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에서도 손꼽히는 매머드급 교구, 아시아 복음화, 특히 중국과 북한을 포함한 동북아의 복음화를 이끌어야 할 소명을 지닌 서울대교구. 그리고 지난 2월 22일 교황 베네딕토 16세에 의해 추기경으로 임명된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 새로운 시대를 맞은 한국 교회와 사회 안에서 정추기경은 변화와 쇄신을 겨냥한 새로운 사목적 시도들을 꾸준하게 추진하는 동시에 생명, 환경, 민족화해 등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정추기경은 7월 12일 본지 사장 이창영 신부와의 대담을 통해 오늘날 한국교회와 서울대교구가 직면한 도전과 과제들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그 방향과 전망을 제시했다.
대담=이창영 신부
-이창영 신부(이하 이신부) : 최근 수년 동안 서울대교구가 보여준 생명 수호의 노력은 기대 이상으로 사회 전반에 생명의 소중함에 대한 인식을 높여주었습니다. 생명 가치가 퇴색하고 있는 오늘날 이러한 교회의 노력은 시대적 요청에 대한 적절한 응답이라고 생각됩니다.
▲정진석 추기경(이하 정추기경) : ‘생명 문화’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공식화시킨 분이 바로 전임 교황이신 요한 바오로 2세입니다. 성하의 생명에 대한 가르침은 그야말로 예언자적인 것이었습니다. 극도의 물질문명이 주도하는 21세기의 여명기에 인류는 인간 생명의 조작에 너무나 거침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생명은 신비의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과학적 연구의 대상으로서만 간주하고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는 실험 대상으로 생각합니다. 교회는 생명이 결코 물질에 머물지 않음을 좀 더 강력하게 외치고 가르쳐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예언자적 가르침은 오늘날 더욱 빛나고 있습니다.
-이신부 : 지난해 우리 사회를 혼란으로 몰고 갔던 황우석 사태는 이제 법적 절차에 따라 규명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이 사건으로 인해 커다란 충격과 실망을 감추지 못하는 난치·불치병 환자들에 대한 사목적 배려에 깊은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정추기경 :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지만 난치.불치병 환자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것은 결코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아닙니다. 이미 교회는 배아 연구의 대안으로 성체줄기세포 연구를 강조해왔습니다. 고통을 겪는 이들의 진정한 희망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국민들 모두가 질병 퇴치의 기대와 희망을 성체줄기세포에서 그 방향을 찾아야 합니다.
생명문화 건설에 투신하고 있는 한국교회의 성직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신부님도 그런 분의 한 분이십니다. 참으로 고마운 일입니다. 교회가 운영하는 병원에는 성체줄기세포 연구를 위해 헌신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이러한 노력들을 저는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여깁니다.
-이신부 : 추기경께서는 미사 강론, 공식석상에서의 연설, 언론과의 인터뷰 등을 통해서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항상 강조하셨습니다. 이런 노력을 통해 한국 사회를 생명 문화로 인도하기 위해 힘쓰셨습니다. 저희도 추기경님의 그런 모습에서 많은 힘을 얻곤 합니다.
▲정추기경 : 제가 무엇을 했다기보다는 바로 그것이 이 시대의 요청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이미 30년 전부터 낙태 반대의 목소리를 높여왔습니다. 낙태는 살인이라고 말해왔습니다. 하지만 그때에는 누구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저출산, 인구 감소 등의 문제가 드러나니까 교회의 그런 입장이 진리였다는 점에 대해 공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교회의, 그리고 저의 발언과 노력들은 시대적 요청에 대한 당연한 응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께서 지난 30년 동안 일관되게 강조한 것이 바로 ‘인권’입니다. 생명의 수호는 바로 인권의 수호입니다. 최고의 인권이 생명권이며, 태아의 인권이 바로 생명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신부 : 이제 화제를 바꿔서 아시아 대륙의 복음화에 대한 이야기를 여쭤보고자 합니다. 교황청에서는 한국 교회가 아시아 복음화에 큰 몫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최근 서울과 마닐라, 홍콩에서 추기경을 서임하신 것이나 인도 출신의 이반 디아스 추기경을 인류복음화성 장관으로 임명하신 것도 이러한 기대에 바탕을 둔 것으로 보입니다. 서울대교구는 이러한 소명을 염두에 두고 베트남이나 중국 신학생 양성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정추기경 : 제삼천년기 아시아 복음화의 과제에 대해서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 이미 예언자적으로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특별히 한국교회는 동북아시아 지역의 복음화에 있어서 상당한 역할이 기대됩니다. 동남아는 필리핀이나 베트남, 중동 지역은 인도교회에 기대를 하고 있듯이, 동북아 지역은 한국교회의 몫이 큽니다. 그런 기대에 부응하도록 우리나라의 복음화 뿐만 아니라 아시아 선교에도 적극 나서야 할 것입니다.
