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 앞두고 비바람 피할 보금자리 절실
각 성당은 이재민 캠프로 개방
식량에 비해 텐트 턱없이 부족
인도네시아 욕야카르타=이승환 기자
욕야카르타 시내에 자리한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당. 세마랑대교구 욕야카르타 대리구청이 자리한 이곳은 지진 발생 직후부터 피해주민들을 위한 구호캠프로 사용되고 있다.
현지 교회 구호 활발
오전 9시가 채 되지 않아 하비에르 성당 마당은 이재민들로 가득 찼다. 대부분 욕야카트라 남부에서 온 이재민들은 물과 쌀, 담요 등 구호품을 얻기 위해 성당을 찾는다.
마을에서 내려와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성당을 찾았다는 아이파싸(Aipassa, 52)씨는 “마을이 시내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이틀 치 구호식량 밖에 못 받았다”며 “성당에서 구호품을 나눠준다는 소식을 듣고 두 시간이나 걸려 왔다”고 말했다. 텐트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소문을 들었다는 그는 물과 쌀이라도 충분히 받아갔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하비에르성당 뿐 아니라 피해가 가장 심한 반툴과 클라텐 지역의 30여개 성당도 지진 발생 직후부터 신자 뿐 아니라 지역 주민들을 위한 구호캠프를 열고 있다. 성당이 완파된 반툴의 간주란성당도 교육관과 창고를 개방해 이재민들에게 구호품을 나눠주고 있으며, 클라텐 성모승천성당은 임시 휴교중인 유치원 교실을 이재민들에게 개방했다.
이재민 구호를 위한 교회의 발 빠른 움직임은 현지 주민들의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하지만 어려움도 많다.
구호품 부족은 당면한 문제다. 지진 직후 인도네시아 전국 각 교회로부터 성금과 물품지원을 받았지만 턱없이 모자란 형편이다. 물과 식량 등 비교적 값싼 구호품은 충분하지만 텐트는 부족하다. 또 무너진 집을 복구하는 데 필요한 자재도 값이 폭등해 조달할 수가 없다.
체계적인 구호를 위한 인력도 부족하다. 교구 내 각 성당에서는 청년신자들을 자원봉사자로 활용하고 있지만 구호품을 운송하고 배분하는 정도에만 그치고 있다. 그나마 자원봉사자도 부족해 청년들은 성당 교리실에서 새우잠을 자며 일하고 있는 상황이다. 인도네시아 각지 수도자와 신자 자원봉사자들도 재해 지역에 파견되고 있지만 워낙 피해지역이 넓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욕야카르타 북부 머라피 화산의 폭발 위기로 많은 주민들이 대피해 있는 것도 어려움이다. 세마랑대교구 관할지역인 이곳은 만 여 명 이상의 주민들이 낮에는 산으로 올라가 농사를 짓고 밤에는 산 아래 구호캠프에서 생활하고 있다.
연이은 재난에 불안
욕야카르타시에 살고 있는 페르위타사리(Perwitasari, 29)씨는 “북쪽에서는 화산폭발을 피해 내려온 주민들이, 남쪽에서는 지진 이재민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대규모 자연재해를 처음으로 겪은 주민들에게 2006년은 어느 때보다 고통의 시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04년 수마트라섬을 강타한 지진해일로 22만여명이 목숨을 잃은 데 이어 인도네시아는 올해 6천여명에 가까운 주민들이 목숨을 잃고 65만여명이 보금자리를 빼앗겼다.
‘이러다가는 인도네시아 전체가 가라앉을지도 모른다’
어느 지역보다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자바 섬 사람들. 자바 신(神)이 지켜 줄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던 그들도 연이은 재앙에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서너 달 후면 지진피해 지역은 우기에 들어간다. 비바람만이라도 피할 거처가 지금 그들에게 꼭 필요하다.
“이웃 교회의 나눔, 큰 힘”
■세마랑대교구장 슈하로 대주교
“미처 이러한 재난을 대비하지 못한 우리의 잘못입니다.”
지진피해지역 전역을 관할하고 있는 세마랑대교구장 이그냐시우스 슈하로 대주교는 침통한 얼굴로 첫 인사를 건넸다. 자연재해는 인간이 어떻게 할 도리가 없지만 발 빠른 구호사업을 준비하지 못한 것에 슈하로 대주교는 안타까워했다.
“다행히 국제 카리타스, 한국 한마음한몸운동본부 등 구호단체가 발 벗고 활동하며 지원해 주고 있어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슈하로 대주교는 한국교회가 2004년 지진해일 때도 큰 도움을 준 것을 알고 있다며, 인도네시아 주교회의도 한국교회의 남다른 관심과 참여에 감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자바섬 주민들에게는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이웃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일손을 돕는 전통이 내려오고 있다고 설명한 슈하로 대주교는 “주민들이 집을 지을 수 있도록 재정적 지원만 있다면 그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어려움을 떨치고 일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슈하로 대주교는 “연이은 자연재해로 인도네시아 교회가 한국교회와 보다 가까워졌다”고 전하고 “앞으로도 아시아 교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양국교회가 구호사업 뿐 아니라 교회 전반에 걸쳐 긴밀한 협력관계를 맺어갔으면 한다”고 희망했다.
2008년말까지 구호·복구 지원
국제 카리타스는 지난 6월 8일 이재민 12만9250명을 대상으로 하는 미화 1546만5719달러 규모의 긴급구호요청서(SOA)를 발행하고, 인도네시아 이재민들을 돕기 위한 구호활동에 관심을 가져줄 것을 청했다.
국제 카리타스는 △긴급구호 △후기 긴급구호 △재활 및 복구 단계 등 3단계 이재민 지원 사업을 인도네시아 카리타스, 세마랑대교구, 독일·스위스·미국·네덜란드 카리타스 주도로 2008년 12월 31일까지 진행할 계획이다.
한마음한몸운동본부가 5만 달러를 지원한 세마랑대교구는 종교와 무관하게 이번 재난에 피해를 입은 모든 피해자 1만여명을 지원 목표 대상자로 정하고 주민들에게 식수 및 위생용품, 텐트를 지급하고 있다. 또 피해 어린이들에게 학비를 지원하고 학용품과 교육자재를 제공하는 교육지원사업도 가질 계획이다.
2005년 11월 설립된 인도네시아 카리타스는 긴급구호 단계에서 지원 받지 못한 소외지역 이재민 3만2800명을 위한 구호에 나선다.
국제 카리타스는 설립 초기 단계인 인도네시아 카리타스가 역량을 강화할 수 있도록 세계 각국 카리타스가 힘을 실어줄 것을 당부했다. 한국 카리타스는 국제 카리타스의 권고를 받아들여 인도네시아 카리타스에 구호성금을 보낼 예정이다.
※도움주실 분
우리은행 454-005324-13-045 한마음한몸운동본부
우리은행 064-106713-13-432 (사)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농협 386-01-013442 천주교중앙협의회
사진설명
▶이재민들이 지진으로 무너진 집 지붕을 수리하고 있다. 피해 지역은 서너달 후면 우기에 들어가기 때문에 발빠른 복구가 이뤄져야 한다.
▶간주란성당 창고에서 구호품을 나르고 있다.
▶반툴에서 만난 아이들.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본당 청년 봉사자들.
▶세마랑대교구장 슈하로 대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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