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 어디서 찾아야 하나…”
"봉사자들 사랑으로 가슴 뜨거워”
[전문]
수마가 모든 것을 앗아갔다. 가족도 집도 모두가 흙탕물에 떠내려 가버렸다. 어떤 사람은 천재(天災)라고, 어떤 이는 인재(人災)라고 이야기하지만 가족을 잃고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빼앗긴 사람들에게 재앙을 내린 게 누구인지는 아무 의미가 없다. 춘천교구 기린본당 관할 피해지역에서 만난 두 가지 사연은 무너진 집 더미 옆에서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수재민들의 오늘을 그대로 말해준다.
■ 폭우 속에서 절망을 읽다
“다들 살았잖아, 엄마는 왜 그랬어.”
큰딸 이순우(엘리사벳.57.서울 길동본당)씨와 셋째 딸 이춘여(45)씨는 넋이 나간 표정이다. 오늘도 엄마에게 수도 없이 전화를 하지만 받질 않는다. 그래도 차마 전화기를 손에서 떼지 못하고 또 다시 버튼을 누른다.
7월 15일 오전 11시. 인제군 기린면 하답마을 박춘옥(77) 할머니의 집 뒷산이 폭우로 불어난 물에 무너져 내렸다. 삽시간에 나무와 바위들이 휩쓸렸고 뽑힌 나무와 바위들은 서로 엉켜 물을 막다가 힘을 이기지 못하고 하답마을에 말 그대로 물 폭탄을 내리 쏟았다.
부엌창문으로 물이 내려오는 것을 본 박할머니는 ‘피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현관문을 열었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세찬 물살이 할머니를 휘감았다. 당시를 목격한 마을 주민들은 “물이 하늘을 날았고 할머니는 사라져버렸다”고 이야기한다.
하답마을이 물길에 휩쓸리기 불과 한 시간 전. 셋째 딸 춘여씨는 어머니에게 안부전화를 했다. 폭우가 쏟아지는데 괜찮냐는 안부 전화에 박할머니는 “별 일 없다”며 “이번 달에 휴가 오면 닭을 잡아주마”고 말했다.
어머니의 마지막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한데 자식들은 자신들에게 닥친 악몽이 믿겨지지 않는다.
폭우가 마을을 휩쓸고 지나간 지 일주일째이지만 자식들은 어머니의 시신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 소방대원들이 내린천 상류부터 하류까지 시신을 찾기 위해 힘쓰고 있지만 흙탕물이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둘째 딸 춘여씨가 걸어도 걸어도 대답 없는 전화를 끊고 비척비척 신발을 신는다. 그녀를 따라가 도착한 곳은 어머니의 집이다. 질퍽한 진흙물이 안방 책상까지 차올랐고 이불이며 가재도구는 여기저기 어지럽혀져 있다.
“엄마. 텃밭에 가있지, 왜 그랬어. 고추밭에만 있었어도 괜찮았잖아.”
딸들은 곡(哭)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시신도 찾지 못한 채 울기만 해야 하는 불효를 자식들은 감당할 수가 없다. 가슴이 타 들어간다.
“우리 엄마 어떻게 찾아야 되나…. 우리 엄마 어떻게 찾아야 되나….”
말없이 흐르는 내린천을 바라보며 딸들의 울음소리가 더욱 커져만 간다.
■ 그리고 다시 희망을 찾다
기린면 현5리 오애경(카타리나.47)씨도 이번 수해로 새로 장만한 집을 잃었다. 휩쓸려가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지붕까지 차오른 물로 오씨는 모든 것을 잃었다.
7월 15일. 오씨는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기 위해 빗속에 길을 나섰다.
아이들을 배웅한 오씨는 곧바로 친척동생의 주유소로 일을 나섰다. 그런데 얼마 안 있어 집이 물에 잠겼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설마 피해를 입었을까’하고 달려간 집은 이미 예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세간은 물에 휩쓸려 여기저기 떠내려가 있고 지붕까지 물에 찬 탓에 집은 무너질 듯 말듯 위태했다. 키우던 닭과 거위, 줄에 묶어놨던 개들도 모두 죽었다.
손쓸 틈도 없이 보금자리를 잃어버린 오씨. 물도 전기도 끊긴 상태에서 흙더미를 치우려 집에 들어갔지만 엄두도 낼 수 없었다.
그때 힘이 된 것은 본당 교우들이었다. 희망을 봤다.
자신들도 크고 작은 수해를 입었지만 본당 신자들은 본당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오씨를 돕기위해 소매를 걷었다. 기린본당 주임 최원석 신부와 신자들의 도움으로 집안을 청소하고 세간을 내놓아 말렸다. 인근 부대에서 군인들이 와 컨테이너를 놓을 지반을 다지는데 도움을 줬다.
오씨는 진흙에 파묻혀 있던 마리아상을 주워 씻으며 희미한 웃음으로 답했다.
“봉사자들의 사랑으로 가슴이 뜨겁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오래 컨테이너 생활을 해야 할지 모르지만 오씨는 자신의 일처럼 찾아와 구슬땀을 흘리는 은인들이 있어 희망을 갖는다고 말했다.
오씨는 한마디 덧붙였다.
“이렇게 살아서 아이들을 돌보게 해주신 하느님, 감사합니다. 수해를 입으신 모든 분들이 힘내시길 기도 할게요.”
사진설명
▶무너진 어머니의 집을 보며 오열하는 셋째 딸 춘여씨.
▶기린본당 최원석 신부와 이야기하고 있는 오애경씨.
카리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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