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긴 냉담 끝낸 후 주님 사업에 적극 동참
신자들은 늘 든든한 ‘빽’을 가지고 있다. 바로 ‘주님’이라는 존재가 그것이다. 인식하지는 못해도 어려운 일에 처하면 우선 찾게 되는 그분. 그럴 때마다 신기하게도 그분은 모른 척 하지를 않으신다.
김기영(프란치스코.29.서울 마천동본당)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신앙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이렇게 고맙고 즐거운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됐습니다. 가족들에 대한 애틋한 마음도 더욱 커졌고요.”
군 제대 후, 냉담의 길을 걸어온 그가 이러한 올바른 대답을 내놓은 이유는 무엇일까. “행복해졌어요. 특히 정신적인 면이 그렇습니다. 모든 일이 제가 사랑하는 주님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김씨는 누구보다 주님 사랑을 가득 받으며 자란 신앙인이었다. 신자라면 누구나 청소년기에 단체 활동을 했을 터. 그가 남들과 다른점은 ‘좀 심하게 했다’는 것이다.
“중학교 1학년 때 성당에 나가게 됐어요. 그냥 이것저것 했죠 뭐.”
전례부장, 성가대원 등 김씨는 청소년 단체 이곳저곳에 흔적을 남기고 다녔다. 오죽했으면 그를 하느님께 인도한 어머니까지 나서서 말릴 정도였다.
“많이 혼났어요. 전천후로 활동했으니까. 성당이란 곳 자체가 너무 좋았습니다.”
사실 그는 성당활동을 적극적으로 할 상황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당뇨병, 협심증 등으로 현재까지 한달에 서너 번 병원에서 정기검진을 받을 정도로 몸이 악화된 상태. 그래서 2남 1녀중 장남인 김씨는 청소년기부터 가장 역할을 했단다.
대학 입학 후 군 입대를 한 김씨. 이때부터가 그의 인생에 있어 어두운 터널의 시기였다. “군 생활을 6년간 했습니다. 직업 군인이다 보니 주일에 근무도 있고… 이래저래 성당엘 못 가게 되더군요.”
제대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성당 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김씨에게 본당 친구들이 찾아왔다. 물론 이유는 청년 활동을 하라는 것. 냉담 기간이 길어져 선뜻 나서지 못했던 김씨.
“마지못해 미사 한 번 드리러 갔습니다. 근데 그 때 깨닫게 되더군요.
'주님이 고팠다'는 걸 말이죠.”
전례에는 일가견이 있는 터라 본당 전례단에 바로 가입했다.
김씨는 적극적이고 활발한 활동으로 인해, 지난해에는 본당 청년연합회 회장까지 역임했다. “청년들에게 한 가지만 당부했습니다. 주님 사업이 어떤 사업인지 확실하게는 모르지만 모두 다 동참하자고. 주님을 우선순위로 두자고 말이죠.”
본당 청년들에게도 신앙의 향기를 내뿜고 있는 김씨. 미사 드리며 여러 번 울기도 했단다. “그동안 잘못했던 부분들이 매번 생각납니다. 그럴수록 더 열심히 주님을 위한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을 합니다.”
현재 그는 싱크대와 가구 부속 등을 납품하는 회사에 근무하고 있다. 3개월 밖에 안됐지만 주일에 성당에 갈 수 있어 행복하다는 김씨.
김씨의 주님 예찬론은 그치질 않았다. “주님이라는 단어는 생각만 해도 짠한 느낌이에요. 모든 신자 여러분들도 저와 같은 느낌이길 바랍니다.”
청소년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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