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착화 반대 목소리 줄어들어
1980년대부터 특히 머리로 하는 토착화와 관련하여 우리 교회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이룩해 온 중요한 기관들이 있다. 그 첫째가 한국사목연구소이고, 둘째는 1991년에 설립된 이래 25차에 걸쳐서 학술회의를 개최해 온 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이다. 다음으로, 1994년부터 매년 ‘종교 대화’ 프로그램을 개설해 온 씨튼 연구원을 들 수 있다.
연구기관, 신학 지평 개척
심상태 몬시뇰이 소장으로 활동해 온 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는 1992년부터 꾸준히 심포지엄을 개최하면서, 한국 그리스도 신앙의 현주소와 토착화 신학의 여정을 돌아보는 기회를 가졌다. 이 과정에서 불교와 힌두교, 유교, 무교와 도교, 한국 자생 종교인 천도교와 원불교 등과 그리스도교의 만남 등을 주제로 다루어 왔다.
이 연구소는 교회의 쇄신에도 관심을 기울여서, 고 요한 바오로 2세의 교서, 〈제3천년기〉와 한국교회의 실존을 조명하고, 200주년과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검토한 바 있다. 특히 2002년 5월에 청소년사목토착화연구회를 결성한 이후 매년 1회씩 심포지엄과 포럼을 개최하면서, 사목 현장을 토착화 신학 논의에 통합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는, 다룬 주제의 폭으로 보나 그 깊이로 보나, 가히 한국 토착화 신학의 지평을 선도적으로 개척해 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김승혜 수녀가 이끌어온 씨튼 연구원은 현재까지는 그리스도교와 불교의 대화에 역점을 두면서, 유교와 무교, 도교, 한국 종교들과 유다교와 이슬람, 그리고 현대 영성 등을 주제로 깊이있는 종교 대화의 장을 마련해 왔다. 우리의 전통 종교와 문화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교류의 가능성을 확장하면서 가톨릭 신앙 실천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기여해 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사목연구소는 200주년 사목회의에서 수렴된(‘평신도’, ‘선교’, ‘지역사목’ 의안 등 참조) 한국적 사목 비전을 선도할 기관 설립에 대한 열망에 부응하여 1987년 1월에 주교회의 산하 연구소로 발족하였다. 이후 1987년 9월부터 1998년 10월까지 전례와 영성, 교리교육(각각 3회씩), 복음 선교(5회), 신관(13회), 인간관(7회), 공동체관 분야(14회) 등을 모두 48회에 걸쳐 59주제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이어서 1999년 5월에는 그동안 개진해 온 토착화 연구에 대한 종합평가를 시도한 후에, 10월에는 2000년대의 토착화 연구의 전망을 신학과 전례, 동아시아사상, 그리고 영성의 관점에서 진단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처럼 종합 평가를 시도한 이후로도 그리스도교와 서구 토속 문화와의 만남을 조명하는 기회를 계속해서 갖는다(51, 54차). 또한 모두 네 번에 걸쳐서 아시아 이웃 종교 사상의 토착화를 검토하고(52, 53, 55, 56차), 한국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토착화 여정을 돌아보는 자리를 마련하였다(57, 58차). 이를 통하여 복음과 헬레니즘과 동슬라브 문화, 라틴 문화와의 만남과 더불어, 불교와, 유교, 실학의 토착화를, 그리고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종교 자유 시기를 전후하여 이룬 토착화 과정을 살펴보았다.
전통문화 이해 폭 넓혀
이 토착화 연구 기획은, 곽승룡 신부가 지적하듯이, 한국 교회가 “토착화의 새로운 신학적 지평 위에서 발전하게 되는 기초를 다지는 중요한”시도였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단적으로, 그동안 서구 중심으로 틀 지어졌던 교회의 사고 구조를 보다 더 유연하게 해서, 자기의 삶의 자리에서 형성되어 온 종교 전통과 문화, 사상, 관습 등에 귀기울이고 응답할 기본 소양을 육성하는 데 기여하였던 것이다.
실제로 이제는 과거에 그런 것처럼 토착화에 대해서 강하게 반발하거나 무용론을 펴는 목소리를 찾아보기 어렵다(가톨릭신문 2006년 7월 23일자에 실린 ‘토착화의 형태와 단계’ 참조). 이렇게 달라진 환경이 나타나게 된 데는 한국 교회가 나름대로 기울여온 지속적인 토착화 노력이 일정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한국사목연구소 상임위원 나기정 신부가, 한편으로 “토속화”의 위험을 지적하면서, 토착화를 “시대 요청으로 이뤄지고 있는 필연성”이라고 역설하는 것은 이렇게 달라진 정황을 잘 대변한다고 할 것이다(가톨릭신문 2003년 1월 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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