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직매장까지 25시간, 신선한 먹을거리로 밥상에"
대부분 농산물 생산 1~2일안에 배달
생산자와 유통과정 믿고 구매해 주길
[전문]
7월 16일은 농민주일이다. 11년 전 농민주일을 제정한 교회는 농업과 농민의 중요성을 옹호하고 친환경 농산물 직거래를 통해 도·농 공동체 건설에 이바지함으로써 농민들에게 희망을 안겨줬다. 덕분에 건강한 먹을거리, 우리 땅에서 자란 믿을 수 있는 먹을거리를 찾는 소비자들이 많아졌다.
농민주일을 맞아 농민들의 피와 땀이 스며 든 건강한 먹을거리가 어떤 과정을 거쳐 우리의 밥상에 오르는 지,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정성어린 손길이 담기는 지 ‘유정란의 상경(上京) 이야기’를 통해 엿본다.
▶ 7월 7일 오전 충북 청천면
저는 ‘유정란’입니다. 무정란과의 차이는 아시죠? 엄연히 병아리로 부화할 수 있는 하나의 생명이라구요. 웰빙 바람에 요즘 인기가 좋습니다. 병아리가 됐다면 더 많은 유정란을 낳았겠지만 이게 하늘의 뜻이라면 받아들여야죠.
제 고향은 산 좋고 물 맑은 충북 괴산 청천입니다. 속리산과 화양계곡이 지척이죠. 금실 좋은 김성렬(아벨), 신순재(아나다시아) 부부가 저희 조부모 되십니다. 달걀 주제에 어떻게 할아버지, 할머니가 어디 있냐고요? 다 이유가 있죠.
할아버지, 할머니는 벌써 12년째 친 자식처럼 아빠, 엄마 닭을 키우십니다. 그러니 저는 당연히 손자가 되는 거죠. 부부싸움을 한 날은 두 분 다 닭장에 들어오지 않으세요. 화가 덜 풀린 거친 손길로 대하면 닭들이 스트레스를 받고 그만큼 달걀도 좋을 수가 없기 때문이죠. 또 엄마, 아빠 닭들은 강제로 알을 낳도록 산란촉진제, 항생제도 맞지 않는답니다. 국내산 발효사료를 먹어 우리 유정란은 비린내가 없고 영양가도 높답니다.
저는 오늘 3000마리의 엄마, 아빠 닭 사이에서 태어난 2100개의 유정란 중 하나입니다. 오전 일찍 할머니는 우리들을 닭장에서 가져와 세 번씩이나 달걀을 보고, 또 손질하십니다.
흉터 난 달걀, 색깔이 튀는(?) 달걀은 물론이고 너무 커도, 너무 작아도 퇴출입니다. 오전, 오후 내내 이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자연 애(愛) 유정란’이라는 이름을 받아 상자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 7월 7일 오후 7시
할머니 손길에 한결 깔끔해진 우리들은 할아버지의 트럭에 실려 충북 오창에 있는 청주가톨릭농민회 물류센터로 왔습니다. 센터에는 유정란 뿐 아니라 푸성귀와 잡곡, 육가공품, 유기농 고춧가루, 표고버섯 가루 등 청주가 고향인 우리농산물이 속속 도착하고 있습니다. 각지에서 모인 농산물들은 이곳에 모여 잠시 숨을 고르고 다음날 새벽 서울로 출발합니다.
▶ 7월 8일 오전 7시
새벽잠을 설쳤지만 편한 상경 길이었습니다. 행여 깨지기라도 할까 조심조심 운전해 주신 청주가톨릭농민회 실무자께 감사드려야겠네요.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 우리농촌살리기운동 서울.인천교구본부 물류센터의 아침은 일찍 시작됩니다. 우리처럼 전국 각지에서 올라오는 농산물들을 받아 분류하고 다시 배분해야 하기 때문이죠. 새벽부터 나와 일하시는 센터 실무자들은 농촌의 생산농민들과 도시 소비자들을 하나의 끈으로 이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답니다.
이곳에는 청주에서보다 훨씬 많은 종류의 우리농산물이 센터를 채우고 있습니다. 하긴 서울.인천 지역 7000여명의 개인회원과, 21개 본당별 우리농 직매장, 60여개 본당 주말매장에 충분히 전해지려면 이 정도는 돼야죠.
