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트로트·클래식 퓨전그룹 사랑몰이 나간다”
매달 한차례 전국돌며 무료공연
“욕심 버리고 순수해지도록 노력”
차 안에서 떡 파티가 벌어졌다. 새벽 5시. 차는 서해안 고속도로를 시원스레 달리고 있었다. 가톨릭 문화 예술인 모임, 우리사랑 나누리회(회장 박정자) 회원들은 새벽부터 집을 나서느라 챙기지 못한 아침을 차안에서 해결했다. 가수 바다의 부모인 최장봉(요한.64)-조복순(체칠리아.55)씨,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고법 이수자 김혜자(데레사.46)씨, 대학에서 판소리를 강의하는 오세란(베르나데타.50)씨, 헝가리 리스트 음악원 마스터 코스를 수료한 소프라노 전미숙(베르나데타.47)씨와 소프라노 정민화(도미니카.45)씨, 가야금 명인 오수자(임파.52)씨, 한국무용 전공 김은경(아녜스.49)씨, 트로트 가수 박진도(바오로), 최송(베네딕토)씨….
각자의 달란트로 뭉쳐
대중가요 가수, 국악인, 성악가 등 각기 다른 달란트를 가진 회원들이 매달 정기적으로 자비를 들여 전국 복지시설을 찾아 무료 공연을 가진 것이 벌써 20년째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 엠프 등 공연 장비와 의상들도 모두 직접 가지고 간다. 소위 ‘퓨전 모임’의 ‘퓨전 사랑’인 셈이다.
이 달에는 제주도에 있는 성이시돌 요양원(원장 한승광 수녀, 서울성가소비녀회)을 찾았다. “먼길 찾아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원장 수녀가 반갑게 맞았다. 서울에서 목포까지 4시간, 다시 목포에서 제주까지 배로 4시간, 제주항에서 요양원까지 차로 1시간. 서울에서 꼬박 9시간이 넘게 걸렸다. 엠프 등 장비 때문에 비행기는 이용할 수 없었다.
박정자(체칠리아) 회장은 “회원들이 모두 나름대로 강한 하느님 체험을 갖고 있다”며 “시간에 쫓겨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을 보속하는 심정으로 열심히 봉사에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간이 돈’인 사람들. ‘야간열차’ ‘똑똑한 여자’ 등으로 최근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는 트로트 가수 박진도씨의 경우,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지만 우리사랑 나누리회 일이라면 지방 공연도 마다하지 않고 따라나설 정도로 열성이다. 최근 ‘인생 이야기’ 음반을 내고 제2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는 가수 ‘바다’양의 아버지 최장봉씨도 마찬가지.
공연 MC를 전담하는 박대업(베드로.40)씨 등이 엠프, 마이크 장비를 공연장으로 날랐다. 공연자들은 드레스 등 옷을 챙겼다. 의지할 곳 없어 요양원에 의탁하고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하나 둘 공연이 열릴 강당으로 모여들었다.
“작은 공연이라도 대형 공연에 버금가는 정성과 노력을 들입니다. 그런 마음을 갖고 공연을 해야 감동이 전해집니다.”
박회장은 “소규모 미인가 복지시설을 찾아가서 공연을 하다 보면 때론 공연자 수보다 적은 수의 관객을 놓고 공연할 때도 많다”며 “하지만 관객 한명 한명을 예수님으로 생각하고 공연에 임한다”고 말했다.
막이 올랐다. 성악, 부채춤, 가야금 연주, 판소리, 전통가요 등 수준높은 공연이 이어졌다. 처음에는 자리에 묵묵히 앉아있던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어깨가 조금씩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이어 최송씨의 트로트 메들리와 오세란씨의 민요 메들리가 이어지자 공연장은 절정의 분위기였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공연자들과 함께 춤을 췄다. 팔짱끼고 구경하던 요양원 직원들도 함께 나와 할아버지 할머니의 손을 잡았다.
“이렇게 멀리까지 찾아와 우리를 위해 공연을 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한승관 원장수녀는 흥겨워하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바라보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하느님은 눈에 안 보이잖아요. 하지만 회원들의 모습 속에서 하느님을 봅니다.”
박회장은 “회원들의 따뜻한 마음이 지난 20년간 복지시설 무료 공연을 이어올 수 있었던 힘”이라고 말했다.
2, 3세까지 대물림 꿈꾸며
우리사랑 나누리회 회원들은 요즘 ‘사랑의 대물림’을 꿈꾸고 있다. 10년, 20년 후, 문화향기를 전하는 이 일에 2, 3세들도 함께 동참했으면 하는 바람이 그것이다.
“20년전 모임을 시작할 때만해도 이렇게 오랜 기간 활동할 수 있을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순수한 마음을 갖고 하느님께 의지한다면 어떤 일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앞으로도 우리는 계속 스스로의 욕심을 버리고 순수해 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불러주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 하느님의 향기를 전하겠습니다.”
하느님에게 받은 달란트를 나눈, 문화사도들의 얼굴에는 환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사진설명
▶국악인 오세란씨가 ‘춘양가’ 판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한 회원이 공연 막바지에 최송씨의 노래를 들으며 할아버지와 함께 흥겨워하고 있다.
기사입력일 : 2006-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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