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신앙의 조화에 모범 보여”
과학적 방법으로 진화현상론 세우고
그리스도 중심 일원론적 세계관 수립
인간은 종종 양립되지 않는 두 가지 요소를 모두 지녀야 하는 운명을 지닌다. 죄악으로 이끌리는 육체와 절대자를 향해 위로 나아가려는 영혼과 정신이 오묘하게 조화를 이룬 인간 존재로서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근대 이후 인간 이성은 신앙과 적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면서, 과학과 신앙의 관계 역시 이러한 갈등과 긴장의 관계에 서있는 것 같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듯이 과학은 자주 신앙과 배치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곤 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고생물학의 최고 권위자로 교회 안팎에서 인정 받고 있는 자연과학자이면서 사제인 샤르댕 신부를 떠올리게 된다. 그는 자연과학적 업적의 권위에는 누구도 이견을 달지 못할 만큼 탁월한 과학자이면서도 동시에 초월적 신앙에 평생을 바친 신앙인으로서 오늘날까지도 논란이 되는 과학과 신앙의 조화에 그 하나의 모범을 보여준다.
‘위험사상’으로 경고 받기도
프랑스 출신의 예수회 신부이면서 철학자이며 고생물학자인 테야르 드 샤르댕 신부는 1881년 5월 1일 프랑스 사르세나에서 부유한 농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10세 때부터 예수회가 운영하는 학교에서 기숙사 생활을 했고, 18세가 되던 1899년 엑상프로방스에 있는 예수회에 입회했다.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뒤 1911년에 사제품을 받았는데, 특히 그는 신학 외에도 지질학, 고인류학, 고생물학 등을 공부하고 수품 후인 1912년부터는 파리의 박물관에서 고생물학에 대한 연구를 계속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뒤 파리로 돌아와 진화론에 대한 연구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1922년까지 소르본 대학의 교수로 잠시 강의를 맡기도 했다. 이때, 그의 과학적으로 추론된 신에 대한 사상이 위험한 것으로 간주돼 예수회는 그를 중국으로 파견한다.
하지만 이것이 오히려 호기가 돼 그는 아시아에서 다양한 연구를 통해 공부를 계속하고 많은 발굴에 참여했는데, 특히 북경 원인의 발견은 유명했다. 그리고 1938년에는 <인간 현상>의 초고를 완성한다.
제2차 세계대전 후 1946년 파리로 돌아온 그는 연구와 교수생활을 했으나 사상 발표와 교수 생활에 많은 제약을 받았다.
과학적 진화론과 그리스도론에서 인류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제시하려 했던 그의 주장에 대해 교황청은 1962년 그의 사상을 비판없이 수용하는 것에 대해서 경고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진화의 종점, 그리스도
샤르댕의 우주론을 스스로 일러 ‘과학적 진화 현상론’이라고 부른다.
즉 우주의 전체 구조와 의미를 알기 위해 우주를 하나의 대상으로 놓고 현상학적으로 관찰하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우주는 정적이고 완결된 것이 아니라 완성을 향해 진화하는 것이다.
이 우주의 진화는 무한대와 무한소, 나아가 무한 복잡의 방향을 향해 나아간다. 무한대에서는 상대성이, 무한소의 방향에서는 양자 현상이 나타나는데, 제3의 무한의 방향에서는 의식, 자유의 현상이 나타난다. 즉 사물이 구조상으로 복잡하면 내적으로 더욱 큰 의식(정신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바탕으로 그는 지금까지의 우주의 진화를 생명의 발생과 인간의 출현이라는 두 가지 임계점을 중심으로 설명한다. 특히 인간의 출현은 진화의 새로운 단계로서 더욱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인간은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진화과정의 특수산물이다.
무기물에서 생명이 발생했고, 생명의 진화는 인간 출현의 준비 단계이다. 고등동물에서 인간이 진화했는데, 그 둘의 차이는 외견상으로 뿐만 아니라 본질적으로 다르다. 인간의 진화는 또한 개인의 발전 뿐만 아니라 관계로써 사회와 관련된다. 이러한 식으로 인간의 진화는 의식의 상승으로써 앞으로 나아간다고 그는 말한다.
샤르댕신부는 이러한 진화는 궁극적으로 진화의 종국점, 즉 오메가점에 이르는데, 여기에서 그는 우주의 목적인 그리스도를 오메가점과 동일시한다. 그리스도는 만물의 시작이요 목적이며, 아울러 만물을 완성하는 통일력이다.
