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시 아닌 스스로 하도록 이끌어야
1970~80년대의 교실과 교단선진화로 프로젝션 텔레비전과 컴퓨터가 있는 이즈음의 교실은 많은 차이가 있다. 그러나 전자 칠판과 실물화상기 뿐 아니라 유비쿼터스(Ubiquitous) 시스템까지 갖춘 이즈음의 교실에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급훈’과 ‘시간표’이다. 물론 급훈이 있는 액자의 모양은 바뀌었겠지만….
주로 애용되었던 급훈은 ‘착하고 씩씩한 어린이가 되자’, ‘정직한 어린이가 되자’ 등이었다. 이 급훈은 많은 변천을 거쳐 요즈음 어느 고등학교 교실에는 ‘벤츠를 탈 것인가? 티코를 탈 것인가?’라는 급훈이 교실 정면 한가운데 붙어 있는 것도 방송에서 볼 수 있었다.
우리 반 급훈은 ‘스스로, 제대로’이다. 가능하면 아이들의 의견을 듣고 그들의 결정을 따르고자 하는 나의 지향을 다소 거스르게 되지만 우리 반 급훈을 정하는데 교권(?)을 쓰기로 하였다. 그래서 해마다 우리 반 급훈은 ‘스스로, 제대로’이다.
학년 초가 되어 새로운 아이들을 맡게 되면 학부모님들에게 편지를 낸다. ‘아이들이 학습 뿐 아니라 모든 생활을 스스로 할 수 있는 기회를 갖도록 가정에서 좀 기다려 주십사’라는 부탁의 내용이 그 첫째이다. 이 밖에 예의바른 생활을 하도록, 물건을 아껴 쓰는 마음과 습관을 갖도록 가정에서 도와달라는 내용도 들어 있다.
모처럼 청소를 하려고 빗자루를 들었는데 엄마가 ‘청소 좀 하렴’ 하시는 말씀을 들으면 슬그머니 청소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는 것은 한 번쯤은 경험하였을 것이다. 이처럼 누군가의 지시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과 자발적인 선택의 차이는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아이들은 정말 스스로 하고 싶어 한다. ‘스스로’ 했을 때의 기쁨과 그 자신감은 그 아이를 빛나게 하고 웃게 하고 신나게 만들어, 시키기도 전에 자신의 할 일을 하게 한다. 그리고 또 기뻐하고 행복해 한다. 이 기쁨과 행복은 몸과 마음을 건강하고 자유롭게 하여 공부 뿐 아니라 또래 친구들과 잘 어울리며 바람직하게 자라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한 때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습니다’라는 TV 광고가 나온 적이 있었다. 교직을 하기 전에 이 광고를 보며 전율을 느낀 적이 있었다. 딱히 이 광고의 영향은 아니겠지만 지금 학교나 사회는 오로지 1등을 위한 나머지가 있는 듯하다. 상급학교와 같지 않지만 초등학교에서도 ‘우수아’가 되기 위한 학부모의 노력은 급기야 아이의 숙제도 일기도 엄마가 하고, 가방정리와 친구관리까지도 엄마가 대신한다. 누가 하든지 눈에 보이는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에는 제대로 준비하고 제대로 순서를 지켜야 마땅한 결과가 있는 것이다. 나비가 고치를 찢고 나오는 고통의 시간이 있어야 힘차게 훨훨 날아다니듯, 고치를 찢는 과정이 고통스러워 보인다고 대신 찢어주면 그 나비는 제대로 날아보지도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아이들이 그 나이에 경험해야 하는 것을 제대로 겪도록 안내하고 지속적으로 돌보아 주어야 한다. 일기쓰기는 자신에 대해 의식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통합적인 학습이다. 그리고 연속적인 과정을 통한 지도이므로 ‘제대로’라는 과정의 성실성을 익히기에 참 좋은 방법이다. 우선은 매일 쓰는 것에 중점을 두어 칭찬을 한다. 일정기간이 지나고, 매일 일기 쓰기가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 단계가 되면 바른 글씨에, 그 다음에는 주제 선정의 순서로 단계적으로 지도하면서 ‘제대로’ 교육의 지향을 둔다.
‘나는 나다’ 하신 하느님께서 당신 닮은 모습으로 인간을 창조하시고 ‘참 좋으셨다.’ 그래서 춤을 덩실덩실 추지 않으셨을까? 그리고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당신의 외아들을 보내시어 어둠 속에 있는 우리를 구원하셨다. 창조하신 원래 모습으로 회복시키기 위해서.
우리나라의 많은 학교들 중에 한 귀퉁이에서, 작지만 하느님 나라를 위한 작은 가르침을 위해 교사인 나는 ‘스스로, 제대로’ 배워야 함을 다시 생각한다.
박원희 수녀(노틀담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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