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가을 비오는 어느 날, 서울 절두산 성지. “제 몸속에 흐르는 더러운 피를 모두 깨끗이 씻어 주십시오. 진정으로 당신을 따르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30대의 한 청년이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었다. 기도에 매달린지 벌써 54일째 였다.
10년 전, 박진도(바오로. 48)씨는 야간업소를 전전하는 무명가수였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던 시절. 뒷골목에서 싸움도 했고, 술도 많이 마셨다. “한때 세상 모르고 철없이 굴었던 시절”이었다. 게다가 하는 일 마다 제대로 되는 것이 없었다. 돈도 없는 그에게 노래를 주겠다는 작곡가도 없었고, 혼자 힘으로 어렵게 만든 음반은 실패하기 일쑤였다. 게다가 1990년 시작한 음반제작 사업은 부도를 맞았다. 엄청난 빚을 떠안아야 했다. 자신은 물론이고 가족들도 함께 전 재산을 탕진했다. 자신을 아끼던 형이 간암으로 세상을 떠난 것도 이 즈음이었다.
“자살을 하려 생각했죠. 세상 사는 것이 의미가 없었거든요.”
박씨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것은 기도였다. 절두산 성지를 찾아 54일간 기도를 했다. 그런데 그 기도가 하늘에 닿았다. “하느님은 저에게 통회를 허락하셨습니다. 과거의 잘못된 습관들, 방탕한 삶 등에 대해 진정으로 통회했습니다. 통회를 하고 나니 세상 모든 부귀 영화가 쓰레기로 보이더라구요.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식당에 가는 것이 한없이 부질없다는 것을 그 때 깨달았습니다.”
이후 박씨는 달라졌다. 자신의 달란트를 소외된 이웃과 나누기 시작했다.한 달에 2~3번 어려운 복지시설을 찾아 무료 공연을 펼쳤다. 사람을 만날 때면 늘 마음속으로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습관도 이때 생겼다. 기도할 때면 늘 “주님 지금 제 몸속에서 타고 있는 당신을 사랑하는 불길이 꺼지지 않도록 해 주세요”라고 기도했다.
그렇게 지내던 2000년 봄 어느날. ‘야간열차’ 음반을 녹음했다. 마지막이었다. 어렵게 야간업소를 전전하며 모은 마지막 남은 돈을 모두 털어 넣었다. 이번에 실패하면 끝이었다. 그런데 그 ‘야간열차’가 대박을 터트렸다. 텔레비전과 라디오에서 출연 요청이 잇달았다. 배호 이후의 모처럼 모습을 드러낸 실력파 저음가수라는 평도 얻었다. 각 지방자치 단체의 행사 출연 요청도 쇄도했다. 게다가 2004년 발표한 ‘똑똑한 여자’의 연이은 히트는 박씨가 트로트 계에서 입지를 굳히는 계기가 됐다.
“보잘 것 없는 저에게 해 주신 모든 것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박씨는 늘 겸손해 지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한다. 요즘도 복지시설 방문 무료 공연을 멈추지 않고 있다.
박씨는 “인생의 중요한 시점에는 늘 남산을 오르고, 절두산 성지를 찾았다”고 했다. “남산은 서울 가장 높은 곳에서 하느님과 만나기 위해서 이고, 절두산은 죽음까지 바쳐가며 하느님을 사랑한 순교 성인들의 신앙을 묵상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취재를 마친 박진도씨에게 어디로 가냐고 물었다. 박씨는 “남산에 오르려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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