이러한 그의 통찰을 통해서 볼 때 결국 종교와 과학은 대립되지 않는다. 과학적 탐구는 우주의 창조자인 하느님에 대한 탐구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이 결부돼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종교와 과학의 관계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지속적인 논란을 이루고 오해와 이해가 엇갈리는 영역이다. 샤르댕 신부의 가장 큰 공적은 바로 이 지점이다. 과학적 방법으로 진화 현상론을 세우고 이를 바탕으로 그리스도 중심의 일원론적 세계관을 수립해 종교와 과학의 종합을 시도한 것은 과학에 대한 회의와 미래에 대한 불안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새로운 빛을 비춰준다. 그의 사상은 아직도 탐구할 지역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인간은 종종 양립되지 않는 두 가지 요소를 모두 지녀야 하는 운명을 지닌다. 죄악으로 이끌리는 육체와 절대자를 향해 위로 나아가려는 영혼과 정신이 오묘하게 조화를 이룬 인간 존재로서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근대 이후 인간 이성은 신앙과 적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면서, 과학과 신앙의 관계 역시 이러한 갈등과 긴장의 관계에 서있는 것 같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듯이 과학은 자주 신앙과 배치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곤 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고생물학의 최고 권위자로 교회 안팎에서 인정 받고 있는 자연과학자이면서 사제인 샤르댕 신부를 떠올리게 된다. 그는 자연과학적 업적의 권위에는 누구도 이견을 달지 못할 만큼 탁월한 과학자이면서도 동시에 초월적 신앙에 평생을 바친 신앙인으로서 오늘날까지도 논란이 되는 과학과 신앙의 조화에 그 하나의 모범을 보여준다.
‘위험사상’으로 경고 받기도
프랑스 출신의 예수회 신부이면서 철학자이며 고생물학자인 테야르 드 샤르댕 신부는 1881년 5월 1일 프랑스 사르세나에서 부유한 농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10세 때부터 예수회가 운영하는 학교에서 기숙사 생활을 했고, 18세가 되던 1899년 엑상프로방스에 있는 예수회에 입회했다.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뒤 1911년에 사제품을 받았는데, 특히 그는 신학 외에도 지질학, 고인류학, 고생물학 등을 공부하고 수품 후인 1912년부터는 파리의 박물관에서 고생물학에 대한 연구를 계속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뒤 파리로 돌아와 진화론에 대한 연구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1922년까지 소르본 대학의 교수로 잠시 강의를 맡기도 했다. 이때, 그의 과학적으로 추론된 신에 대한 사상이 위험한 것으로 간주돼 예수회는 그를 중국으로 파견한다.
하지만 이것이 오히려 호기가 돼 그는 아시아에서 다양한 연구를 통해 공부를 계속하고 많은 발굴에 참여했는데, 특히 북경 원인의 발견은 유명했다. 그리고 1938년에는 <인간 현상>의 초고를 완성한다.
제2차 세계대전 후 1946년 파리로 돌아온 그는 연구와 교수생활을 했으나 사상 발표와 교수 생활에 많은 제약을 받았다.
과학적 진화론과 그리스도론에서 인류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제시하려 했던 그의 주장에 대해 교황청은 1962년 그의 사상을 비판없이 수용하는 것에 대해서 경고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진화의 종점, 그리스도
샤르댕의 우주론을 스스로 일러 ‘과학적 진화 현상론’이라고 부른다. 즉 우주의 전체 구조와 의미를 알기 위해 우주를 하나의 대상으로 놓고 현상학적으로 관찰하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우주는 정적이고 완결된 것이 아니라 완성을 향해 진화하는 것이다.
이 우주의 진화는 무한대와 무한소, 나아가 무한 복잡의 방향을 향해 나아간다. 무한대에서는 상대성이, 무한소의 방향에서는 양자 현상이 나타나는데, 제3의 무한의 방향에서는 의식, 자유의 현상이 나타난다. 즉 사물이 구조상으로 복잡하면 내적으로 더욱 큰 의식(정신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바탕으로 그는 지금까지의 우주의 진화를 생명의 발생과 인간의 출현이라는 두 가지 임계점을 중심으로 설명한다. 특히 인간의 출현은 진화의 새로운 단계로서 더욱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인간은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진화과정의 특수산물이다.
무기물에서 생명이 발생했고, 생명의 진화는 인간 출현의 준비 단계이다. 고등동물에서 인간이 진화했는데, 그 둘의 차이는 외견상으로 뿐만 아니라 본질적으로 다르다. 인간의 진화는 또한 개인의 발전 뿐만 아니라 관계로써 사회와 관련된다. 이러한 식으로 인간의 진화는 의식의 상승으로써 앞으로 나아간다고 그는 말한다.
샤르댕신부는 이러한 진화는 궁극적으로 진화의 종국점, 즉 오메가점에 이르는데, 여기에서 그는 우주의 목적인 그리스도를 오메가점과 동일시한다. 그리스도는 만물의 시작이요 목적이며, 아울러 만물을 완성하는 통일력이다.
이러한 그의 통찰을 통해서 볼 때 결국 종교와 과학은 대립되지 않는다. 과학적 탐구는 우주의 창조자인 하느님에 대한 탐구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이 결부돼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종교와 과학의 관계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지속적인 논란을 이루고 오해와 이해가 엇갈리는 영역이다. 샤르댕 신부의 가장 큰 공적은 바로 이 지점이다. 과학적 방법으로 진화 현상론을 세우고 이를 바탕으로 그리스도 중심의 일원론적 세계관을 수립해 종교와 과학의 종합을 시도한 것은 과학에 대한 회의와 미래에 대한 불안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새로운 빛을 비춰준다. 그의 사상은 아직도 탐구할 지역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