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슬이 서말이라도…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직도 신앙이 여물지 않은 제자들을 둘씩 짝지워 보내신 주님의 파견은 제자들에게 구슬을 꿰어 보배를 만드는 법을 가르치시기 위한 훈련입니다.
참된 신앙은 하느님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심어 놓으신 능력-사랑의 능력-을 발휘하게 합니다.
‘열두 제자를 부르시어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신’ 주님께서 모든 신앙인들에게 주신 권한은 사람들을 자기 자신 안에 오그라들게 하는 이기심과, 자신의 평안만을 위해서 스스로 쌓은 담 속에 갇혀 지내는 우리를 새로운 생명의 삶으로 이끄시는 성령의 힘입니다.
세상에 나아가 신앙의 기쁨을 선포하는 신앙만이 우리를 참된 신앙인으로 키워주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내 도움과 관심을 필요로 하는 세상을 향해 열려있지 않다면, 내 용서와 위로와 손길을 필요로 하는 이웃을 향해 나아가지 않는다면 우리의 신앙은 흩어진 구슬에 불과할 뿐입니다.
지난 5월 25일 통계청에서는 작년도에 실시한 ‘인구주택총조사 전수집계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그 가운데에 종교인구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면 2005년 11월 1일 현재 우리나라의 천주교 인구는 514만6천명으로 10년 전인 지난 1995년의 295만 1천명보다 74.4%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난 10년간 국내 천주교 신자만 219만5천명이 늘었다는 보고입니다. 이 기간에 전체 종교 인구가 237만3천명 늘어난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증가세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 천주교 신자 수효가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발표한 신자 수보다 약 48만 명이나 많은 것으로 집계되었다는 것입니다.
10년 전에 비해 다른 종교들의 신자 수는 감소한 반면 가톨릭 신자 수가 급격하게 증가했다는 결과와 교회가 파악한 신자 수보다도 스스로 천주교 신자라고 응답한 사람들의 숫자가 훨씬 많다는 보고를 접하면서 한편으로는 천주교 신앙의 고귀함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 결과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자신을 천주교 신자로 생각하는 사람이 교회에서 파악한 숫자보다도 48만 명이나 많은 514만 명에 이른다는 것은 아직도 천주교회가 사람들에게 많은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며 그러한 면에서 신앙을 선포해야 하는 신앙인의 사명을 더욱 분명하게 드러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수치가 곧 우리 교회의 신앙생활 국면을 그대로 나타내 주는 것은 아닙니다. 신자 수효가 10년 만에 74.4%나 증가했다는 것이 한국천주교회의 성장추세를 반영하는 것도 아닙니다.
지금 우리 교회에는 신앙생활을 쉬는 신자 수가 전체 신자의 35%를 넘을 뿐 아니라 매년 영세자의 80%이상이 1년 이내에 냉담을 하고 있으며, 주일미사 참례자 비율도 계속 감소하여 이제는 26%선에 머물고 있기 때문입니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신자통계에 따른다면, 주일미사 참례자의 비율은 20%선에 불과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예비신자 숫자도 1999년을 정점으로 해마다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천주교 신자’라는 자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514만 명에 이르면서도 신자 의무의 하나인 주일미사에 참례하는 사람들은 120만 명 수준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종교의식과 신앙생활 간의 큰 차이를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신앙을 실천하며 세상에 신앙을 증거하는 신앙생활 보다는 신앙을 자신의 생활 범위 안에서만 영위하려는 신앙의 사사화(私事化)의 경향이 깊어지고 있음을 드러내주는 결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천주교 신앙을 선택하는 많은 사람들이 신앙의 동기를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라고 대답하는 것은 관념적이고 개인적인 차원에서 자신의 평안만을 추구하는 폐쇄적이고 미성숙한 영적퇴행의 결과를 가져올 위험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선포한 기쁜 소식에 대한 심오한 신앙고백은 머리로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에게 큰 울림이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미 그리스도께 희망을 둔 우리가 당신의 영광을 찬양하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에페 1, 12) 신앙인인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자녀로서 하느님을 자비로우신 아버지로 만날 수 있고,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그 사랑을 선포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는 힘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의 힘으로 살아가고 있는 신앙인은 자신의 삶을 복음에 비추어 새롭게 변화시키고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에 생명을 주는 삶을 살아갑니다.
복음은 세상의 지혜로써 선전되는 구호나 광고가 아니라 우리의 삶을 통해 증거 되고 선포될 때에 생명력을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제자들을 둘씩 짝 지워 보내신 예수님은 우리들을 짝 지워 파견하십니다.
우리의 삶은 그리스도께서 파견하신 복음 선포의 현장입니다. 사람들을 참된 가치와 진실한 삶으로부터 갈라놓는 ‘더러운 영’을 쫓아내고, 삶의 무게에 짓눌려 쓰러진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는 힘은 사랑입니다. 사랑만이 하느님의 영광을 찬앙하게 합니다.
김영수 신부 (전주 용머리본당 주임 henkys@hanmail.net)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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