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아직 한국적이지 않다”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한국 근.현대 가톨릭연구단이 2003년부터 3개년간 수행한 사회조사결과를 보면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오늘날 우리나라 사람들은 가톨릭을 매우 호의적으로 평가하며, 또 근대화 과정 속에서 가톨릭의 역할도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 문화와 혼재 안돼
그러나 이와 상반되게 가톨릭이 한국문화와 조화되는 정도를 묻는 항목에서는 23.3%가 부조화 상태라고 평가하고 있으며, ‘그저 그렇다’라고 답한 부분까지 포함하면 무려 62.2%가 가톨릭이 아직 한국적이지 않다는 응답을 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전래된 지 두 세기가 넘었지만 아직 한국천주교회가 우리의 문화적 토양에서 이질적인 것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우리 문화와 완전하게 혼재되어 내면화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학문적 접근으로의 서학이 신앙의 차원인 천주교로 변모한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200여년간의 흐름은 곧 가톨릭으로 표상되는 서구 사상과 우리의 전통 민속 문화가 만나는 실질적인 과정이다. 이 과정 초기에서 나타난 갈등은 19세기말 개항과 신교의 자유가 주어질 때까지 수많은 박해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 갈등이 사회적으로 표출된 계기가 제사와 관련된 진산사건이라고 보았을 때 전래 초기부터 가톨릭과 한국 민속의 관련성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매우 심도 있게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톨릭이 아직도 우리 문화로 인식되지 못하는 것은 그동안 두 문화 사이의 만남이 상호 균형적이지 못한 데에 그 원인이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오늘날까지 그러한 흐름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여기에는 교회의 정책적 오류, 한국에서 활동하였던 선교사들의 우월주의적 인식, 근현대의 역사적 상황, 근대화 과정에서 나타난 서구 지향주의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로서 오늘날 한국의 종교현실 속에서 민속 문화와 조화된 ‘우리’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게 되었다. 서구의 번역 신학이 주류를 이루고 있고, 또한 일각에서 토착화 신학을 고민한다고는 하나 그 근본적인 방법을 서구 신학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 가톨릭과 우리 문화의 상호 균형성을 유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한국인, 가톨릭신자’라는 우리의 정체성을 위해서 우리 문화에 바탕한 신학의 정립이 절실히 요구된다.
신앙, 문화와 조화해야
자신의 사회를 보는 이론을 자생적으로 만들어 가지 못하는 사회는 식민지적일 수밖에 없으며, 자신의 삶이 담겨 있지 않은 글읽기와 글쓰기에 일생을 바치는 것은 제 3세기 지식인의 식민지적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문화 상황보다도 서구 신학적 해석이 앞선 가톨릭을 비롯한 그리스도교의 현실은 바로 여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집을 짓세 집을 짓세 천당따라 집을 짓세/ 초목금석 잡된 물건 세상 공력 다 버리고 (중략) 십자가로 대문달아 사마잡귀 물리치고/ 천주실의 비를 삼아 허사망념 쓸어내고/ 묵상신공 손에들고 궁구심오 하다가서/ 집을 하나 지었으니 농업인들 없을소냐. - 천주가사 〈피악수선가〉
신앙 선조들이 불렀던 이 노래를 보면서 ‘한국인이며 가톨릭 신자로서의 나는 누구인가’를 생각해본다. 종교 다원주의 현실에서 우리 문화와 조화된 신앙이 더욱 아쉽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김영수(가톨릭대)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