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딱뚝딱"…헌집을 새집으로
단원 40여명 자비털어 집수리 나서
뜨거운 사랑으로 봉사의 참맛 느껴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난감했다. 집 고치는 일이라면 이력이 날대로 난 이들이 한둘이 아니지만 이번엔 한참 동안이나 고칠 집을 이리저리 뜯어보며 궁리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였다.
“허허, 새로 짓는 게 낫겠구먼….”
몇몇이 고개를 주억였지만 답은 나오지 않는다.
“쳐다만 보고 있으면 뭐해요. 어디라도 손부터 대면 답이 나올지 누가 알아요.”
#다시 기둥을 세우고
서울대교구 카리타스봉사단 총무 조창규(이레네오.51)씨가 조용히 긴 숨을 내쉬며 한마디하자 그제서야 연장을 챙겨들고 오늘의 ‘미션’에 임하기 시작한다.
조그만 집에 달라붙은 사람은 모두 9명. 그렇지 않아도 찌는 듯한 날씨에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까지 더해져 집안은 한증막이나 다름없었다.
삭을 대로 삭은 나무판자를 뜯어내자 수십년 고난의 세월이 무너져 내리듯 벽채까지 군데군데 함께 뜯겨 나온다.
“허어, 고양이가 드나들어도 되겠네.”
작업에 들어간 지 3시간째. 톱과 망치로 시작된 작업은 이내 흙손에 시멘트, 모래, 합판 등 작업도구가 하나둘 늘면서 오히려 속도가 붙고 있었다.
“생각보다 일이 커지겠는데요.”
서울 카리타스봉사단(단장 정점길) 단원들이 이날 찾은 곳은 서울 도봉산 자락에 위치한 한 할머니 집. 일곱살 난 손녀와 단둘이 살고 있다는 할머니는 미안함이 가득한 얼굴로 봉사단원들을 맞았다.
50년도 더 됐다는 집은 바람이라도 심한 날이면 위태로울 것 같았다. 오늘 미션은 부엌 겸 다용도실로 쓰고 있는 창고를 수리하는 일. 산자락에 비스듬히 기대 지은 데다 그 때 그 때 필요할 때마다 땜질한 태가 역력한 집은 잘못 했다가는 손도 못 댈 판이었다. 오래된 가옥들의 공통된 문제다.
50년 가난의 세월을 허물어낸 자리에 다시 기둥을 세우고 합판을 댄 후 비닐을 둘러치는 일은 내내 8월 따가운 땡볕 아래에서 이루어졌다. 일터에서 내려다보이는 도봉산 계곡 아래에서는 무더위를 쫓기 위해 물놀이에 나선 이들의 웃음이 가득했지만 봉사자들은 눈길조차 돌릴 틈이 없었다.
갈 길이 멀다. 콩국수 한 그릇으로 점심을 때우자마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다시 연장을 집어 든다. 온몸은 이미 땀과 먼지가 범벅이 된지 오래다. 차도 들어올 수 없는 산자락이라 그 때 그 때 필요한 연장과 건축자재 모두 온몸으로 져 날라야 했다.
그렇게 일한 지 꼬박 12시간 가까워오자 일의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밤 9시가 넘어 일을 접는 이들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가득했다.
“야, 오늘은 좀 일할만 한대요.”
그제서야 막내 박미순(룻.38.서울 봉천8동본당)씨의 얼굴에도 뿌듯함이 밴 웃음이 번지기 시작한다.
김승기(대건 안드레아.39.의정부 송산본당)씨는 “집에서 쉬고 싶은 마음이 왜 안 들겠냐”며 “하지만 우리들의 작품을 보고 눈물을 흘리시던 분들을 잊을 수 없어 봉사를 멈출 수 없다”고 말했다.
카리타스봉사단 단원들이 어려운 집들을 찾아 나서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3월. 일상적인 나눔을 위해 봉사단 내에 ‘집수리사업단’을 꾸리면서였다.
그렇다고 40명에 이르는 봉사자 모두가 건축 관련 일을 하는 이들은 아니다. 의류매장을 운영하는 이부터 평범한 주부까지 제각기 다른 직업을 지닌 이들이 대부분이다.
매달 두 차례 나서는 집수리 활동에 들어가는 자재비 등 순수비용만 월 100만원대에 이르지만 필요한 만큼 자신들의 주머니를 털어내기에 이들의 활동은 더욱 값지게 다가온다.
자신들의 도움을 받은 쉬고 있던 신자 가정이나 비신자 가정이 새로운 신앙을 갖게 될 때의 보람이란 그 어떤 선물과도 비견할 수 없는 기쁨이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님에도 회원이 되겠다고 나서는 이들이 하나둘 늘고 있는 것도 그간의 결실인 셈이다.
