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계·장기적 육성계획 세워야
지난 호에서 ‘이성’의 토착화와 연결하여 하느님의 다스림을 ‘밝힐’ 사명에 주목하면서 동아시아 교회의 ‘영명’에 대한 관심에 대하여 간략히 언급하였다. 그러면, 저 ‘영명’으로 하느님의 영과 생명을 토착화시켜 간다고 할 때, 그것은 어떻게 나타날까?
논의는 있지만 실천은 부족
나는 이 주제를 자신이 세계의 중심(中國)이라고 보고 세계의 온갖 문화를 오랑캐시하였던 중국인들의 마음의 문을 연 선교사 마테오 리치의 대화 방법론에 초점을 맞추어서 간략히 소개하고 싶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는 먼저 사고 중심의 원론적 토착화 논의의 한계를 개괄적으로 짚어보고자 한다.
한국 가톨릭 신학계에서 전개되어 온 과정과 관련하여 일반적으로 사변적이고 원론적인 단계에서 머문다든가 나름대로 논의는 있는데 실천이 부족한 경향이 강하다고 비판해 왔다. 실제로 그동안 한국사목연구소를 비롯한 여러 기관과 학자들이 수행해 왔던 토착화 연구와 작업들은 과거의 정신적 유산들을 그리스도 신앙과 대비시켜서 비교 검토하는 수준에서 머무는 면이 있었다.
그러나 교회 현장에서는 한국 사상과 문화를 그리스도 신앙과 대면시켜서 하느님이 이 시대에 바라시는 가치들을 해명하고 그 가치들을 교회 구성원들이 살아 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기를 고대하고 있다. 신앙 공동체의 이같은 열망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라고 하겠는데, 그렇다면, 우리 신학계가 이런 열망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200주년을 전후하여 시작된 토착화 논의 과정 20여 년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기간이다. 논의된 내용들을 원론 진술 단계를 넘어서 실천적 프로그램으로 육화시켜감으로써 교회의 신앙 실천의 체질을 개선하고 교회의 구조를 쇄신하는 데 기여하기까지에는 어느 정도 짧은 기간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이런 원용 작업을 감당할 주체들을 육성하여 우리 교회에 그런 인재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러면 우리 교회가 이 면에서 제대로 준비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 교회는 그동안 하느님의 다스림을 역동적으로 토착화할 전문 인력을 육성하는 데, 예컨대 생명 공학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하여 기울이는 것처럼, 체계적으로 관심을 가졌는가? 그리하여 그런 인재들을 성직자와 수도자, 평신도들 가운데서 배출하는 데 성공하였는가?
지난 20여 년 동안 토착화 논의를 진행시켜 오는 과정에서 관계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안타까워하며 개선을 요청해 온 것이 토착화와 관련된 연구를 감당할 전문가의 육성이었다. 하지만 토착화 논의를 주체적이고 성숙하게 이끌어 갈 만한 인재들이 우리 교회에서, 충분하게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래도 어느 정도라도, 육성되어서 이들이 나름대로 자기 몫을 수행하고 있다는 말을 듣기가 어렵다. 적어도 나의 체험 영역에서 볼 때, 우리 교회는 2000년 그리스도 신앙 전통에 충실하면서도 자기의 민족적,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사상적 아이덴티티에 부끄럽지 않은 형태로 토착화 논의를 펼칠 만한 전문가들을 체계적으로 육성해 왔다고 말하기 힘들어 보인다.
미래 교회 이끌 신학자 필요
이런 현상이 과연 나 한 사람에게서만 체험되는 일일까? 지난번에 소개한 심상태 몬시뇰의 탄식 역시 이런 정황을 어느 정도 반영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 20여 년 동안 이 면에서 우리 교회가 그렇게 안타까워했던 것처럼, 우리는 앞으로도 당분간은 계속해서 속을 태워 가며 한국 신학의 유아성과 낙후성을 견뎌야 한다는 말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물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교회는 언제 결단을 내려서 한국 신학의 성숙을 위하여 성직자는 물론, 수도자들과 평신도들 가운데서 한국 신학의 현재를 감당해 가면서 미래를 선도할 신학자를 육성할 체계적이고도 장기적인 계획을 확보할 수 있을까?
나는 꿈꾼다. 이런 결단을 통하여 우리 교회가 2000년 세계 가톨릭 신앙과 영성 전통에 보다 더 부합한 형태로 이 땅에 충실하게 뿌리내릴 수 있기를. 그리하여 21세기 전세계 가톨릭 교회의 최대의 관심사 가운데 하나라고 할 아시아의 복음화에 필요한 사상적, 사목적, 영성적 비전을 우리 교회가 보다 더 주체적으로 형성하고 나눌 길을 활짝 열어 젖힐 수 있게 되기를.
황종렬 (미래사목연구소 복음화연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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