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만 올린 보금자리…비만 피해도 다행
의료활동·구호품 배급 일부지역에 국한
이슬람 신자만 텐트주는 등 종교차별도
[인도네시아 욕야카르타=이승환 기자]
인도네시아 욕야카르타주를 폐허로 만든 지진은 이미 잊혀졌는가.
5월 27일 지진이 인도네시아 자바섬 중남부 일대를 강타한 지 20여일. 전 세계가 월드컵 열기에 파묻혀 있을 때, 힘없이 무너져 내린 보금자리 아래 가족을 묻어야 했던 70여만명의 이재민들은 여전히 재난 극복을 위한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본지는 6월 8일부터 13일까지 5박6일간 이번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은 인도네시아 세마랑대교구 관할 지역에 기자를 파견, 현지 피해상황과 구호활동, 교회의 중·장기 재건사업 전망을 살펴봤다.
갓태어난 아기 외양간으로
욕야카르타주에서도 가장 피해가 컸던 반툴시 제로리 마을.
부앙(Buang.56)씨는 5월 26일 손녀 살사빌라(Salsabila)를 얻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불과 몇 시간 후 땅이 흔들리고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몸은 빠져 나왔지만 불과 얼마전까지 집이었던 곳은 폐허로 변했다.
할 수 없이 며느리와 손녀를 외양간에 옮겼다. 소를 키우던 냄새나고 지저분한 곳이었지만 온전한 곳은 외양간뿐이었다. 새벽이슬만이라도 피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부앙씨는 무너진 집에서 판자와 벽돌을 가져와 임시 거처를 만들었다.
집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곳에 며느리와 손녀를 재우고 자신은 아들과 함께 노숙한다. 벌써 보름째다. 구호 단체에서 텐트를 나눠준다고 하지만 어떻게 받아야 할지 모른다. 산모 수라니(Surani.21)는 산후 조리를 제대로 못해 아직도 하혈을 한다. 손녀도 며칠 째 열이 높고 왼쪽 눈은 충혈 돼 있지만 병원에 가지 못했다. 두 시간 반이나 걸어야 하는 데 이제 갓 태어난 손녀에게는 무리다. 환자가 너무 많아 들어가지도 못한다고 한다.
‘퉁퉁퉁퉁’
켄통안(Kenthougan.마을의 대소사를 알리는 대나무로 만든 기구)이 요란하게 울렸다. 지진이 일어났음을 알리는 소리다. 미약하지만 흔들림을 느낄 수 있다. 어린 손녀가 요란한 소리에 놀라 울음을 터트린다. 아이를 안은 산모의 눈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다.
의료진 찾아오지 않아
슈퍼하리조 마을의 스리 사르티니(Sri Sartini.34)씨는 어머니를 잃었다. 일흔이 넘은 어머니는 지진이 닥쳤을 때 미쳐 집에서 나오지 못하고 벽돌더미에 깔렸다.
“집에 들어가서 어머니를 모시고 나와야 했는데......너무 무서워서 발도 뗄 수 없었어요.”
사르티니씨는 무너진 잔해를 보며 눈물을 글썽인다. 이웃에 살던 두 오빠도 집을 잃었다. 남자들은 천막을 이불삼아 노숙을 하고 여자와 아이들은 구호캠프에서 마련해 준 텐트 한 동에서 공동생활을 한다.
켄통안이 또 다시 울린다. 또 ‘지진이냐’고 묻자 식사시간이란다. 배급받은 구호식량으로 마을 주민 전체가 함께 천막에서 식사를 한다.
주민들은 대부분 감기에 걸렸다. 충격으로 가슴앓이를 호소하는 이들도 많지만 아직까지 어떤 의료진도 이 마을을 찾아오지 않았다.
