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심(不偏心)
신부는 자기가 사제품을 받은 본당으로 발령을 받는 일이 드뭅니다. 그래서 친정본당이라고 불리는 출신본당에서 사목활동을 할 기회가 거의 없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예수님께서 고향에 가셔서 겪으신 일과도 관련이 있지 않은가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고 나서 고향을 방문했을 때 예수님을 맞이한 고향사람들은 그분의 진면목을 알아보지 못하고 자기들이 보았던 예수님에 대한 인간적인 경험만으로 예수님을 판단하고 그분을 믿지 못하게 되어 예수님의 사목활동은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입니다.
인간적인 정에 얽매여 지내다보면 하느님의 일이 어려워지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인간적인 기준으로만 생각하고, 하느님의 일을 세속적인 정신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신앙의 결실은 맺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신부가 친정본당에 가면 비슷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을 법 합니다. “뉘 집 아들인데…”하면서 신부의 인간적인 면모에 집착하면 사목자로서의 일이 어려워 질 수도 있기 때문에 친정본당에는 가능한 발령을 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이겠지요.
“개천에서 용났다”는 말이 있습니다. 보잘 것 없는 처지에서 훌륭한 일을 해낸 사람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한편으로는 용(?)이 된 사람의 노력을 치하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그 사람의 출신을 넌지시 무시하는 말이 되기도 합니다.
개천은 용이 살 수 없는 작은 곳이기에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잘 알고 있는데 뜻밖의 일이라는 생각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출신이나 학벌이 출세의 보증 수표처럼 통하는 사회에서는 개천에서 난 용은 꿈같은 현실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지켜본 고향사람들에게 예수님은 개천에서 난 용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놀라운 일들과 사람들의 마음을 꿰뚫은 말씀은 그들에게 놀라운 일이긴 했지만 정작 그러한 능력을 행하는 예수님을 믿지는 못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알고 있었던 것은 예수님의 진면목이 아니라 그들의 눈에 비친 것들이었습니다.
가난한 목수의 아들이며, 변변한 배움도 없는 예수님에 대한 앎은 예수님이 행하는 모든 일들을 보고도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누군가를 알고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의 겉모습만을 아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의 진면목을 알기 위해서는 내 안의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의 그 사람을 볼 줄 아는 안목(眼目)이 있어야 합니다.
신앙인들에게는 신앙의 안목이 있어야 합니다. 신앙의 안목은 하느님의 눈으로 자신과 이웃과 하느님을 바라볼 줄 아는 능력입니다. 신앙인의 안목이 세속적인 기준과 선입견에 머무르면 신앙생활은 하느님의 현존을 알아보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가진 것이 무엇인지를 보고 그 사람을 판단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외모를 보고 판단하기도 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사람이나 사물을 판단할 때 겉모습이나 자신의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사람의 됨됨를 볼 줄 알고 사물을 읽을 줄 아는 안목(眼目)이 있습니다.
“냉철한 눈으로 사람을 보고, 냉철한 귀로 말을 들으며, 냉철한 뜻으로 느낌을 감당하고, 냉철한 마음으로 이치를 생각하는 사람은 사물이나 사람을 치우침 없이 판단할 수 있다.”(채근담 涉世 76)
감정에 들떠 흥분하고 욕심에 가리우면 마음이 어두워져서, 무엇을 보아도 바로 보지 못하며 들어도 바로 듣지 못하며, 느껴도 바로 느끼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냉철함이란 어느 것에도 치우치지 않는 불편심(不偏心)입니다. 불편심이란 어느 한쪽으로도 기울지 않는 균형 잡힌 마음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성숙한 신앙은 이 세상의 피조물들 안에서 일하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감지하게 해주는 영적 혜안(慧眼)을 지니도록 우리를 이끌어 줍니다.
깨끗하고 흠없는 마음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을 하느님으로 알아보고 하느님의 크신 사랑에 참된 경외심을 갖게 합니다.
하느님을 하느님으로 알아보는 경이로운 마음은 천박한 지식이 아니라 참된 지혜의 눈으로 자신과 세상을 바라볼 줄 알며 가장 작은 것 안에서도 가장 위대한 모습을 감지할 줄 알게 합니다.
우리의 삶은 하느님의 선물로 채워진 축복입니다. 삶 속에서 내가 만나는 사람들, 내가 사랑해야 할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보내신 선물입니다.
나를 사로잡고 있는 선입견이나 고정관념, 쓸데없는 편견을 버리고 사람과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줄 아는 불편심(不偏心)은 내 삶 안에 와 계신 하느님을 알아보게 하는 지혜를 불어넣어주고, 하느님께서 나에게 보내신 사람들을 선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이끌어 줍니다.
김영수 신부 (전주 용머리본당 주임 henkys@hanmail.net)
말씀 안에서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