-이신부 : 민족 복음화는 북한 교회의 문제와 직결되고 이는 곧 민족의 화해와 일치라는 과제와 연결됩니다. 통일사목의 전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정추기경 :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북한은 교회가 뿌리째 뽑힌 유일한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북한에는 성직자가 단 한 명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남한 교회에서는 북한에서 활동하는 외교관들을 위해서라도 최소한 한 명이라도 성직자가 상주해야 한다고 제안해왔지만 아직 북한에서는 수년째 아무런 대답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하느님께 속죄의 기도를 바치고 용서를 청하는 일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민족에게 힘과 지혜를 주시도록 기도하고 북한의 위정자들이 마음을 열기를 하느님께 청원해야 합니다. 최근 건립이 추진되고 있는 민족화해센터 역시 바로 이러한 취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신부 : 한국교회 안에서 서울대교구가 지니는 비중과 영향력은 매우 큽니다. 서울대교구는 특히 교구 시노드를 통해 교구민들의 의견을 모아 쇄신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서울대교구의 사목적 전망은 어떤 것인지요.
▲정추기경 : 어떤 면에서 서울대교구는 우리나라의 산업화 과정에서 나타난 인구의 도시 집중, 특히 수도권 지역으로의 집중으로 인해 급속하게 교세가 팽창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빠른 양적 팽창으로 말미암아 나타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지역별 대리구 제도입니다. 물론 이 제도는 이제 시작 단계이므로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정착이 되고 나면 서울대교구 뿐만 아니라 지방 교구에도 하나의 선례로서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급속한 사회 변화는 곧 신자들의 신앙 생활에도 영향을 줍니다. 우리나라는 서구사회에서 수백년에 걸쳐 이뤄진 산업화 과정이 불과 수십년에 급진전됐고, 그에 따른 많은 부작용을 안고 있습니다. 교회 역시 급속한 팽창으로 인해 신앙의 깊이가 미흡한 많은 신자들이 교회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제는 양적 팽창보다 질적 성숙을 추구해야 합니다.
-이신부 : 아무래도 교회의 미래는 젊은이들에게 달려 있다고 생각됩니다.미래 사목의 중심은 청소년·청년 사목이 될텐데, 이에 대한 추기경님의 견해는 어떤 것인지요.
▲정추기경 : 앞으로 인간은 생활의 편리를 위해 만들어낸 로봇에 오히려 지배되는 시대가 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로봇이 주지 못하는 혜택은 문화적인 것입니다. 21세기는 문화의 시대입니다. 그런데 문화는 영적인 차원으로 고양될 수 있는 바탕이 됩니다. 따라서 교회는 청소년들에게 문화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문화를 통해 그들에게 하느님을 일러주고 영적이고 정신적인 가치를 일깨워줘야 합니다. 그리고 그 방편으로서 저는 높은 경륜과 삶의 지혜를 지닌 어르신들게 의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청소년사목과 노인사목이 함께 연결돼야 합니다. 부모와 자녀, 조부모의 3대가 함께 생활하는 가정에서는 이른바 청소년의 탈선 행위가 발견되지 않습니다. 시간, 사랑, 지식을 함께 갖춘 노인들은 우리 자녀들을 교육하고 돌보기에 아주 좋은 인적 자원입니다. 이 두 가지 사목이 함께 어우러질 때, 우리는 일거양득의 사목적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이신부 : 마지막으로 가톨릭 언론에 종사하는 이들을 위한 당부가 있으시다면….
▲정추기경 : 가톨릭 언론에 종사하는 이들은 그리스도의 예언직을 직접 수행하는 분들입니다. 예언자는 매우 중요한 몫을 지닌 이들입니다. 첫 번째 예언자는 모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앞날을 이야기할 뿐만 아니라 교회의 지도자이며 가르치는 사람들입니다. 교회 언론에 종사하는 이들은 신자들, 나아가 국민들을 위해 앞날을 보여주는 사람들입니다. 그 자부심과 긍지, 보람을 한껏 느끼면서 하느님께 선택받은 사람들로서 더 많은 노력을 해주길 바랍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