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한국사회는 힘든 시련의 땅”
“자매결연 등 신자들과의 꾸준한 교류 절실”
정착 후 겪는 스트레스로 우울증 시달려
부적응·정서적 장애 해결한 대책 시급
홈스테이·상담활동 등 활발히 전개해야
민족 화해의 시금석, 통일사목의 바로미터라 불리는 북한이탈주민을 대상으로 한 사목이 열매를 맺어가기 위해서는 전 교회 차원의 관심과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북한 복음화를 위한 활로를 개척하기 위해서는 남한 정착 과정에 있는 이탈주민들에 대한 보다 다양한 사목 방안 마련이 요청되고 있다.
한국 사회로 들어오는 북한이탈주민의 수가 꾸준히 늘면서 이들을 대상으로 한 각종 연구와 통계는 교회의 사목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준다.
최근 한국심리학회지에 발표된 ‘북한이탈주민의 우울 예측요인 : 3년 추적연구’에 따르면, 북한이탈주민들이 우울증에 빠지는 요인 중 ‘남한 정착 후 겪는 스트레스’가 북한이나 탈북 과정에서의 심리적 외상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나 적잖은 시사점을 제공해준다.
실제 비교적 사회 적응이 빠른 이탈주민가정 청소년의 경우 중·고교 중도 탈락률이 한국 전체 중·고등학생에 비해 각각 20배, 11배(2005년 8월 기준)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더구나 학업을 중도 포기한 탈북 청소년 중 상당수가 알코올의존증이나 게임 중독 등으로 대인기피 증세, 우울증 등 정신적 문제를 겪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이탈주민사목이 착목해야 할 지점을 보여준다.
이같은 현실은 정착지원금제도나 직업훈련, 주거지원 등 이탈주민의 자활과 관련된 정책은 있지만 사회적, 정서적 장애 및 부적응에 대한 지원 방안은 거의 전무한 우리 사회의 실정과 궤를 같이한다. 이로 인해 이탈주민에 대한 정신적 지원을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한 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교회는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와 각 교구 민족화해위원회 등을 중심으로 △홈스테이 △시장 구매 체험 △문화 체험 △상담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이탈주민들의 남한 정착을 돕고 있다. 그러나 양적인 면에서나 질적인 면에서도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또한 북한이탈주민의 남한 사회 적응훈련 기관인 ‘하나원’에서부터 이루어지는 사목이 교구나 교회 단체별로 제한적으로 이어지는 점도 극복해 나가야 할 부분이다. 실제 남한 사회에 대한 이해를 높이면서 자연스럽게 천주교를 접할 수 있게 하는 대표적인 프로그램인 홈스테이의 경우 이를 지속적으로 진행하는 교구는 그리 많지 않은 실정이다. 특히 이러한 프로그램을 통해 세례를 받는 등 어렵게 교회와 관계를 맺은 경우도 꾸준한 만남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사례가 적지 않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영세한 후에는 찾아보는 이 없었다”는 한 이탈주민의 말은 이들을 대상으로 한 사목의 단면을 돌아보게 한다. 따라서 선교적 측면에 아울러 이들이 남한사회에 올바로 정착할 수 있도록 도움으로써 향후 교회가 전개해나갈 통일사목에 있어 유용한 자원을 확보한다는 차원에서도 보다 체계적이고 중장기적인 접근의 필요성이 더해가고 있다.
서종엽 신부(주교회의 민화위 북한이탈주민지원소위 간사)는 “홈스테이 외에도 북한이탈주민들이 남한 사회에 대한 적응력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할 필요성이 있다”면서 “무엇보다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이탈주민들이 남한 사회에 정착할 수 있도록 전 교회 차원의 관심과 배려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남한 사회에서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이탈주민들이 삶 속에서 이를 극복해나가도록 하기 위해서는 남한사람들과의 일상적인 만남과 지속적인 상호작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따라서 △지속적인 상담 △소공동체 등 활동 공유 △자매결연 등을 통한 신자들과의 꾸준한 관계 유지와 사목자들의 관심이 절실하다.
아울러 북한이탈주민을 위한 시혜적 차원의 ‘정책적 접근’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북한이탈주민과 ‘함께 하는’(with North Korean defectors) 사목이 될 수 있도록 신자들의 의식 전환을 위한 노력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르포/탈북 청년모임 ‘하이모’
“아직도 한국사회는 힘든 시련의 땅”
18일 오후 4시35분 서울 혜화역 4번 출구. 조금 이르게 도착했다. 5시에 ‘청년 하나를 이루어가는 모임’(이하 하이모)가 이곳에 모인다. 하이모는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에서 주관하는 탈북 청소년·청년 지원 프로그램.
수많은 인파들 사이로 하이모의 회장 김용길(제랄드.31)씨가 다가와 한 무리의 젊은이들 틈으로 안내했다. 그들 틈에 끼자 말문이 막혔다. 그러던 중 현철(가명.25)씨가 말을 걸었다.
“기자는 내성적이에요? 외향적이에요?”
