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문화 공간으로 담을 낮추자
1980년대 중반부터 우리 문화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후 90년대를 거치면서 단군 이래 최대의 불사(佛事)가 진행되고 있다고들 한다. 그러나 어디 불사뿐이랴. 적어도 일 년에 서너 번씩은 성당이나 성지(聖地) 개발 등 건축비 마련과 관련하여 미사 중 2차 헌금이나 물품 판매 등으로 도움을 청하는 분들을 접하는 상황에서 보면, 우리 교회 역시 그에 못지않게 많은 시설들을 새로 짓고 있는 듯하다.
성당의 활용도 높이자
본당이 새로 신설되거나, 혹은 화재나 자연재해 등으로 파괴된 경우는 그래도 이해가 된다. 그러나 멀쩡한 성당을 시설이 낙후되었다는 이유나 혹은 지역 성지 개발을 한다는 이유로 도움을 청해가면서까지 추진하는 것을 보면 우리 사회의 외적 성장 제일주의가 교회 안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듯하여 안타까울 때가 많다. 그렇게 재건축되는 성당의 경우 대부분 본당을 포함하여 사제관이나 수녀원, 교육관 등 부속건물을 이전에 비하면 훨씬 크고 웅장하게 지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수신(修身)을 제일 덕목으로 삼았던 신앙선조들을 생각할 때 생활 속의 작은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는 여유와 자신감이 아쉽기만 하다.
한편으로는 이를 보다 더 건실한 방향과 활동으로 승화시켰으면 하는 바람이다. 일반적으로 종교단체의 시설들은 그 규모에 비해 활용도가 높지는 않다. 미사를 드리는 성당이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부속 건물의 경우, 주일날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시간이 비어있는 상태이다. 그래서 뜻있는 많은 사람들이 이의 활용도를 놓고 고민하기도 하지만 아직 구체적인 움직임으로는 나타나고 있지 않다.
성당에 나오는 신자의 세대별 분포에서 뚜렷한 것은 갈수록 노인들의 비중이 높아지는 반면에 절대적으로 청년 내지는 청소년층의 감소가 두드러진다는 사실이다. 본당신부님들은 매 미사 시간마다 청년회, 레지오, 성가대, 주일학교 교사 등 부족한 일손을 채우기 위해 젊은이들에게 교회 활동을 권하지만 성과는 그리 좋은 것 같지는 않다. 미사에 열심히 참여하는 소수의 젊은이들은 이미 활동을 하고 있고, 대다수의 쉬는 교우들에게는 그 내용이 전달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시대의 징표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는 교회의 한계에 있다고 할 것이다.
시대 요구 읽어내야
여기서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 지역 종교문화 콘텐츠의 중심 공간으로서의 성당이다.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공간을 개방하고, 나아가 젊은이들에게 맞는 문화공간이 조성된다면 갈 곳이 없어 거리를 배회하는 수많은 청?소년들을 교회로 자연스럽게 유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지난 6월 일부 성당에서 시행한 월드컵 축구 시청과 응원은 매우 의미 있는 행사였다고 생각한다.
성당에 노인대학이 있어 어르신들이 드나드는 것이 이상하지 않듯이 때때로 종교를 넘어 청소년들을 위한 응원전이 열리고, 청소년들의 관심꺼리를 주제로 한 강연회가 기획되고, 음악회가 개최된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전혀 없다. 더욱이 성당에 청소년들의 고민을 함께 나누어줄 상담원이 있고 그들이 주로 이용하는 PC방이나 노래방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우리 신앙선조들이 장례 봉사를 통해 선교에 성공하였듯이, 지역 성당의 종교문화 콘텐츠의 중심공간으로서의 변모는 사회 기여는 물론 결국에는 문화 선교로도 정착할 수 있을 것이다.
김영수(가톨릭대)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