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종교 안에서 ‘일치와 화해’ 이룬다
이슬람교, 사회전반에 절대적 영향 미쳐
치안 불안… 선교도 일부지역에 국한돼
세계 최대의 이슬람국가는 어디일까? 흔히 중동의 어느 한 나라를 떠올린다. 하지만 세계 최대의 이슬람교도들이 있는 곳은 바로 동남아시아에 위치한 인도네시아(이하 인니)이다.
인니의 인구는 2억4천만명. 그중 85% 가량이 이슬람교도들이다. 가톨릭신자 비율은 2005년 현재 8% 정도로 파악되고 있다.
세계 최대 숫자의 이슬람교도들에 비해 인니의 가톨릭신자들은 ‘소수’이자 ‘약자’로 존재한다. 그러나 이들의 신앙 만큼은 아시아 어느 국가에서보다 탄탄하고 깊이있는 모습을 보인다. 무엇보다 ‘다양성’ 안에서 ‘일치’를 실현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은 현대 아시아교회 선교에 희망의 빛을 던진다.
다양한 종교 종족 언어
인니의 개관을 살펴보면 우선 방대한 숫자에 놀라게 된다.
인니의 인구수는 세계 4위이며, 300여종의 종족이 국민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언어도 다양해 500여가지에 달한다. 게다가 인니는 1만7000여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구성된 섬나라이다.
섬나라 특성상 인니는 오래전부터 외국과의 빈번한 교류를 가졌다. 무역인들과 동행한 선교사들도 오래 전 이 섬에 발을 내딛고 전교활동을 펼쳤다. 그렇게 인니로 유입된 종교는 가톨릭 뿐 아니라 이슬람교와 힌두교, 불교 등 다양하다.
현재 인니 정부가 인정하고 있는 종교는 가톨릭과 이슬람, 개신교, 힌두교, 불교 등 5개 종교이다. 또 가톨릭을 비롯해 이슬람 불교 힌두교 기념일은 모두 동등하게 공휴일로 정해 화합을 꾀하고 있다. 배경에 인니만이 갖고 있는 판차실라(Pancasila)의 기본이념이 작용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우리나라와 같은 해인 1945년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한 인니는 판차실라를 국가이념으로 헌법을 제정하고 ‘관용의 통치철학’을 실현하려고 노력한다. 판차실라는 신앙의 존엄성, 인간의 존엄성, 통일 인도네시아, 대의 정치, 사회정의 구현 등을 바탕으로 한 국가이념이다.
16세기 선교사 복음전파
인니 가톨릭교회의 시작은 1534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유럽의 가톨릭 선교사들은 향료를 얻기 위해 말루쿠(Maluku)섬을 찾은 포르투갈 상인들과 함께 인니에 도착했다.
대표적인 선교사는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예수회)로 1546~154
7년 말루쿠섬에서 복음을 전하며 수많은 지역민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그러나 개신교도들이 설립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포르투갈 상인들의 일을 독점하면서 가톨릭신자와 선교사들을 말루쿠에서 내몰기 시작했다. 가톨릭 세례를 받은 말루쿠 주민들도 개신교로 개종하는 사례가 빈번해졌다. 어쩔 수 없이 말루쿠섬을 떠나게 된 포르투갈 상인들과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및 동료 신부들은 1555년 플로레스(Flores)와 티모르(Timor)섬에 정착해 복음을 전했다.
이후 플로레스와 티모르는 인니 최고의 가톨릭선교지, 복음전파와 성소양성의 구심점으로 자리매김했다. 또 예수회의 뒤를 이어 1900년대 이후부터는 ‘말씀의 선교 수도회’가 진출해 복음 선포 역할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인니의 지역 특성상 인니교회 각 교구도 큰 섬들을 중심으로 나눠진 구조를 보인다. 전국 10개 지역으로 구분된 관할구역에는 11개 대교구를 포함해 총 37개 교구가 설립됐다.
하지만 인니는 지구상 어느 나라보다 많은 갈등과 분쟁을 겪는 어려움을 안고 있다. 종족과 지역 또는 이질적인 문화 집단 사이에서는 시간의 흐름과 관계없이 팽팽한 긴장이 머무른다. 특히 종족과 종교 차이를 이유로 발발하는 집단적 갈등과 반목은 종종 수면위로 떠오른다.
