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을 생각하며
“신부님, 저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지요?” 가끔 이런 문제로 상담을 원하는 신자들이 있다.
어떤 때에는 본당 신자들 사이에서 작은 갈등이 있는 것을 보게 될 때가 있다. 그런데 그 원인을 들여다보면 대개 각자의 ‘자존심’때문인 경우가 많다. 자존심 때문에 부딪히고, 상처주고 입고 갈등하는 것이다.
자존심으로 인한 상처
돌이켜 보면, 나도 자존심 때문에 힘들었던 적이 있었다. ‘자존심’을 그때는 대충 이렇게 이해했다. 말 그대로 ‘스스로’를 존귀하게 여기는 것이라고. 허나 살아가면서 자존심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 진정한 자존심은 내가 스스로 주장해서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로부터 나의 존재를 존중받을 때에야 가능하다는 것으로 바뀐 것이다.
스스로에 강조점을 두고, 그렇게 사는 것이 자존심을 지키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살았을 때 나는, 참으로 많은 것들과 사람들로 편치 않았다. 쉬 상처를 받기도 하고, 또 그만큼 상처를 주는 일도 많았다.
그리고 나의 것을 지키기 위한 노력은 언제나 갈등을 불러일으켰다. 뜻대로 되지 않음에 씩씩대야 했고, 불만과 짜증이 내 삶에 뿌리깊게 내려 강퍅해진 적도 있었다.
타인의 존재를 존중
자연 사람들과의 관계가 어려웠다. ‘사랑하라’는 말이 끊임없이 마음속에서 울렸지만, 내 자존심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만 사랑을 말했다.
‘내’가 우선하기에 ‘너’를 돌아볼 겨를도 없었던 까닭이다. 그래서 내 삶은 참으로 버거웠다.
어느 날부터인가 생각을 바꾸어 보기로 마음먹었다. 사는 것이 좀 편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누가 자신에 대해 말하고, 그런 그의 모습이 조금은 어설프게 보여도 그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로 했다. 당신만큼 나도 알고 있고, 당신만큼 나도 소중하고, 당신보다는 내가 더 낫다는 생각을 버리기로 했다. 불쑥불쑥 치밀어 올라오는 ‘나 스스로’를 밀쳐두고 그의 입장을 존중하고, 그의 존재를 소중하게 여기기로 했다. 그리고 그리 오래지 않아서 내 주변이 점차 바뀌어 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가장 먼저 바뀐 것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갈등이 현저하게 줄었다는 것이다. 전에는 정말 어려운 것이 사람들과 만나고 대화하고 살아가는 것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내 삶이 평안해지기 시작했다.
마음도 좀 더 여유로워지고, 얼굴빛도 많이 밝아졌다. 이 점은 나를 대하는 사람들도 공감하는 부분이었다.
내가 ‘나’에 집착하여 강하게 주장할 때에는 아무도 곁에 없었는데, 조금씩 주변에 사람들이 머물고 있음을 느꼈다. 내가 ‘나’를 밀쳐두는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사람들이 ‘함께’ 있음을 배우게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소중하게 다가온 것은 내가 존중받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마음을 다한 배려
내가 나를 지켜가기 위해 관심을 가질 때에는 존중받는 느낌보다는 고립감이 더 컸었던 반면, 내가 존중하면서부터는 오히려 존중받고 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어쩌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로소 진정한 자존심이 무엇인지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다고.
내 경험에 비춰볼 때, 진정한 자존심은 ‘나 스스로’에서 비롯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진정으로 나를 존중할 때 지켜지는 것이다.
또 자존심이란 자신이 강하게 주장할수록 오히려 그것에서 멀어지는 것이다. 나는 이 점을 몰랐기에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나만의 자존심으로 편치 않았고, 고립된 시간들을 보냈던 것이다.
살아온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또 어떤 책의 제목처럼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하는 뒤늦은 후회를 하기도 하지만 적어도 자존심같은 문제에 매달려 더 이상 불편해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먼저 마음을 다해 존중할 때만이 내가 나답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추교윤 신부(의정부교구 덕정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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