한국 온지 6년이 됐다는 현철씨. 그간의 한국 생활이 어땠냐고 묻자 6년차(?)다운 답이 돌아왔다. “편해요. 그리고 사람사는 것 같아요.” 몇 가지 더 묻자 현철씨는 “아직까지는 어려움이 없다”고 답했다. 하지만 불편한 얼굴 표정을 하며 속내를 비치진 않았다.
아이스크림 가게를 서성거리던 애진(가명.29)씨와 식사 장소로 향했다. 애진씨는 지난해 3월 고난의 행군을 거쳐 한국으로 왔다.
하이모를 어떻게 알게 됐냐고 하자 애진씨는 ‘하나원’이 계기라고 했다. “수녀님을 만났어요. 나와서도 수녀님과 함께 살았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들어왔죠.”
애진씨에게 있어 한국은 희망의 땅이었다. 그러나 막상 온 이곳은 전혀 낯선 세상이었다.
“한국은 새터민을 위한 조건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어요. 하이모가 아니였다면, 일반 새터민과 마찬가지로 저도 누가 잡아끄는 대로 갔을 거예요.”
그런 교회의 따스한 울타리 속에 애진씨는 지난 부활에 에스텔이라는 세례명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됐다.
애진씨는 새터민들이 곧잘 한국이 중국보다 못하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고 했다. “또 하나의 벽이 자연스레 만들어져요. 새터민들은 지쳐요. 가지고 있던 희망도 물거품이 되죠.”
아직 한국 사회는 이들에게 거칠고 힘든 시련의 땅인 것이다.
이에 대해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책임 장인숙 수녀는 인식전환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들의 배경도 모르면서 무조건 배타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교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이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장수녀는 교회가 해야 할 일도 언급했다. “일선 본당에 민족화해위원회 위원들이 없습니다.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새터민에 대한 교회의 교육이 필요합니다.”
■인터뷰/한국사회 정착 성공사례/북한이탈주민 전영일씨
“자립 때까지 끊임없는 관심을”
성당·은인들 도움으로 설립한 식품회사 큰 성장
신자 이탈주민 모임 만들어 봉사활동에도 앞장
50평 남짓한 공장은 기계들이 빚어내는 소음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전영일(루카.42.김포 통진본당)씨에게는 공장의 모든 게 사랑스러울 뿐이다.
국내 최초로 북한 묘향산에서 직수입한 느릅나무 뿌리를 원료로 한 느릅냉면과 느릅찐빵, 느릅차 등 각종 식품을 생산하고 있는 (주)백두식품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전영일씨의 이름 앞에는 ‘성공한 탈북자’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그러나 그는 아직 성공이란 말에 조심스러워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1997년 혈혈단신으로 남한에 들어온 후 일을 벌일 때마다 사기를 당하거나 잘못돼 좌절했던 게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숱한 어려움을 딛고 비슷한 처지의 북한이탈주민 5명과 지난해 2월 김포시 통진에 식품 공장을 건립한 전씨는 이후 하루도 쉬지 않고 일에만 매달렸다. 그에게는 개인적인 성공보다 더 큰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착을 잘해 공동체를 이뤄 제2의 고향을 만드는 게 꿈입니다.”
그래서 생활비도 제대로 가져가지 못하는 처지에도 불구하고 6명의 이탈주민을 직원으로 채용했다. 그리고 자신은 그들이 남한 정착의 기쁨을 맛볼 수 있도록 갑절로 더 뛰었다. 그 덕에 1년 남짓한 사이에 서울을 비롯한 대구 부산 여수 등 전국 7개 도시에 대리점 30여 곳을 개설하는 결실을 거뒀다.
전씨는 그 과정에서 성당과 신자들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고 털어놓는다.
판로가 막혀 상품이 쌓일 때면 성당 문을 열어주었고, 운영자금이 부족할 땐 독지가가 나타나 숨통을 틔워주었던 것이다. 최근 10여명의 신자 이탈주민들로 ‘새터민모임’을 만들어 봉사활동에 나서기로 한 배경에는 자신이 받은 사랑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 깔려 있는 지도 모른다.
“탈북자들은 길이 있어도 그게 길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탈주민을 정착시키지 못한다면 통일도, 통일 후도 힘들 것입니다.”
지난해 12월부터 인천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게 된 것도 남한 사회에서 걸러낸 자신의 값진 경험을 나누고자 하는 뜻에서였다. 그는 무엇보다 끊임없는 관심을 강조한다. ‘반짝’하는 관심으로 인해 오히려 상처를 입는 이탈주민들이 적지 않은 까닭이다.
“이탈주민들은 마치 걸음마를 막 시작하는 아기와 다를 바 없습니다. 이들이 스스로 걸을 수 있을 때까지는 부모의 사랑이 절실합니다.”
‘두드리면 열리리라’는 말씀을 가슴에 안고 손수 차를 몰아 배달에 나서는 전씨, 그는 오늘도 자신의 동료들과 함께 만들어갈 제2의 고향을 그리며 힘차게 페달을 밟고 있을지 모른다.
※문의 031-996-4077 백두식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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