전화나 인터넷으로 주문된 물품은 모두 이곳에서 포장되며 오전 10시경 각 지역으로 떠납니다. ‘우리농’ 마크가 새겨진 일곱 대의 트럭이 서울과 인천을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누비게 되는 거죠. 전 출생동기 600알과 함께 우리농 명동직매장으로 가게 됐습니다.
명동 가는 길에 우리농산물을 사랑하고 아껴주시는 도시 소비자들께 센터에서 전해들은 이야기 하나 해 드릴게요. 못생긴 우리농산물, 특히 과일 친구들 퇴짜 놓지 말아주세요. 무농약에 소독약조차 뿌리지 않은 과일이다 보니 당연히 금방 색깔도 변하고 무르겠죠. 그런데 일부 소비자들은 ‘믿고 먹는 건데 이렇다’며 반품을 시킨답니다. 그럼 결국 그 친구들은 다시 센터로 돌아와 버려지게 되잖아요.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지만 요즘은 보기 좋은 떡이 몸에 해로워요.
물론 농민들도 가족이 먹는다는 생각을 갖고 농산물을 수확할 때 신경을 써야겠지만요. 무엇보다도 우리 소비자들이 생산자와 유통과정의 많은 일꾼들을 좀 더 믿고 이해해주셨으면 해요.
▶ 7월 8일 오전 10시 20분
태어나서 명동에 오기까지 딱 25시간 걸렸습니다. 이제 우리농 명동직매장 한 곳에 자리를 잡고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식탁에 오르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제 옆에 있던 유정란 열 알이 한 자매님의 손에 이끌려 매장을 나섰습니다.
‘여기 달걀이 맛있어요’라고 문을 나서며 이야기하는 그 자매님은 오늘 어떤 메뉴를 준비하실까요?
계란찜을 해도 좋고, 프라이를 하셔도 됩니다. 지단을 만들어 칼국수나 수제비에 동동 띠워도 좋겠네요. 호박전을 부쳐도, 요즘처럼 날씨가 구질구질 할 때는 파전에도 넣어주세요. 제가 좀 뜨겁긴 하만 폴폴 끓는 우리쌀 라면에 넣어 젓가락으로 휘휘 저어 드셔도 기막힐 겁니다.
아! 한 가지 빼먹었네요. 제 인기가 가장 높을 때가 언제인지 아세요? 바로 부활대축일 전이랍니다. 그리기 좋고 보기 좋다고 많은 분들이 흰 달걀 사용하시는데요. 우리 유정란은 대부분 노란색이랍니다. 참고하세요~!
◈우리농산물 구입은?
우리농 회원 가입·본당 직매장서
우리농산물을 구입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농 회원으로 가입하거나 가까운 본당 직매장을 찾는 것이다. 유정란의 경우 서울·인천교구 본부의 예를 들었지만 전국 각 교구 우리농본부나 가톨릭농민회를 통해서도 우리농산물을 구입할 수 있다. 서울과 같은 소비자교구 뿐 아니라 광주, 청주 등 생산 농민과 소비자가 함께 거주하는 교구에서도 물류센터를 운영하며 우리농산물 생산과 판매를 병행하고 있다.
인터넷 또는 전화로 가입할 수 있는 회원의 경우 마감 3일 전까지 물품을 주문하면 우리농산물을 대문 앞에서 받을 수 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운영되는 우리농 물류센터에서는 생산지교구에서 온 농산물을 수합, 배분해 회원 가정까지 배달해준다.
서울대교구내에만 17개가 들어선 본당 직매장의 경우 대부분 주중에는 미사 시간 전후로, 주말에는 종일 운영하고 있다.
생산에서 매장 도착까지 하루가 채 걸리지 않는 유정란의 예로 알 수 있듯, 냉동·가공식품을 제외한 대부분의 농산물은 생산 된 지 불과 하루 이틀 사이에 가정에 배달되므로 소비자들은 신선하고 믿을 수 있는 먹을거리를 밥상에 올릴 수 있다.
사진설명
▶하루 2000개씩의 유정란을 쑥쑥 낳아주는 3000마리의 자식들이 대견하고 고맙다는 김성렬-신순재 부부가 닭장 안에서 활짝 웃고 있다.
▶서울·인천교구본부 물류센터에서 실무자들이 각 본당 우리농 매장과 우리농 회원들에게 보낼 물품을 분류해 담고 있다.
▶우리농 명동 직매장에 배달된 유정란은 하루 전 충북 청천의 닭들이 낳은 신선한 달걀이다. 엄마, 아빠와 함께 매장을 찾은 한 어린이가 유정란을 집어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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