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자녀들에게 은총주세요”
우리 본당의 어린이 친구들과 학생들은 일반 학생들과 차이가 난다. 뭔가하면 참으로 인사성이 밝다는 이야기다. 뭐 교육을 어떻게 시켰는가에서 차이가 나겠지만 우리 학생들은 어른들을 보면 무조건 허리를 굽히고 90도로 인사를 한다.
어떤 분들은 조직의 어떤 모습같다고 놀리기도 하지만 요즘 세상에 초등학생과 중고등 학생들이 이렇게 인사를 한다는 것만으로도 참으로 신선한 일이 아닐 수 없기에 난 늘 우리 친구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요즘 학생들에게 ‘너의 우상은 누구냐’라고 질문을 하면 거의 모든 학생들의 입에선 대부분 젊은 연예인들의 이름이 나온다. 그 이유를 물으면 역시 틀에 박힌듯 “멋지잖아요” “예쁘잖아요” “돈 많이 벌잖아요”라는 대답밖엔 듣지 못한다.
그들에겐 자신의 인생을 결정지을 수도 있는 자신의 우상을 한낮 돈과 눈에 보이는 현란함에 기준을 두고 판단해버린다. 무엇이 옳고 자신에게 중요한 것을 줄 수 있는 그 무엇인가를 찾기보단, 그저 쾌락과 세속적인 것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버린다. 물론 모두가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들에게 있어 교회란 그저 어쩔 수 없이 신자이기에, 부모가 강요하기에 다녀야만 하는 공간임에 틀림없다.
그래서인지 주일만 되면 짜증을 내고 성당에 와서도 그들의 표정에선 기쁨과 편안함의 미소보단 늘 불편함의 내음만 난다. 그래서인지 난 우리본당의 학생들을 볼때마다 늘 기쁨에 가득차곤 한다. 인사도 물론이거니와 정말 기쁨과 행복으로 가득찬 미소로 미사를 봉헌하는 그들을 볼때마다 신부만이 느낄 수 있는 행복감으로 충만해지곤 한다.
무엇하나 제대로 해주는 것도 없다. 돈 많은 본당도 아니기에 그들에게 맛있고 원하는 것을 그때그때 채워줄 수도 없다. 그래도 그들은 나를 믿고 또 그들 스스로의 인생에 벌써부터 참 의미가 무엇인지를 서로가 이야기하며 성당에 오는 모습 을 볼 때 난 그저 예쁘고 사랑스럽다는 표현 이외엔 해줄 말이 없다.
어느 날 한 어머니가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다.
“우리 애가 예전엔 성당소리만 하면 짜증을 냈었는데 요즘엔 너무 성당만 찾아요. 좀 바꿔주세요. 제가 이런말 하게 될 줄 꿈에도 몰랐어요.”
인상 험악하고 늘 거친 말과 행동만 하는 본당신부를 좋아라하면서 그래도 이렇게 기쁜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 새끼들이 난 너무 예뻐 죽겠다. 그런데 가끔은 이런 생각도 든다. 내가 그들에게 진정 예수님의 사랑을 채워줄 수 있는 자격이 있을까? 귀엽고 사랑스러운 내 새끼들이 훗날 나를 보고 어떻게 생각을 할까?
예수님. 정말 저희 본당의 친구들 너무너무 예쁘거든요? 그런데 제가 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게 정말 아무것도 없는거 아시잖아요. 당신이 이들에게 많은 기쁨과 은총 주세요. 당신의 예쁜 자녀들, 당신이 책임지셔야죠. 그렇죠.
오유성 신부(수원교구 오포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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