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한우 일인분도 안되는 용돈
홍수와 기나긴 장마로 유래 없는 피해를 입은 강원도의 대표적 산골 지방인 인제군과 평창군의 2006년 여름은 악몽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그래서 뜻하지 안부의 전화를 많이 받았던 여름이었다.
안부 전화 가운데 고향의 알고 지내던 분이 오랜만에 전화를 하셨다. 올 여름같이 비가 많이 오고 더운 날씨에 ‘어떻게 지내셨냐?’고 물으셨다.
그분의 안부를 요즘 신세대 표기법과 방언을 섞어서 그대로 옮겨 보면, ‘신부님 요새 거도 마이 더와요? 그쪽에 홍수 나따고 하던데 글쎄 우타 지냈써요?’다. 그래서 속으로 답했다. ‘우타 지내긴요? 우타 즉, 여름 내내 비 맞고 지냈지요(참고로 ‘우타’는 ‘어떻게’의 지방 방언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서 얼마지 않아 수해 지역 방문 중에 만난 혼자 사시는 교우 할머니께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라는 똑같은 질문을 드렸다. 그랬더니 귀가 잘 안 들리시는 할머니 말씀이 이번 달에는 아들이 만원 더 줘서 3만원 받아서 돌아가신 할아버지 연미사도 올렸다고 나름대로의 행복을 표현하셨다….
그 말씀에 순간 울컥하며 슬펐는데, 이번 달에 당신이 3만원을 더 받아써서 괜히 아들한테 미안하고 눈치 보인다는 할머니의 다음 말씀에 그만 울컥함이 싹 가시고 말았다. 그 일 이후로 나는 어떻게 사느냐는 질문만 받으면 눈치를 좀 보기는 하지만 그래도 잘 산다고 말한다. 질문한 이가 대답 같지도 않는 나의 그와 같은 답에 좀 궁금해 하면 다음과 같이 쓸데없는 사족을 붙인다.
시골에서 전형적인 농촌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농사철에 팔 수 있는 농산물 판매 수입 외에는 뜻밖의 횡재 같은 부수입이란 결코 없다. 그래서 농촌 사람들은 오직 가진 것 자체와 들판의 것들만 가지고 산다. 그러다 보니 결국 시골 농촌의 삶은 생기는 수입이나 수익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쓸 게 있어도 안 쓰고 또 안 쓰는 삶이요, 쓰고 싶어도 쓸 것이 없는 삶의 연속이다. 특별한 고정 수입원이 없으니 안 쓸 수밖에 없고 못 쓸 수밖에 없다. 이래 저래 지출될 것만 있고 들어올 수입은 없다보니 불안해서 그나마 몇 푼 있는 것도 못 쓰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러니 올해처럼 수해로 말미암아 1년 농사를 망치다시피한 해의 농촌 시골의 삶은 더욱 황량할 수밖에 없다. 농부도 그렇고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그렇다. 그래도 떼이거나 깎이지 않고 또박또박 생활비 받는 신부가 쫌 나은 편인지라 가끔 있는 자장면 파티는 시골 신부의 역사적 사명이다. 그러니 이러한 시기에 요즘에 들어 심심치 않게 얘기되는 하나에 몇 천, 몇 억 하는 명품들 이야기는 애시 당초 전설의 고향 같은 이야기고, 에누리를 쳐도 무더운 한여름 납량특집에 나오는 썰렁한 이야기다.
그런데도 우리네 어머니 아버지들께서는 그나마 평창 한우 150g 일인분 고기값도 못되는 돈을 자식으로부터 받고서도 되레 미안하시다고 어쩔 줄 몰라 하신다. 이것이 인간의 언어이고 이것이 요즘 개나 소나 입만 열면 말하는 사랑이라는 거 뭐 그런 것이 아닐까하고….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날씨도 안 좋은데 잘 지내고 계신지요?”
오늘도 나는 이런 사랑의 인사를 받으며 산다. 그리곤 그때마다 좋아요, 혹은 무엇 때문에 혹은 어떤 일로 말미암아서 별로 안 좋아요로 답하고 살아가고 또 그렇게 살아왔다.
반면에 아무리 기억해 보아도 무엇무엇 때문에 미안하고, 어떤 일 때문에 송구스럽다거나 미안했었다는 말을 해본 기억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러면서 문득 스치는 한 생각, 나와 같은 그런 마음에서 결국은 ‘내가 번 내 돈으로 내 맘대로 내가 쓴다는데 네가 웬 참견이냐’ 하는 생각이 시작되어 마침내 이시대의 비극 이야기인 명품과 명품족 이야기가 계속해서 생겨나는 것이 아닐까하고 갸우뚱 해본다. 머리를 한쪽으로 갸우뚱하니 반대쪽 머리에 공간이 생기면서 촌에 사는 촌놈 머리에 촌스럽기 그지없는 명품 생각이 떠오른다.
잘못한 사람보다 잘못이 없는 사람이 더 미안해하는 세상이 바로 천국이 아닐까? 갸우뚱?
배달하 신부 (원주교구 대화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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