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신앙 담은 ‘레퀴엠’ 작곡
죽은 이의 영혼을 위로하는 미사곡
오페라 교향곡 협주곡도 많이 남겨
불과 36년, 중년이 되기도 전에 요절한 짧은 생애였지만 서양음악의 대명사처럼 일컬어지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자신의 천재적 음악성을 세상에 떨치기에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말 그대로 천재 음악가였던 모차르트는 이미 5세라는 어린 시절부터 미뉴에트와 각종 소품들을 작곡하면서 일찍이 천재성을 드러냈던지라 그가 남긴 작품들은 성악과 기악의 모든 영역에 걸쳐 다채롭다.
더욱이 그의 작품들은 그가 겪어야 했던 빈곤과 곤궁의 삶을 반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작품들은 예술보다 생활을 앞세우거나 생활을 위해서 예술을 등지지 않았던 그의 엄격하고 숭고한 예술 정신을 시사한다.
때문에 온갖 속박을 거부하고 자유로운 예술가로서 겪어야 했던 고난들은 오히려 그의 창작열을 고취하고 더욱 깊숙이 내면의 세계로 침잠하게 함으로써 존재의 깊숙한 곳으로부터 새로운 음악을 향한 열정을 불태우도록 했던 것이다.
세간에 가장 널리 알려지고 사랑받는 그의 최후의 걸작 ‘레퀴엠’. 죽은 이의 영혼을 위로하는 이 장엄한 미사곡은 자신이 몸담았던 가톨릭 교회 음악의 전통과 전례 순서를 충실하게 따르며 그의 신앙을 음악적 성숙함으로 드러내고 있다.
여러 작곡가들의 레퀴엠 중에서 단연 으뜸은 모차르트의 이 레퀴엠이다. 어두운 라단조 음색과 반음계적 선율, 화성 진행으로 매우 진지하고 심각한 분위기로 이어지는 이 곡은 작곡을 요청한 발제크 백작의 재촉에 자기 죽음에 대한 불길한 예감을 느끼게 했다. 그의 생애 마지막인 1791년 작곡된 이 작품은 지금도 풀리지 않는 그의 ‘의문의 죽음’과 연관짓는 이들도 종종 있다.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잿빛 복장을 한 의문의 사나이가 그를 찾아와 비밀스럽게 작곡을 의뢰했고, 이미 병약한 상태였던 모차르트는 이때부터 심한 환영에 시달리면서 고통스럽게 작곡에 매달리다가 결국 그해 12월에 숨을 거뒀다는 것이다.
모차르트를 주인공으로 제작된 영화 ‘아마데우스’에서는 이 작품으로 모차르트를 심적으로 압박해 결국 죽게 만든 사람이 바로 모차르트를 질투한 궁정 작곡가 살리에르였던 것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실제 작품의 의뢰자는 발제크 백작으로 그는 죽은 아내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이 곡을 부탁했다고 한다.
어쨌든 그는 결국 부속가의 끝부분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고, 제자인 쥐스마이어가 첫 기리에를 끝부분에 다시 사용함으로써 작품을 완성했다.
1756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난 그는 요안네스 그리소스토무스 볼프강구스 테오필루스 모차르트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런데 후에 자기 편지나 작품에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라는 이름으로 서명을 했는데, 이것이 그에 대한 공식 이름이 됐다.
그는 이미 어렸을 때부터 빼어난 재능을 보여 4세 때부터 건반 악기를 배우기 시작했고 5세 때부터 작곡활동을 했다. 그의 부친은 그의 재능을 각지의 궁정에 알리기 위해 모차르트가 6살 때부터 여행을 떠나기 시작해 1762년에는 바이에른 선거후의 궁정이 있는 뮌헨에 가서 연주하고, 이어 빈으로 가서 여황제 마리아 테레사 앞에서 연주하도록 하는 등 많은 일화가 전해진다.
작곡가로서 그의 활동에 큰 영향을 준 것은 1763년부터 3년 동안 서유럽을 거의 일주하다시피 한 여행이었는데, 이 여정에서 J. 쇼베르트, J.C. 바흐 등의 영향을 받게 된다. 두 차례에 걸쳐 빈을 다녀 온 후 그는 1769년부터 4년 동안 세 차례나 이탈리아를 여행, 교황으로부터 훈장을 받기도 한다. 1777년까지는 주로 잘츠부르크에 머물면서 미사곡과 사교적 작품들을 작곡했으나 차차 이러한 활동에 불만을 갖기 시작하고 만하임, 파리 등지를 여행한다. 1781년에는 새로 임명된 잘츠부르크의 대주교와 불화를 겪게 돼 이후 빈에서 거주하기로 결심하고 그의 인생의 후반이 바로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이후 모차르트의 음악가로서의 활동은 어떤 한 직장에 매이지 않는 자유 예술가의 그것이었기에 그의 음악가로서의 활동은 단순히 청중의 취향에 얽매이지 않고 보다 높은 예술적 경지로 치달려갔지만 반대로 그의 생활은 곤궁에 빠지게 됐다.
빈 시대의 후반에 가면서 그의 곤궁은 심화되고 청중들의 취향으로부터도 멀어지면서 많은 빚을 지게 되고 결국 파산지경에 이른다. 더욱이 건강이 극도로 악화됨에 따라 모차르트는 ‘레퀴엠’을 작곡하던 중 1791년 12월 5일 짧은 생애를 마감하게 된다.
그의 작품들은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야 재평가됐다. 모든 장르에 걸쳐 다양한 작품들을 남겼는데, ‘요술피리’를 포함한 6개의 오페라는 이탈리아의 오페라와 달리 음악이 주도하는 새로운 형태였다. 그외에 가곡과 피아노 소나타, 변주곡, 많은 피아노곡과 실내악곡, 바이올린 협주곡과 피아노 협주곡 등으로 다양한 작품을 남겼다. 특히 그는 41개의 교향곡도 남겼다. 하이든, 베토벤과 함께 고전 시대를 대표하는 천재적인 가톨릭 교회 음악가였던 모차르트는 20곡의 미사곡을 작곡했는데 그 가운데 ‘참새 미사곡’과 ‘대관식 미사곡’이 유명하다.
사진설명
1756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난 모차르트는 ‘레퀴엠’을 작곡하던 중 1791년 12월 5일 짧은 생애를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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