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결같은 교황의 ‘수호천사’
로마=우광호 기자
7월 2일은 사도 베드로의 후계자이자 전세계 교회의 영적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교황을 위해 기도하는 교황주일이다. 교회가 세상 안에 있듯이 교황 역시 세상 안에서 사도의 후계자로서의 사명을 수행하면서 교회사 뿐만 아니라 세계사 안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며 인류의 발걸음과 함께 해 왔다.
그런 교황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림자처럼 따르는 사람들이 있다. 올해 창군 500주년을 맞은 바티칸 스위스 근위대는 교황의 최측근에서 교황을 보필하며 교황과 세계교회를 위해 봉사하고 있다. 지난 6월 중순, 바티칸을 방문해 교회와 교황에 대한 근위대 충성의 역사 500년을 직접 들었다.
1527년 5월 6일
교황청은 절대 절명의 위기에 처한다. 신성로마제국 황제 샤를 5세가 로마를 공격한 것. 샤를 5세의 독일 용병들은 닥치는 대로 로마를 약탈하고, 급기야는 교황청으로 진격하기 시작했다.
일촉즉발의 위기. 신변에 위협을 느낀 교황 클레멘스 7세는 한밤중에 최정예 스위스 근위대원 189명의 호위를 받으며 탈출을 시도한다. 샤를 5세 군대가 교황의 뒤를 바짝 쫓았다. “교황님 빨리 피신하세요. 여기는 우리가 지키겠습니다.” 근위대원들이 비장한 각오로 적들의 길을 막아섰다.
근위대원들은 교황이 피신할 시간을 벌기 위해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하지만 역부족. 한 명 한 명 스러져 갔다. 날이 밝은 후, 교황 옆에 남은 근위대원은 42명. 이 날 밤 전투로 147명의 젊은 근위대원들이 목숨을 잃었다.
2006년 6월
바티칸(Vatican City)은 뜨거웠다. 영상 30도를 웃도는 기온 때문만은 아니다. 바티칸은 웅장한 베드로 대성전의 위용에 감탄사를 연발하는 관광객들과 무릎 꿇고 참회의 기도를 바치는 순례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수 백년전 피비린내 나는 전투의 흔적은 그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달라지지 않은 것이 있었다. 바티칸에는 변하지 않는 충성심으로 교황과 교회를 지키는 젊은이들이 있었다.
바티칸 스위스 근위대는 관광객과 순례객들의 시선을 한 몸에 모으고 있었다. 미켈란젤로(Michelangelo, 1475~1564)가 직접 디자인했다는 청색 금색 붉은색으로 치장한 화려한 제복도 그렇지만, 들고 있는 중세식 무기는 더욱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가톨릭 교회와 교황은 우리가 지킨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군대이면서 동시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군대인 바티칸 스위스 근위대는 ‘자부심’ 하나로 똘똘 뭉친 부대다.
창군 연도는 1506년. 당시 교황 율리우스 2세(재위 1503~1513)는 신변 보호를 위해 유럽 각국에 근위대 병력을 요청했다. 하지만 자국 병력이 줄어들 것을 우려한 많은 나라에서 거부 의사를 밝혀왔다. 오직 스위스만이 이 요청에 기꺼이 응답, 스위스 근위대원 150명이 알프스 산맥을 넘어 720㎞를 걸어 1506년 1월22일 바티칸에 도착했다. 이후 근위대는 ‘목숨까지 바쳐가며’ 총 42명의 교황을 모셨으며 지금도 교회와 교황에 대한 변함없는 충성심을 보이고 있다.
현재 근위대 병력은 복무 1년차에서 25년차까지 총 110여명. 110명이 채워지지 않을 때는 가끔 있지만 110명을 넘어서는 일은 없다. 의무 복무기간은 2년. 의무기간이 경과하면 연장 근무를 신청할 수 있다. 평균 월 급여는 150~200여만원 선. 비록 풍족한 급여라고는 볼 수 없지만 엘리트 의식 만큼은 그 어느 나라 군대 보다도 강하다.
근위대원으로 선발되기 위해선 독일어, 불어, 이탈리아어 3개 국어를 해야 한다. 신체적 조건도 엄격하다. 반드시 군복무를 마친 스위스 국적의 가톨릭신자여야 하며, 키 174㎝ 이상에 19살 이상 30살 이하의 미혼 남성이어야 한다. 호신술과 권총 등 사격술에도 능해야 한다. 신체조건 및 학력, 군경력 등 일정한 조건에 합격해도 3주간의 지옥 훈련을 통과해야 한다. 이 훈련을 통과해 정식 근위대원이 되면 사복을 입고 교황 신변을 보호하는 경호 부대원 혹은 바티칸 출입구와 주요 기구 및 부처를 방위하는 경계 부대원으로 활동하게 된다. 교황 해외 방문시 경호, 수행하는 업무도 근위대의 주요한 역할 중 하나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지난 1월 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스위스 근위대 500주년 기념 행사에서 “500년에 걸친 근위대의 봉사에 감사한다”며 축복을 내렸다.
“교회와 교황 지키는 임무 영광이며 보람”
■경계부대 스테파노 델 크로체 소대장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의외다. 파란 눈의 스위스 인이 능숙한 한국말로 인사한다. 바티칸 스위스 근위대 경계부대 스테파노 델 크로체(Stefano Del Croce, 26) 소대장.
“한국 순례객들을 많이 만나는 만큼 한국어 회화를 ‘아주 조금’ 공부했습니다. 한국인들은 신앙심도 깊고 아주 친절합니다.”
스위스 군복무를 마치고 2001년 입대해 벌써 5년째 근무하고 있는 베테랑. 자국어인 스위스어는 물론이고 독일어, 불어, 이탈리아어까지 4개 국어에 능통한 엘리트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2년 복무기한을 두 번이나 넘기면서도 계속 근위대에 남아 근무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물론 다른 직장을 구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일만큼 보람된 일도 없지 않습니까. 저희들은 500년 동안 가톨릭 교회와 교황을 지켜왔습니다. 이 영광스런 소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기만 합니다.”
앞으로도 여건이 닿는 한, 계속 근무할 계획이라는 크로체 소대장은 “근위대에 근무하면서 신앙심도 깊어졌다”며 환하게 웃었다.
“우리 동료들은 모두 가톨릭 신자로서 교황을 지킨다는 자부심과 소명 하나로 근무에 임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신자들도 근위대의 영광과 충실한 근무를 위해 기도해 주었으면 합니다.”
사진설명
▶올해 창군 500주년을 맞은 바티칸 스위스 근위대는 교황의 최측근에서 교황을 보필하며 교황과 세계교회를 위해 봉사하고 있다.
▶근위대원이 바티칸 길목마다 설치된 CCTV를 살피고 있다.
▶교황청에 출입하는 차량들을 검문하면서 교황의 안전을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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