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1/3 운영…교회 영향력 커
중국 역사-영국문화 섞인 국제도시
사회복지·인권 등 대사회활동 활발
활기찬 열정이 넘치는 곳
아시아 대륙에서 '동방의 진주'라고 불리었거나 불리고 싶어하는 곳은 적지 않지만 21세기 들어서도 명실상부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데는 그리 많지 않다. 동방의 진주, 쇼핑의 천국 등의 대명사로 입에 오르내리는 홍콩은 동아시아에서 가장 선진화된 국제 무역도시 가운데 하나다.
이런 홍콩 사회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홍콩교구의 역사를 말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아편전쟁과 1997년 중국 본토로의 재귀속이다.
1840년 시작돼 1842년 8월 영국의 승리로 끝난 아편전쟁 결과 중국은 영국과 난징조약을 체결해 홍콩을 영국에 할양하고 광저우(廣州) 샤먼(廈門) 푸저우(福州) 닝보(寧波) 상하이 등 5항을 개항하게 되는데, 바로 이 시기인 1841년 교황청은 홍콩을 대목구로 설정해 홍콩 교회의 주춧돌을 놓게 된다. 영국령으로 귀속되던 당시 홍콩은 이때만 해도 인구 7천명의 평범한 어촌에 지나지 않았다. 이후 홍콩교구는 1946년 교황청이 중국에 교계제도를 수립할 때 교구로 승격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97년 7월 1일 다시 중국의 영토로 귀속된 홍콩은 현재 중국의 특별행정자치구로서 ‘1국가 2체제’라는 특별한 체제하에 5000년이 넘는 장대한 중국의 역사와 100여년 동안 이식된 영국의 문화가 섞인 독특한 국제도시로 자리잡고 있다.
사회정의의 선구자
중국인 신자 24만명과 필리핀에서 건너온 신자를 비롯한 외국인 신자 13만명 등 총 37만명에 이르는 홍콩교구는 총 인구 700만명 대비 5.3%의 복음화율을 보이고 있다.
사회복지 분야와 인권, 정의평화 영역에서의 홍콩교구의 활동은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교회를 대표하는 상징과도 같다. 교회의 사회복지 활동은 1860년 샬트르 성 바오로수녀회가 진출해 고아들을 돌보고 소녀들을 가르치는 일을 시작하면서 비롯됐다. 그러다 중국이 사회주의화되면서 난민들과 함께 대거 홍콩으로 내려온 선교사들이 해외의 도움을 얻어 병원 등 사회복지시설을 지어 사회복지사업에 나서는가 하면 학교를 설립해 사회와 교회의 발전을 도모해왔다.
이러한 교회 활동의 유산은 고스란히 오늘에도 이어져 있다. 굳이 교회를 내세우지 않더라도 ‘홍콩 카리타스’는 홍콩 최대의 사회사업 조직이자 영향력 있는 단체로 교회를 빛나게 하는 존재가 되고 있다. 또한 홍콩에 있는 전체 1600개에 이르는 학교 중 3분의 1을 교회가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만 봐도 교회가 홍콩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가늠할 수 있다. 이로 인해 홍콩의 행정수반을 비롯한 많은 고위공직자와 각계각층의 인재들이 교회를 통해 배출돼 교세에 비해 교회의 영향력은 상당한 수준이다.
특히 근래 10년 사이 교회는 각종 인권 현안에 앞장섬으로써 많은 이들로부터 사회정의의 선구자로 인식되고 있다.
앞으로의 도전
4년 전 처음으로 교구 시노드를 개최한 홍콩교구는 교구의 전망과 관련해 △혼인과 가정 △청소년 △신자재교육 등 3가지를 주요한 사목 방향으로 정하기도 했다. 이는 교구가 당면한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현재 교구신학생 수가 7명이어서 교구의 미래를 밝게만 볼 수 없는 상황이다. 더군다나 성소 지망자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현실이어서 교회의 미래를 개척해 나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도전이 필요한 시점임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교구 관계자들은 이 같은 현실의 원인을 광범위하고 뿌리 깊게 내린 물질주의와 배금주의의 영향에서 찾는다. 독신으로 살며 교회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도 성소의 길에 대해서는 손사래를 치는 신자들의 모습은 홍콩교회가 처한 상황의 단면을 보여준다.
이런 현실을 지탱해주는 다양한 시스템을 구축해온 것도 홍콩교구가 도전의 역사를 통해 걸러낸 지혜다. 그 대표적인 것인 종신부제 제도다. 1996년 종신부제 제도를 도입해 올해로 꼭 10년째를 맡는 홍콩교구는 종신부제양성위원회를 통해 30대 후반부터 60대에 이르는 이들을 대상으로 교회 인재를 양성해내고 있다.