인니 대부분의 지역에서 이슬람이 우세하지만 플로레스와 티모르, 이리안 자야(서파푸아) 지역은 가톨릭과 개신교가 우세하다. 특히 플로레스섬 주민 90% 이상이 가톨릭신자이다. 또 자바섬의 발리와 롬복지역에는 힌두교도가 90% 이상 자리잡았다.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이 충돌하는 대표적인 지역은 동부 말루쿠섬 중심도시 암본 지역이다. 말루쿠섬의 인구는 200여만명으로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거의 반반의 비율을 보인다. 이곳은 지난 1999~2002년에는 9천여명의 사망자를 내는 유혈충돌도 겪어내야했다. 이후 유혈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정부 후원으로 말루쿠 지역 그리스도교도들과 이슬람교도들이 평화조약을 맺고, 종교지도자들과 치안관리들은 종파간 폭력이 일어나지 않도록 수없이 요청하고 있지만 반목의 뿌리가 여전히 남아있는 형편이다.
인니 최대 가톨릭 선교지의 하나인 동티모르는 지난 99년 독립한 바 있다.
도전받는 교회공동체
세계 최대 이슬람국가에 자리잡은 인니 가톨릭교회는 현재 안팎에서 도전을 받고 있다.
17세기부터 350여년간 서방세력의 지배를 받으며 그리스도교 선교사들이 인니를 찾았지만 타국가에 비해 선교율이 낮은 것은 인니교회가 지속적으로 해결해야할 주요 과제이다.
긴 선교시간이 있었지만 외세 지배기간 동안 인니 전 지역에서는 게릴라식 독립운동이 펼쳐져, 대도시를 중심으로 한 몇몇 지역을 제외한 치안이 불안한 곳은 사실상 선교가 불가능했다. 때문에 복음전파가 일부지역에 국한된 모습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게다가 사회발전과 세계화에 따른 부작용으로 교회 내적인 어려움도 크다.
인니 교회 지도자들은 “심각한 농촌의 빈곤이 가족형태를 변화시키고, 맞벌이가 늘어남에 따라 자녀 교육과 양육에 구멍이 뚫리는 결과를 드러낸다”고 지적했다. 또 “대중매체 확산으로 전통적인 가치관 특히 가족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붕괴되는 어려움에 처해있다”고 토로한다. 새로운 선교의 어려움은 물론 기존 신자들을 돌보는 일도 인니 교회에 주어진 큰 과제이다.
외적인 도전은 단연 이슬람 등 타종교와의 화해와 일치 구현이다.
인니에서 이슬람교는 국교는 아니지만 정치와 사회문화 전반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한 예로 인니 주민등록증에는 종교 기재란이 있어 누구나 종교를 선택해야하는데, 대부분 국민들이 자연스럽게 이슬람교를 선택하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그러나 다양성 안에서 일치를 구현하는 노력은 인니 교회 안에서 오랜 기간 꾸준히 이어져오고 있다.
수도인 자카르타에는 아시아 최대의 이슬람사원이 있다. 그리고 바로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둔 건너편에는 고딕양식의 성당이 자리잡고 있다. 이곳 성당의 청소부는 이슬람교도라고 한다. 기자가 잠시 머문 발리의 한 수도회 숙소에도 이슬람교도가 수십년째 안내를 맡고 있었다. ‘관용’과 ‘일치’를 향한 노력은 근사한 구호를 내세운 이론 등이 아니라 바로 낮은 곳에 자리잡은 우리 이웃의 일상 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인구 90% 가톨릭신자 성소자 최다 양성 지역
◎대규모 ‘신앙촌’ 플로레스섬
인니 동남쪽에 위치한 플로레스(Flores)섬은 남한 면적 1/4 크기의 대규모 ‘신앙촌’이다.
17세기 유럽 선교사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복음이 전해진 이후 현재까지도 90%의 인구가 가톨릭신자이다. 특히 플로레스섬 전 지역에서 초기 신앙을 고스란히 간직한 신앙인마을과 성당 등을 만나볼 수 있다. 이곳 신자들은 열대밀림 오지에도 사람들이 사는 곳이면 성당과 경당을 짓고 신앙공동체를 이뤄왔다.
행정구역상 엔데(Ende)주에 속하는 플로레스섬은 엔데대교구와 루텡(Ruteng).마우메레(Maumere).라랑투카(Larantuka)교구 등 4개 교구로 나눠져있다. 또 인니에서 성소자가 가장 많이 양성되는 지역으로 관심을 모은다. 현재 2개의 대신학교와 5개의 소신학교가 운영되고 있다.
한편 인니는 농.광업에 기반을 둔 개발도상국으로 1인당 GNP는 1천달러 정도로 낮은 편이다. 국내총생산의 1/4을 차지하는 농업 부문에 총노동력의 절반 가량이 종사한다.
사진설명
▶마우메레 교구 주교좌성당 옆 성모당에서 레지오마리애단원들이 회합을 마친 후 기도하고 있다.
▶포르투갈 선교사 활동을 기념하는 라랑투카 교구 순례지.
▶플로레스섬은 농업지역으로 다른 섬에 비해 경제적으로 낙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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