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령 ‘교구 성지를 찾아라’
‘천주가사’ 지령으로 교구 성지 둘러보며 신앙 선조의 삶 새겨
8월 5일 오전, 원주교구 주교좌 원동본당 사무실. 8명의 청소년들이 봉사자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그것은 다름 아닌 다음 목적지의 힌트가 적힌 지령. 뜯자마자 얼굴이 찌푸려진다.
‘밭을일궈 농사짓자 사랑의 샘 솟아나네/ 흙과나무 쌓은건물 예수성체 이루고서/ 뮈텔주교 축성하니 성모님이 미소짓네/ 나랏님도 뜻을아사 문화재로 지정하니…’
힌트가 ‘천주가사’였다. “도대체 어디야?” “아~진짜…” 순식간에 얼굴이 어두워 졌다. “대안리 공소 아냐?” 누군가가 외쳤다. “맞다. 대안리다!” 결정을 내린 9조 청소년들. 이제 가는 방법이 문제다. “버스타고 가면 되잖아. 출발하자.” 누군가의 말에 발걸음을 뗀다. 어느새 사라진 9조 청소년들. 한 시라도 빨리 가고 싶은지 도로 한 켠에서 버스를 세워 우르르 타버렸다.
원주교구 제1지구는 8월 4일부터 6일까지 2박3일간 ‘2006 에파타 여름캠프-그 분께로 한걸음씩’이라는 주제로 청소년 연합 캠프를 실시했다.
1지구 5개 본당 청소년 140여명과 사제를 포함한 봉사자 41명 등 총 200여명이 참여한 이번 캠프는 교구내 신앙 유산을 통해 청소년들의 푸르름을 되새기고자 마련됐다.
캠프는 ‘특별함’ 그 자체였다. 캠프의 주목적은 청소년들이 캠프 기간 내 교구 신앙 유산 25개를 둘러보는 것. 그러나 여기서 그친다면 일반 성지 순례와 다를 바 없다.
교구는 ‘천주가사’를 이용했다. 교회의 독특한 정신 유산이며 신앙 선조들의 믿음과 삶의 면모를 담은 천주가사를 통해 청소년들이 스스로 신앙 유산을 둘러보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교리교사들은 지난 4월부터 직접 지구 내 성지를 찾아보고 현대 감각에 맞는 ‘21세기형 천주가사’를 만들었다.
방식도 독특했다. 140여명의 청소년들을 6~8명씩, 18개조로 나눈 후 천주가사의 내용을 통해 지구 내 성지를 찾아가게 하는 것이었다. 방법은? 최소한의 여비를 각자에게 지급했다. 교통수단은 알아서 이용하게 하고 돈이 떨어질 경우 도보를 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때 봉사자 안나연(요셉피나)씨의 핸드폰이 울려댔다. “네? 횡성이잖아요. 왜 문막으로 갔어요? 그럼 다른 조랑 겹칠텐데…” 통화를 마친 안씨가 서둘러 도시락을 챙긴다. “천주가사를 잘못 이해해서 문막으로 갔다네요”라며 안씨가 웃었다.
청소년들이 지령과 어긋난 성지로 가도 내버려 두는 것 역시 이번 캠프의 특징 중 하나. 봉사자는 최소한의 안전만 책임질 뿐 지령 해독과 다음 목적지 결정 등은 청소년들이 직접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지 청소년들은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연신 밝은 얼굴이었다. 봉산동 ‘천사들의 집’에서 만난 4조 조문범(미카엘.16.일산동본당)군도 그 중 하나였다. 조군은 “더워서 힘들기는 하지만 우리 스스로 하는 캠프라 책임감이 느껴진다”며 “천주가사를 통해 다음 목적지를 맞히는 것도 재미있다”고 말했다.
캠프 기획부 장수백 신부(구곡본당 보좌)는 “현대 청소년들에게는 움켜쥐는 교육이 아닌 풀어놓는 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스스로 의사 결정을 하고 그것을 통해 잊혀져가는 신앙유산을 학습하는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