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가 먼저 말하게 이끌어야
마테오 리치는 〈천주실의〉에서 서양 선비(西士)가 먼저 말하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중사(中士)가 질문하고 서사가 귀기울이게 하면서 이 작품의 서두를 연다. 이것은 동아시아인이 자기 ‘입’의 존재 이유를 구현하게 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입의 존재’ 가로막지 않아야
우리가 알듯이, 서구 교회는 식민지배와 결탁된 선교를 통하여 파괴와 살상, 억압과 불의한 지배의 정당화 등 다양한 과오를 범하였다. 2000년 대희년에 고 요한 바오로 2세는 “진리를 섬긴다는 명목으로” 사랑과 평화, 사람들의 기본 권리를 훼손하고 다른 문화와 종교 전통을 파괴했던 잘못을 기억하면서 참회를 요청한 적이 있다. 그런데 식민지배 세력에 협력하며 폭력을 앞세워 선교하면서 범한 이런 과오들은 사실은 그리스도인들이 자기말만 하였지 들을 줄 몰랐던 데서 비롯된 것이다. 듣고 싶어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데는 충분히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채, 강제로 듣게 하였다. 그리고는 여기에 저항할 때, 폭력으로 사람의 생명까지 파괴하고, 그들의 문화를 파괴한 아픈 역사가 있었던 것이다.
리치의 대화법의 의의는 이런 시대 정황에 비추어볼 때 비로소 선명해진다. 리치는 그리스도교의 건강한 자기표현으로 대화를 지켜가면서, 너의 ‘입의 존재 이유’를 가로막지 않아서, 한을 풀어 주는 역할을 수행한다. 오늘의 교회 구조에서 질문할 수 있는 교육과 신앙 실천, 질문할 수 있는 관계를 구현하는 과정에서 이같은 대화 구조가 갖는 혁명적 의의를 바로 인식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둘째, 리치는 자기가 말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상대가 먼저 말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것은 너를 너로 존중한다는 것을 뜻한다. 자기가 지식을 독점하고 있다는 환상에서 깨어날 때, ‘너’에 대한 존중이 싹트고, 그 존중이 ‘너’에게 질문할 수 있게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것은 ‘너’에게 비판받을 수조차 있는 현실을 수락한다는 것을 말한다. 이를테면 질문을 받으며 비판받을 영성적 뱃심이 없이는 대화란 성립되지 않는 것이다.
셋째, 리치는 질문에 감사한다. 건강한 물음은 기본적으로 관심을 뜻한다. 관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역량을 갖추고 그런 활동을 하지 않는 한, 깊이 있는 사회적, 문화적, 영성적 생명을 낳을 만한 물음을 발생시키기 어렵다. (그러니 믿음의 진리에 관한 충실한 물음 앞에서 감사하지 않을 그리스도인이 어디 있으랴.)
말하자면, 리치가 그동안 동아시아 문화에 대한 존중에 근거하여 자기의 존재를 걸고 소개한 서학 비전과 그런 속에서 펼쳐 온 서학 증거가 성과를 거두면서 저러한 질문을 발생시켰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와 동일한 맥락에서, 이런 성과를 낳을 수 있었던 리치의 신학적, 사목적 자신감과 동아시아인들에 대한 신뢰가 동아시아인들의 질문에 감사할 영성적 여백을 갖추게 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느님 안에서 일하면서 그분이 허락하시는 결실을 선물받아 본 경험이 부족하면 할수록, ‘너’의 질문에 감사할 영의 능력을 갖추기란 그만큼 더 어려워질 것이다.
청중 중심의 대화법 필요
넷째, 리치는 수준에 따라서 진리의 길을 가도록 폭을 넓혀 놓는다. 그는 중국의 사상 전통에 깊이 관심을 기울이면서도 생활 현장에서 논거를 찾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이런 노력은 자기의 청중이 따라올 방도를 다양하게 제시할 역량으로 귀결되는데, 이것은 청중의 갈망에 귀기울이고자 하는 그의 지극한 정성의 한 결실이다.
예를 들면, 그는 신의 존재를 입증하면서 세 유형으로 분화시켜서 논의를 전개한다. 그리하여 생활 체험을 통해서 알아들을 청중과 쉬운 사변을 통해서, 그리고 좀더 본격적인 사변을 통해서 알아들을 청중을 함께 고려하는 넉넉함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천주실의, 송영배외역, 서울대학교출판부, 2000, 45∼61쪽 참조).
말을 잘 못하거나 심지어는 갈피를 잡지 못하게 말하는 것보다 더 안 좋은 것이 있다. 그것은 사고(思考)와 이해를 강요하기 위하여 말을 하는 것이다. 신앙을 전한다는 사람들의 사목적이거나 영성적이거나 신학적인 사고 표현이 종종 이런 일방성을 드러내는 오늘의 현실에서, 리치의 저 청중 중심의 대화법은 참으로 교회의 존재를 걸고 익힐 만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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