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앞에서 울며불며 떼써
남편을 돌보느라 아이들에게는 늘 양보만을 강요했었다. 맛난 먹거리며 영양식 한번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이 조금만 아프다는 말을 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매일같이 일한다고 아이들을 꼼꼼히 돌보지 못한 내 탓인 듯 해서 한쪽 가슴이 아직까지도 저린다.
아이들을 생각하면 항상 죄 지은 사람 마냥 다리 뻗고 잘 수 없을 만큼 미안한 마음 뿐이다. 아이들은 나한테 “무슨 소리를 하냐”며, “엄마가 힘들게 일해서 이만큼 잘 성장했다”고 말하지만, 정말 나는 아이들 앞에선 늘 죄인이 된다. 그래도 난 아들 덕분에 세례도 받아 너무 기쁘다.
내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죽었다고 판정받아 푸르스름하게 변해가던 남편이, “남편을 용서할 수 있는 시간을 달라”고 하느님을 향해 애타게 부르짖자 다시 살아 꿈틀거리며 내 이야기를 듣는 기적을 체험한 후 나는 곧바로 성당을 찾았었다. 아들은 내가 그 기적을 체험하기 전부터 늘 성당에 가자고 권유하며, 하느님에 대해 알려주려고 애썼었다. 딸도 그때의 기적을 보고 하느님을 믿게 됐다.
그렇게 세례를 받는 기쁨에 이어 첫영성체가 이어졌다. 교리를 배울 때 수녀님께서 ‘첫영성체 할 때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는 말씀을 하셨다.
나는 첫영성체 때 “저는 죽어도 살아도 주님만 사랑하게 해주시고, 우리 가족들이 모두 평화로이 주님만 섬기고 주님을 떠나지 않도록 꽉 잡아 주세요. 중간에 주님을 떠날 양이면 차라리 죽여주십시오”라고 기도했었다. 지금도 한결같이 주님께서 나를 든든히 잡아주신다는 것을 느끼니 마음이 편안하고 더욱 더 비워져간다.
그래도 어느날 시험에 든 때를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남편이 죽고 아이들 3명이 프랑스로 유학간 해였다. 어느날 그야말로 생활비가 딱 떨어졌는데 일이 들어오질 않았다. 단역이라도 일이 끊어진 적은 잘 없었는데 엎친데 덮친격이었다.
집에는 쌀한톨 없었고, 난방을 할 여력도 없었다. 그때가 사순기간이었는데 늦겨울과 초봄 사이 차가운 날씨에 냉방에서 몇날 몇일 물만 마시고 지냈다.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 일이지만, 그때 나는 십자고상 앞에서 울면서 떼를 썼었다.
그런데 울다울다 설핏 잠이 들려고 하는데 갑자기 천장에서 빛이 나며 하느님의 모습이 보였다.
세례받은 지 얼마 안되는 ‘초짜 신자’인 나로서는 이럴 때 어떻게 해야하는지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입에서는 무조건 ‘감사합니다’라는 말만 되뇌어졌다.
다음날 미사에 참례했는데 신부님의 강론이 그야말로 구절구절 나를 향한 말이었다. 신부님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주시면 감사하다고 인사를 해야지, 왜 안준다고 투덜대기만 하느냐”고 호통을 치셨다. 그리곤 “예수님을 믿어서 부자되고 출세하고 싶은 사람은 나가라”고 야단하셨다.
꼭 나 들으라고 하시는 말씀인 듯 해서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내가 무슨 염치로 하느님께 그렇게 떼를 썼는지 깊이 회개했다. 차비가 없어 먼 길을 걸어와야 했지만 그날 돌아오는 걸음걸음은 구름을 밟고 걷는 듯 했다. 돌아오는 길에 만난 털 빠진 강아지도, 흙 묻은 돌멩이도 하나하나가 모두 사랑스럽게 ‘안녕하세요’ 인사하고 싶을 정도로 기쁨에 넘쳤다.
사진설명
김지영씨가 견진성사를 받고 고(故) 김남수 주교 (오른쪽에서 두번째)등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기사입력일 : 2006-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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