사르티니의 아들 셉티안토(Septianto.10)가 학교를 마치고 집이 있던 자리로 돌아왔다. 셉티안토는 책과 연필, 가방도 없다. 학교도 무너져 운동장에 천막으로 만든 임시학교에서 수업을 한다. 임시학교가 문을 열었지만 친구들 중 몇 명은 아직까지 볼 수 없다. 그들이 큰 길로 나가 구호단체 사람들에게 구호품을 구걸하고 있는지 아니면 죽거나 다쳤는지 셉티안토는 궁금하다.
성당 완파 등 피해 입어
지진 직후 인도네시아 정부 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구호단체에서 지원에 적극 나서고 있지만 아직까지 이재민들은 지진 피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슈퍼하리조나 제로리처럼 시 외곽의 마을은 구호의 손길에서 한참 벗어나 있으며, 구호식량이 떨어진 곳도 많다는 것이 현지 NGO관계자의 말이다.
이 관계자는 언론에 비춰진 의료진 활동이나 구호품 배급도 일부 지역에만 국한돼 있어 정말 도움이 필요한 지역에는 아직까지 지원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완파된 가옥에는 미화 3300달러, 반파에는 1000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하겠다고 밝혔지만 언제쯤 지급될 지는 아직까지 결정되지 않았다. 아울러 일부 지역에서는 이슬람교 신자들에게만 텐트를 지급하는 등 종교를 차별해 구호품을 지급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인도네시아 내에서도 가톨릭신자 비율이 높은 욕야카르타에서는 이번 지진으로 많은 신자들이 피해를 입었다.
세마랑 대교구에 따르면 교구 내 신자 중 3만5177명이 집을 잃었으며 158명이 죽고 1000여명 이상이 다쳤다. 성당도 두 곳이 완파됐으며 17개 성당은 부분적인 피해를 입었다. 교회에서 운영하는 학교도 한 곳이 완파됐으며 14곳이 반파돼 다시 짓지 않으면 안될 상황에 처해 있다.
■“한국교회 나눔에 감사”
세마랑대교구 지진 구호 담당 리아나 신부
“누군가에게 의지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셨으면 합니다.”
교구 내 지진 피해 주민 구호를 담당하고 있는 리아나(Riana) 신부(세마랑대교구 욕야카르타대리구 사회복지회 회장)는 한마음한몸운동본부를 비롯한 한국교회가 구호사업에 관심을 갖고 지원해 준 데 대해 감사를 표하면서 이러한 도움을 통해 이재민들이 꼭 재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리아나 신부는 “이 지역은 다른 인도네시아 지역에 비해 교세가 강해 신자들의 피해도 컸다”며 “대교구와 각 대리구 뿐 아니라 성당에서도 자체적으로 구호품을 모아 피해주민들에게 지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규모가 워낙 큰 데다 가장 지원이 시급한 텐트는 턱없이 모자란 형편이라고 리아나 신부는 지적했다.
리아나 신부는 “1994년 메라피 화산이 폭발해 신자 20여명이 사망하는 일이 있었지만 이 지역에 이렇게 대규모 재앙이 닥친 것은 처음”이라며 “여러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는데 도움을 준 한국교회에 감사를 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리아나 신부는 “지난 지진해일 때 한국교회가 인도네시아 아체 지역 재건을 위해 힘쓴 것을 잘 알고 있다”며 “긴급구호 뿐 아니라 주택 건축, 교회.병원 재건 등 중장기 구호사업을 진행하는 데 있어 인도네시아 교회와 한국교회가 손을 맞잡고 함께 어려움을 헤쳐 나갔으면 한다”고 청했다.
도움주실 분
우리은행 454-005324-13-045 한마음한몸운동본부
우리은행 064-106713-13-432 (사)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농협 386-01-013442 천주교중앙협의회
사진설명
▶집을 잃은 이재민들이 살고 있는 임시 거처. 지붕만 올린 거처는 비만 간신히 피할 수 있을 정도다.
▶지진 바로 전날 태어난 살사빌라와 엄마 수라니.
▶리아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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