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인생 52년만에 첫 수상
유독 상복이 없었던 나는 지난해 모방송국 연기대상 시상식에도 예년처럼 편안하게 참석했다. 드라마에 같이 출연했던 후배들이 아무래도 상을 많이 받을 것 같아 축하해주고 싶은 마음에 참석한 자리였다.
그런데 내 이름이 호명됐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수상소감도 전혀 준비하지 못한 터였다. 무대에 오르자 가슴이 두근거리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너무 경황이 없어 모두들 예쁜 드레스와 멋진 옷을 차려입고 왔는데 내가 괜히 물을 흐리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며 소감을 밝혔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사실 시상식에는 남들이 상타는 거 보면서 같이 기뻐하는 것이지, 드레스가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드레스를 입는다고 어울리겠느냐. 드레스를 입는다고 김지영이 김지미가 되는 것도 아닌데 그런 것에는 욕심이 없다.
그런데 지금도 생각만해도 너무 죄송스러운 건 신자임에도 불구하고 시상대에 올라 ‘하느님 감사합니다’라는 한마디도 못한 것이다. 혹시 상을 받는 날이 오면 ‘하느님 감사합니다’를 가장 먼저 해야지라고 생각했었는데 남들도 다 하는 소감 한마디도 제대로 밝히지 못하다니. 그후 며칠 동안 미사에 참례해 몇 번이고 ‘주님 용서하세요’ ‘저는 정말 바보입니다’를 반복했었다.
나는 연기도 조연이었지만 시상식에서도 번번이 ‘들러리’ 조연이었다.
대상 후보에 올라갔다가도 미끄러지고, 수상자로 선정됐다고 해서 참석했는데 후보에 올라가 있지도 않았던 배우가 상을 받고…. 방송사 측에서도 매번 꼭 탈 것이라고 한 적이 많았지만 상은 늘 젊은 후배들 차지가 되곤 했다.
하지만 꾸준히 응원해주고 사랑해주시는 시청자들에게 감사할 뿐이다.
모든 역할에 항상 열심해왔지만 드라마 ‘장미빛 인생’에서는 더욱 열정을 쏟은 것 같다. 드라마의 ‘미스봉’ 역을 맡자마자 남대문 시장, 수입상가 뒷골목까지 싹싹 뒤져 샛노란 스타킹, 핫핑크 블라우스 등 요란한 치장 소품들을 직접 준비했다. 연출자도 내가 ‘작은 예수’라고 할 정도로 성실한 사람이어서 더욱 잘해주고 싶었다.
20대 활동한 악극단 시절을 제외하면 30대 이후 내 인생은 단역으로 이어져왔다. 그래서 내게는 젊은 시절의 화려했던 배역이 없었다. 그래도 50대 이후의 역할은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왔다.
연기자가 눈이 커야 표현력이 좋은 데, 눈큰 사람을 보면 간혹 부럽기도 했지만, 사실 난 정말 살아가면서 부러운 것이 하나도 없다. 주님만 내 곁을 떠나지 않는다면 나는 하나도 부러울 것이 없고 행복하다.
기쁘고 행복했던 시절
지난번에 얘기했지만 어느 해 사순 기간 내내 일이 없어 쫄쫄 굶고 지낼 때도 십자가만 보면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라는 말이 연신 터져나왔었다. 냉방에서 잠을 자려고 이불을 또로로 말다가도 십자가와 눈이 마주치면 또로로 다시 이불을 풀고 일어나 기도하고, 그렇게 웃음만 나왔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만큼 기쁘고 행복했던 시절이 없었던 것 같다. 하느님의 사랑의 단맛은 그 무엇과도 비교가 안되는 참 희한한 맛이다.
그날 십자가의 예수님께서 내게 일을 주신다고 약속하신 3일 후 거짓말처럼 방송국에서 연락이 왔었다. 그런데 첫 촬영에 들어갔는데 당시 피디가 나를 막 찾으며 ‘김지영씨 어디있나’하며 소리를 질러댔다. 그러더니 ‘왜 이제 나타나셨나. 이것이 연기다. 이것이 바로 리얼리티다’라면서 감탄을 이어갔다. 나는 무슨 일인가 어안이 벙벙했지만 곧 나를 칭찬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하느님께 또한번 감사드렸다. 그날 이후 10여년간 거의 하루도 쉬는 날 없이 10여년 연기를 이어가며 달려왔다.
기사입력일 : 2006-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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