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자 성직자가 토착화 장애?
지금까지 하느님의 세 위격간의 소통과 하느님과 인류와 온 생명계의 대화를 중심으로 토착화의 주체와 대상과 목적과 삶의 자리 등에 관하여 살펴보았다. 그러면 하느님이 바라시고 예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의 다스림을 어떻게 뿌리내리고 가지뻗게 할 것인가?
‘한국신학의 방법론과 실천: 민중과 함께 신학하기의 한 가톨릭적 사례’라는 주제로 쓴 나의 학위 논문은 토착화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연구한 것이다.
여기서 세 가지, ‘이원론적 세계관의 극복을 통한 생태-생명 신학의 구현’, ‘자기의 삶의 자리로서 역사에 대한 충실’, ‘배타주의의 극복 대안으로서 ‘열린 다원론’의 포용’을 방법으로 제시하였다. 이런 방법론은,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 세계 신학과 이땅의 신학 비전의 깊은 대화를 이끄는 원리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신학의 방법론에 관해서는 뒤에 가서 볼 기회를 마련하기로 하고, 이번 호부터는 그동안 미룬 토착화의 유형을 살펴보기로 한다. 이를 통하여 오늘 우리의 신학과 사목의 현주소를 어두우면 어두운 대로 밝으면 밝은 대로 돌아보면서 미래 비전을 성찰하고자 한다.
‘입’으로의 토착화
토착화는 소통의 문제요 실천의 문제라고 했는데, ‘입’이 소통의 실천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입으로’ 차원은 토착화의 한 결정적 존재 방식을 현시한다. 그런데 ‘입으로 하는 토착화’라고 하면, 토착화를 ‘말로만’ 하는 것을 뜻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렇게 보는 데서 그쳐서는 안되겠지만, 사실, 토착화를 체계적으로 제시하여 실천하지 못하고 말만 무성하게 떠돌게 만드는 상황이 나타날 수 있다. 오늘 우리 가운데서도 그런 측면이 없는 것이 아니다.
일례로, 김수환 추기경은 오래 전에 오히려 성직자들이 토착화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추기경은 토착화와 관련한 토론에 참가하여 “토착화는 밑에서부터 올라와야 한다”는 데 공감을 표하면서 “어떤 면에서 신학자들이나 주교들은 서구적인 면에 익숙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라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따라서 이미 우리 자신 안에 토착화에 대한 장애가 내재되어 있는지도 모른다”고 고백했던 것이다(〈사목〉 111, 1987/5, 43∼4).
이것은 우리나라에서 사제나 주교 출신 신학 교수와 일반 성직자들이 토착화를 반대해서 한 말이라고 보이지는 않는다.
특히 이 시대에는 성직자와 수도자 가운데 토착화의 필요성을 거부하거나 소홀히 하는 예가 별로 없다. 그러나 토착화에 대한 깊은 이해와 실천 비전을 갖춘 경우는 그렇게 쉽게 발견되지 않는 것도 현실이다.
“아직도 서구교회에 의존”
실제로, 추기경이 저렇게 고백한 지 19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런 현상이 여전히 감지된다. 단적으로, 그동안 토착화 신학의 선구자로서 탁월한 업적을 쌓아 온 심상태 몬시뇰이 2005년 11월에 정년 퇴임을 맞으면서 토착화의 현주소를 이렇게 진술한 적이 있다.
“공의회 이전의 폐쇄적, 배타적, 로마-서구적 교회 수호에 주력하며 아시아 내지 한국 고유의 종교-문화 자산을 수렴하는 토착화를 위해 진정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는 아직도 신학 사상, 전례 양식, 신심 운동, 영성 수행, 교리 교육, 건축 양식 등 교회 생활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서구 교회에 일방적으로 의존합니다.”(가톨릭신문에서)
상당수의 성직자들이 토착화를 해야 한다고 말하는 상황인데도, 이들에게서 그렇게 할 의지와 실천이 명실상부하게 감지되지 않아 온 현실이 유발시킨 결과를 아픈 심정으로 지적한 것이다.
이를테면 ‘입’으로는 토착화를 말해도 몸 전체를 통한 실천은 보이지 못하면서 열망과 실천의 괴리를 보이고 실질적 노력과 성과의 부족을 드러내 온 현상이 김추기경이나 심몬시뇰의 이같은 비판을 불러오고 있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사람들은 추기경의 위의 진술을 겸손의 표현으로 볼지 모르지만 현장에서 겪어 보면 그것이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그런 측면이 있다는 것을 철저하게 자각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 신학교 교육의 중요성이 더욱 더 절박하게 드러난다고 할 것이다.
황종렬(미래사목연구소 복음화연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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