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수발 13년만에 남편완치
자라며 고기냄새도 못맡아
남편 병수발에 아이들을 키우며, 온종일 일하는 하루하루는 강행군의 연속이었다.
남편을 위한 하루 세끼 밥도 내 손으로 직접 지어야만 했기 때문에 다른 배우들이 점심을 먹을 시간이면 나는 집에 쫓아와서 식사를 챙겨주고, 또다시 나가는 일상을 반복했다. 한푼한푼 아껴 간호사를 부를 만한 돈이 모이면 그 돈으로 과일을 사서 남편을 먹였다. 주사기는 냄비에 끓여 소독해 내가 직접 피하주사를 놔줬다.
지금처럼 자가용이 있던 시절도 아니라, 전차를 타고오가며 늘 바쁜 걸음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전차비도 없을 때는 이고지고 뛰기 바빴다. 그렇게 13년만에 남편의 병은 완치됐다.
내가 70대 노인이 되었지만 지금도 걷는 것 만큼은 정말 잘한다. 이때 다져진 것이 아닌가 한다.
다행히도 나는 체력은 참 좋았던 것 같다. 아니 깡마른 몸이었지만, 아마도 정신력이 강하지 않았나 싶다.
자라면서 고기는 냄새조차 못맡아보고 살았었다. 먹을 것도 아무것도 없던 시절, 그때 산으로 들로 다니며 메뚜기, 아카시아꽃, 송화가루, 머루, 다래, 산딸기 등을 따먹곤 했던 것이 혹시 보약이 되었을까. 우리 아이들은 나를 위로하느라 “요즘엔 그게 ‘웰빙’ 삶”이라며 “그래서 엄마가 건강하고 나이도 안들어보이는 것”이라고 웃으며 말하곤 한다.
어쨌든 당시는 하도 고생이 심해서 “내가 왜 이런 고생을 하느냐”며 비관하거나 누군가를 원망할 사이 조차 없었다. 그저 당연히 내가 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하면서 열심히 헤쳐나가기 바빴다.
점심은 허구헌날 굶으며 냉수 한그릇으로 목을 축이고 일했지만, “저 사람들은 나와 다른 팔자라서 저렇게 잘 먹고 잘 사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할 일, 내가 해야만할 일”이라고 생각하며 남을 부러워하거나 원망하는 마음 한점 없이 살아왔다.
“하느님 너무 감사합니다”
그래서일까? 하느님께서 내가 잘하건 못하건 투덜대지 않고 내 몫을 충실해 하는 것을 보고 나를 당신의 자녀로 구원해주신 듯 하다. 징징거리고 원망하면 하느님도 날 미워하지 않았을까.
요즘에도 매일같이 밥상을 앞에 두면 “하느님 너무 감사합니다”라는 기도가 절로 나온다. 장을 볼 시간이 없어 변변한 반찬 하나 올려놓지 못하고 먹을 때도 얼른 “감사합니다”라는 말부터 튀어나온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하느님의 돈으로 매일같이 밥을 먹으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나. 하느님께서 일거리며 먹거리를 떨어지지 않게 해주시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근데 요즘에는 웬일인지 ‘하느님 사랑합니다’라는 말만 하면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흐른다. 평화TV 교육 프로그램만 봐도 깨달음에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 나도 어쩔 줄을 모르겠다.
하느님 사랑의 맛을 본 나는 너무도 행복하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정성을 드리면 그 몇배를 보상해 주신다. 하느님께서 주신 과업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충실히 살 때 한치도 거짓없이 베풀어주신다.
가슴한켠에 남아 있는 아픔
이웃에 대한 사랑도 그런 것 같다. 그냥 사랑하며 사는 것은 나도 솔직히 힘들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다보면 자연스럽게 이웃에게 부드럽게 대하고, 사랑하게 된다. 온전히 하느님의 도구가 되었을 때 이웃사랑이 가능한 것이다.
참 열심히 살아왔지만 그래도 가슴 한켠에 남아있는 아픔이 바로 아이들이다.
남편의 약을 챙겨먹이는 대신, 아이들에게는 늘 맛난 먹거리 하나 챙겨주질 못했었다.
사진설명
김지영씨는 열심히 살았지만 가슴 한켠에 자식들로 인해 아픔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사진은 김지영씨가 출연했던 영화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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