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넓고 깊은 하느님의 품
물질은 오후까지 이어지고
“저기 오네요. 빨리 포구로 가보세요.”
북쪽으로는 성 김대건 신부가 제주에 표착한 용수리 포구, 서쪽으로는 해안절벽과 기암괴석이 절경을 이루는 차귀도가 한 눈에 들어오는 제주시 한경면 고산리 앞바다.
차귀도 옆 바다에서 물질을 마친 해녀들을 태우고 배가 포구로 들어온다. 포구에 가까워질수록 해녀들의 떠들썩한 목소리가 더욱 생생히 들려온다.
“어이구 더워. 차라리 추운 게 낫지. 요즘 같은 때는 더워서 물질도 못해먹겠다.”
해녀들이 연신 바닷물을 퍼 담아 몸에 붓는다. 검은 색 잠수복이 볕을 흡수해 해녀들이 겪는 더위는 상상 이상이란다.
물질이 다시 시작됐다. 망태(해산물을 담는 그물)와 두렁박(망태가 가라앉지 않도록 달아놓은 부표의 일종)을 바닷물에 던진 해녀들이 곧바로 바다로 뛰어든다. 물속으로 사라졌다 나타났다 반복하길 십여분. 성게와 문어를 두 손 가득 쥔 해녀들이 배 위로 하나둘 오른다.
오전 9시 바다로 나간 고산본당 로사회 회원들의 물질은 오후 3시가 돼서야 끝났다.
하느님과 바다를 사랑
“아무래도 바다에 있는 시간이 많다보니 성당활동에 소홀해지잖아요. 함께 물질하는 사람들끼리 하느님 잊지 말고 좋은 모임 만들자고 해 시작됐죠.”
1995년 만들어진 본당 로사회는 현재 12명의 회원들로 구성돼 있다. 물론 모두가 바다에서 자라 바다와 함께 생활한 해녀. 열두 살 때부터 물질을 시작한 회장 고인춘(아가다.64)씨를 비롯 대부분의 회원들이 50년 가까이 해녀생활을 했다.
예전에는 하루 십만 원까지 벌었던 물질. 하지만 작년이 틀리고 올해가 틀릴 정도로 물질이 쉽지 않다. 바닷물의 온도가 높아지고 오염되면서 톳이며 듬북 등 바다풀과 성게, 전복, 소라가 눈에 띄게 줄었다. 또 대부분 60대인 해녀들에게 하루 너덧 시간의 물질은 힘에 부친다. 그래도 바다를 떠날 수 없다. 하느님이 주신 바다 덕에 자식을 키웠고 병에 걸린 남편을 돌보며 이제껏 행복하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고되도 저녁미사는 꼭
“스물 일곱에 남편 하늘나라에 보내고 혼자서 2남 1녀를 키웠어요. 바다가 없었으면 못했을 거야. 매일 위험한 바다에 들락날락하는 데도 건강히 물질 할 수 있게 지켜준 하느님께 감사할 뿐이에요.”
회장 고인춘 할머니의 말처럼 로사회 회원들은 환갑이 넘도록 물질을 할 수 있게 건강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하고 또 감사한다.
로사회는 1995년부터 지금까지 본당에서 사용하는 제병 구입비용을 헌금하는 것으로 감사를 대신한다.
신앙생활도 열심이다. 제주 고산본당 주임김남원 신부는 “로사회 회원들은 본당 저녁미사를 빠지지 않고 참례하는 일등 신자들”이라며 “바다 일이 고될 텐데도 성당에는 꼭 나오시는 모습을 보면 존경스럽다”고 이야기한다.
거칠지만 아름다운 손
“이제 해녀 볼 날 얼마 남지 않았어요. 우리가 떠나면 이제 물질 할 사람이 없지.”
해녀들의 손놀림이 빨라졌다. 성게 껍질을 벗기고 알을 꺼내는 작업도 해녀들의 몫. 능숙하게 알만 꺼내는 솜씨가 궁금해 가까이 다가서자 쭈글쭈글하고 깊게 패인 손 주름이 먼저 보인다.
가족을 위해 온 몸을 거친 바다에 내던지면서도 오로지 하느님께 감사하며 살아온 어머니요 할머니인 그들의 일생이 거친 손 마디마디 마다 새겨져 있었다. 가족을 사랑하고 하느님을 사랑하며 살아온 그들의 거친 손을 이렇게 뇌리에 새기며 묵상할 날도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음에 아쉬움이 짙게 밴다.
사진설명
▶삶의 터전인 바다로 뛰어드는 해녀(왼쪽 위)
▶성게를 손질하는 그들의 손에서 깊게 패인 주름이 보인다. 50년 가까이 건강히 물질할 수 있게 지켜준 하느님께 감사하고 또 감사한다.
▶바다에서 환한 웃음을 짓는 해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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