“저희들의 조그만 봉사에 너무도 고마워하시는 것을 보면서 작은 나눔에 큰 보람을 느낍니다. 또 그분들 모습을 통해서 저희들 일상생활에서 감사할 일이 너무 많다는 것도 깨닫게 됩니다.”
봉사단원들의 머리와 어깨에 소복이 내려앉은 먼지가 주님의 은총처럼 푸근하게 다가왔다.
#나눔은 관심에서
뜨거운 여름의 열기 속, 그 열기보다 뜨거운 마음으로 사랑의 실천에 나선 신자들의 모습은 봉사활동이 나아가야 할 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들의 활동은 특별한 능력이나 남다른 기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나누고자 하는 마음에서 시작됐던 것이다.
최근 들어 대기업이나 기관들의 공적 기부를 비롯한 다양한 기부 활동과 가족과 함께 하는 봉사활동 등 과거에는 보지 못했던 다채로운 모습의 나눔이 생겨나고 있는 것은 의미있는 움직임이다.
특히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했던 양극화로 인한 가족해체 등 다양한 사회 문제들이 겹치면서 사회적 갈등이 급증하는 추세 속에서 이러한 봉사활동은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그러나 주일 미사에 나오는 신자들 가운데 봉사하고 활동하는 신자들이 여전히 5∼10%에 불과한 현실은 아직 교회가 헤치고 가야할 길이 순탄치만은 않음을 보여준다. 10%에도 못 미치는 이들이 아니라 신자들 모두가 각자 나름대로 받은 은사를 확인하고 이를 십분 발휘하도록 이끄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노력에 불을 댕기는 존재는 먼저 봉사의 참맛을 본 평범한 이들이란 사실을 지난 여름은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고 있다.
“무슨 봉사를 해야 될지 모르는 이들은 본당 구역.반장이나 봉사자들을 따라 나서는 일부터 시작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면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보일 것입니다.”
쑥스런 표정으로 한 마디 하는 송명섭씨의 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미장·보일러 수리…작은 도움돼 기뻐”
■건축설비봉사 송명섭씨
“저…기, 계세요?”
쑥스러움이 묻어나는 표정의 송명섭(바오로.52.서울 중계동본당)씨가 쪽문을 향해 누굴 찾자 가느다란 대답과 함께 문이 열린다.
“저 또 왔어요. 저번에 못 마친 것 마무리해야죠.”
대답이 돌아오기 전에 연장가방부터 풀어헤친 송씨가 전기배선부터 만지기 시작한다.
집주인 할머니가 시원한 것 한 잔이라도 마시고 하라고 해도 돌아오는 대답은 늘 한결같다.
“예, 요것만 해놓고요.”
그렇게 시작한 일이 꼬박 3시간째다.
‘조금만 늦었으면 큰일 날 뻔 했네….’
한 집 한 집을 소개받아 방문할 때마다 송씨의 뇌리에 비치는 생각이다.
“어떻게 이렇게 해놓고 살아왔을까 싶기도 하지만, 어쩌면 그런 사정 모두가 우리의 책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땐 오히려 미안해질 때가 많더라고요.”
“번번이 고마워서 어쩌냐”며 집주인이 뭐라도 내올라치면 부리나케 연장가방을 챙겨들고 내빼기 일쑤다.
사정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가정에 조금이라도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마음씀씀이다. 오히려 다시 찾을 때는 음료수나 라면 등 뭐라도 싸들고 가야 마음이 편하다는 게 송씨의 말이다.
자신과 연이 닿아 한번이라도 찾았던 집이라면 요즘은 어떻게 사는지 궁금증마저 일어 한두 번 더 찾아보는 게 보통이다.
그러다 보니, 송씨는 이웃들에게 목소리만 들어도 반가운 존재가 되고 말았다.
송씨는 이런 홀로 사는 노인들이나 소년소녀 가장들의 집은 물론 에이즈 환자들을 위한 쉼터, 농아선교회 등 자신을 부르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 자신의 능력을 펼쳐놓는다.
“대단한 거 하나도 없는 일인데요 뭘.”
건축설비업을 하고 있는 송씨가 봉사를 통해 이런 새로운 삶을 맛보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우연한 기회에 서울 카리타스봉사단의 봉사활동에 한두 번 따라나서면서부터였다.
이후 송씨의 삶은 과거와는 사뭇 달라졌다. 미장일부터 보일러 수리, 전기 설비, 목수일까지 어떤 일이든 마다 않는다.
“기회가 닿는 대로 봉사하고 싶습니다. 힘들지만 기뻐하는 이들을 보며 저도 새로운 기쁨을 맛봅니다.”
사진 찍기를 한사코 거부하는 송씨를 설득해 겨우 얼굴사진 한 장을 찍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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