■홍콩교구 현황
추기경 1명, 주교 1명
성직자 : 300여명(중국인 사제 150여명 포함, 나머지는 16개 수도회 소속), 종신부제 : 9명
수도자 : 수녀 508명, 수사 72명
52개 본당(교구 관할 21곳, 선교.수도회 관할 31곳)을 비롯해 102군데에서 미사 봉헌.
사회사목 : 현재는 6개의 병원을 운영하고 있으며, 다수의 양로시설 운영.
“한해 사제 1명 탄생하는 실정 교회 유지하는 힘은 평신도”
■홍콩교구장 젠 제키운 추기경
“어려운 가운데서도 홍콩교구가 이어온 것들을 다른 교회에도 보여주고 함께 나눌 수 있길 희망합니다.”
중국과 보편교회 사이에 조그만 뉴스거리라도 생기면 거의 예외없이 함께 등장하는 ‘뉴스 메이커’ 홍콩교구장 젠 제키운 추기경(74)은 교류와 나눔의 의미를 역설했다.
이미 1980년대부터 갖은 난관을 무릅쓰고 기회가 닿는 대로 중국 본토를 오가며 신학생 등과의 만남을 통해 사랑의 길을 넓혀온 젠 추기경은 만남에서 희망이 싹 트고 자라남을 몸소 체험했다고 털어놓았다.
“지난 50년 사이 중국교회도 상황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의 과정에서도 늘 하느님의 손길이 함께 하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변화 속에 내재한 실체를 읽고 자신의 십자가를 발견하게 하는 것도 바로 만남이 가져다주는 소중한 열매입니다.”
그가 교류를 강조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바로 단절과 절연이 낳는 오해와 굴곡의 역사를 누구 못지 않게 체험한 이가 바로 자신이기 때문이다.
보편교회 안에서의 홍콩교구의 위상과 몫도 전체 중국교회와 관련해 조심스럽게 바라봐야 한다고 지적한 젠 추기경은 중국교회의 비전도 신뢰가 바탕이 된 교류와 사귐 속에서 찾는 듯했다.
그런 그이기에 교회 곳곳에서 활약상을 보이고 있는 평신도들에 거는 기대는 남다르다. 한해 평균 1명의 사제가 탄생하는 교구 상황에서 교회를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저력이 평신도들에게서 나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매년 2천여 명의 성인영세자들이 탄생하는데 이들에 대한 교리교육의 대부분을 평신도들이 담당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신학 공부와 각종 활동에 있어서도 평신도들이 보여주는 열의는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홍콩의 전반적인 경제 수준이 올라가면서 그간 교회 발전의 밑거름 역할을 해온 해외로부터의 원조가 줄고 정부의 통제가 강화되고 있는 현실을 극복해야 할 과제로 꼽은 젠 추기경은 보편교회 속에서 올바른 입장을 견지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아울러 그는 중국 본토 내의 젊은 성직자들에 거는 기대감도 숨기지 않았다.
“갈수록 세속화되는 흐름 속에서 젊은 성직자들이 세파에 휩쓸리지 않고 신앙에 기초한 불같은 마음으로 믿음의 기초를 다져나갈 때 주님의 뜻이 중국 땅에서 보다 힘 있게 펼쳐질 수 있을 것입니다.”
벗이자 형제 교회인 아시아의 여러 교회와도 함께 하고 싶다는 뜻을 피력한 젠 추기경은 특별히 한국교회의 역할에 기대감을 보였다.
“아시아의 교회들은 보편교회 안에서 보편교회를 보면서 함께 성장해야 합니다.”
<젠 추기경은>
1932년 중국 상하이의 가톨릭 집안에서 10남매 가운데 여섯째로 태어났다. 살레시오회에서 운영하는 학교를 통해 예비신학생으로서 성소의 꿈을 키우던 그는 중국이 공산화되기 직전인 48년 홍콩으로 오게 된 이후 줄곧 홍콩교구를 사목의 터전으로 활동해왔다. 이탈리아 로마 유학시절인 61년 사제품을 받은 그는 64년 귀국 후 살레시오 신학원과 홍콩 신철학원 등에서 교수로 후학을 양성하기도 했다. 96년 홍콩교구 부교구장 주교로 서품되었고 2002년 전임 우쳉충 추기경이 선종하자 뒤를 이어 홍콩교구장이 되었으며 2006년 2월 22일 중국 출신으로는 최초로 추기경에 임명됐다.
사진설명
화려한 홍콩의 야경은 밝지만은 않은 중국교회의 미래와 교차돼 많은 생각을 품게 만든다. 외로이 빛을 발하고 있는 홍콩의 밤이 홍콩교구의 현재를 엿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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