종교·문화 안에 공존해야”
거리를 지나다 보면 자동차 후사경에 묵주나 염주를 걸어놓은 모습이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조금 더 유의하면 십자가도 있고 성모상도 보인다. 별거 아닌 것 같은데 생각해 보니 참 신기한 일이다.
자동차에 걸어놓은 것을 가지고 운전자의 종교를 구별할 수 있으니 말이다. 종교를 넘어 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상황에서도 자신이 믿는 절대자에게 기구하고 의지하며 안전운전을 바라는 소박한 바람을 여기서 발견할 수 있다.
민간신앙과의 관계
우리조상들도 액(厄)을 막아주는 부적을 몸에 지니고 다녔다는 것을 생각해볼 때 이러한 행위는 민속 혹은 민간신앙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민속 또는 민간신앙과 가톨릭의 관계는 오늘날처럼 이렇게 편하게 생각할 수만은 없는, 전래사적 아픔을 간직하고 있었다. 조선후기 가톨릭이 유입되고, 뒤이어 들어온 개신교 선교사들은 서구문화와 결합된 신앙을 우리에게 전해주면서, 우리의 민속 문화를 좌시하였다.
문화충돌로 파악되는 박해 역시 우리 민족의 전통 민속인 제사금지조치로 촉발되었다. 가톨릭을 비롯한 그리스도인들은 마을의 성황당을 부수고 그 위에 교회를 짓는 등 ‘미신’과 ‘우상’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민속을 폄하하였다.
이러한 흐름에 변화가 생긴 것은 1939년 교황 비오 12세의 〈중국 예식에 관한 훈령〉과 1940년 〈조선 8교구 모든 감목의 교서〉부터이다. 이후 1962년 바티칸 공의회와 후속조치들을 통해 지역문화와의 교류가 시도되기는 하였다. 그러나 현재까지 전통적인 가르침의 관성(慣性, inertia) 등 여러 가지 원인으로 전통문화나 민속에 대한 교회의 자세와 인식이 바뀐 것은 아니다.
삶 속에 파고든 민속
가톨릭과 한국 민속을 상호문화화(Interculturation)라는 관점에서 고찰했을 때 그 상관성은 크게 셋으로 대별할 수 있다.
첫째는 위령기도의 형식이나 장례 절차의 삼우(三虞)미사처럼 우리 민속이 가톨릭 속으로 스며들어온 경우로 토착화의 좋은 사례가 된다.
둘째는 가톨릭 수용의 배경으로서의 민속을 들 수 있겠다. 생소한 가톨릭이 우리 사회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던 것은 가톨릭의 신심행위와 유사한 민속이 우리 사회에 이미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축복의식과 민간의 고사, 미사예물과 복채, 예물 준비의 엄격성, 피정과 산기도, 새벽미사의 관행과 새벽치성 등은 상호친연성이 강한 요소들로 가톨릭 수용의 배경으로 작용한 것들이다.
셋째는 교회의 가르침과는 달리 풍수나 점복(占卜) 같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접촉을 유지하고 있는 것들이다. 이는 가톨릭 신자와 일반인의 차이가 크지 않은 것으로 가톨릭 이전에 우리의 삶 속으로 파고든 민속들이다. 이로보아 민속은 우리가 의식하지 않는 가운데에서도 끊임없이 상호 교류하고, 변형되어 우리의 종교현실에 작용한다고 할 수 있다.
공존할때 살아남아
이런 점에서 “모든 문화는 종교를 중심에 놓고 있으며, 문화 없이 다른 종교를 이식하는 경우 그 종교는 끝내 소멸될 수밖에 없다. 만약 어떤 문화를 중심이 되는 종교로부터 분리시키면 민족정신을 훼손하는 것과 같다.
(중략) 가장 합리적인 대안은 가톨릭 문화가 그 지역 종교와 함께 그 지역문화 안에서 공존할 때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고 언급한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말은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김영수(가톨릭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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