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찾아오는 이에게도 희망을
정기모임으로 정보와 친교 나눠
공소공동체 봉사자로 이끌 계획
‘전형적인 농촌교구’. 경북 북부 농촌지역을 관할구역으로 하는 안동교구의 대표적 수식어다.
또한 199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이뤄진 이농현상으로 해마다 2∼3만명이 농촌을 떠나고 있는 지역사회의 문제가 곧 교구의 현실이며, 당면 과제이다.
이러한 어두운 현실 속에서 희망을 심기 위해 안동교구는 농민사목실태조사를 펼치는 등 농촌·농민사목을 교구 사목방향의 큰 줄기로 삼았다. 그 결과 ‘농민들의 아픔과 기쁨을 함께’라는 농민사목특별교서를 발표, 지역살리기에 교구민이 동참해줄 것을 강조했다.
교구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서 ‘떠나가는 농민을 잡기 위해 농촌에 희망을 심는 것도 중요하지만, 농촌을 찾아오는 귀농자들에 대한 관심 또한 필요하다’는 제안을 접하게 된다.
귀농자(歸農者). 해마다 농촌을 떠나는 수에 비해 도시에서 농촌을 찾아 오는 이는 수적으로 비교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적은 수라도 신앙 안에서 어려움을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만들었다.
귀농가족 모인 날
2004년 1월, 교구 내 곳곳에서 삶의 터전을 이루고 있는 귀농가족 30여명이 처음으로 한데 모였다. 귀농자만이 겪는 어려움들을 스스럼 없이 나누며 서로 의지하고, 보듬는 신앙공동체가 탄생했다. 그뒤 해마다 1월과 8월 두차례 정기 모임을 갖고 있다.
1월에는 영성교육과 삶의 나눔을, 8월에는 친교모임을 통해 농산물 생산과 판매 정보 공유의 시간을 갖는다.
올 8월 23일 경북 봉화 춘양공소에서 귀농가족 모임이 열리던 날, 멀리 울진 영덕 청송서부터 봉화군 내 흩어져있는 이들까지 모였다. 이날 교구장 권혁주 주교 주례로 미사를 봉헌하고, 친교의 시간을 가졌다.
권주교는 “여기저기 떨어져있는 형제자매들이 유대관계를 맺으면 농촌의 어려움을 덜게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모임을 갖게 됐다”고 말하고 “농사는 생명을 가꾸는 거룩한 일이며, 하느님만을 주인으로 섬기며 살도록 해준다”고 말했다. 이어 “그간 공소를 방문하면서 가진 것이 풍족하지 않아도 현실에 만족하면서 기쁘게 살아가는 농부들을 만났고, 그들에게서 농촌의 희망을 엿볼 수 있었다. 아픔이 있고 힘들지만, 농촌에서 일하며 하느님의 특별한 축복과 사랑을 받고 있음을 기억해야할 것”이라고 격려했다.
점심 후 귀농 선후배간이 함께한 자리. 농사에 대한 선배들의 노하우가 이어진다. 모종을 심는 방법에서부터 농약뿌리는 시기까지…. 여러 정보들이 오간다.
귀농 3년째인 손병희(빈첸시오.37.영덕본당)-김피영(카타리나.35)씨 부부는 선배들의 조언을 하나라도 더 듣기 위해 귀를 기울인다. 김씨는 “처음 시골로 왔을 때 이웃주민들에게 도움 얻기도 힘들었고 막막했었는데, 이 모임에 나오면서 선배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는다”면서 “이웃의 마음을 먼저 얻어야한다는 조언을 듣고, 궂은 일까지 나서 도우면서 노력하다보니 이제는 농사 뿐 아니라 이웃과의 관계에서 큰 어려움 없이 잘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 모인 이들이 귀농한 이유도 갖가지다. 땅을 지키기 위해,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으로 노후를 보내기 위해, 실직 후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저마다 뜻을 갖고, 몇해를 준비하며 농촌에 정착했다. 귀농 후 겪는 첫 어려움은 지역주민과의 마찰이라고 입을 모은다. 젊은층은 젊은층대로, 중장년층은 그들대로 마을공동체에 동화되지 못하고, 물과 기름처럼 겉도는 상황이 되기도 한다.
교구에서는 귀농가족모임이 신자들간의 만남을 넘어서 마을공동체 안에서 주민들과 연대하며 봉사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이끌 계획이다.
나눔과 섬김의 공동체로
사목국장 안상기 신부는 “낯선 지역에서 적응하기가 쉽지 않은데, 우선 공소공동체와 귀농자를 연결해 고령화되어가는 농촌현실 속에서 귀농하는 젊은층들이 공소사목을 활성화시키는 계기를 마련하고, 생명농업을 통한 생산물은 가톨릭농민회와 연계해 판로를 개척할 수 있도록 도울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 교구 귀농가족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이들은 50여명. 사목국은 앞으로 교구내 다른 귀농자들을 파악해 지역별로 체계적 연결고리를 만들어 소모임을 활성화시킬 방침이다.
또 일년에 두차례 갖는 모임을 분기별로 열어 실질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연대의 장으로 발전시켜나갈 계획이다. 또 귀농자들이 농촌에서 뿌리내리고 잘 살 수 있도록 사목적 배려와 관심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 터에서 열린 마음으로 소박하게 살고 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서로 나누고 섬김으로써 기쁨 넘치는 하느님 나라를 일군다’는 교구 사명선언문에서 보듯 땅을 일구며 땀흘리는 모든 이들과 함께 친교의 공동체로 나아가려는 의지가 드러난다. ‘농촌교구’ ‘작은 교구’ ‘가난한 교구’로 그려지기도 하지만,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고 그 안에서 기쁨과 행복을 찾는 모습에서 안동교구의 내일은 밝다.
“땅을 떠나서는 못사는 이제는 진짜 농군이죠”
■ 귀농 5년째 이한열씨의 삶
“이제는 진정한 농군이죠. 5년째 농사를 짓다보니 흙냄새가 정겹고, 이제 땅을 떠나서는 못살 것 같습니다.”
이한열(가브리엘.54.봉화본당)씨는 2002년 경북 봉화군 물야면으로 내려왔다. 21년간의 한국은행 생활을 접고 1998년 조기퇴직했다. 4년간 농사지을 땅을 구하러 다닌 끝에 정착할 곳을 정했지만, 막상 부인 김순희(가브리엘라.54)씨의 반대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결국 혼자 산골에 내려와 한두평되는 농막에서 지내며 사과농사를 시작했다. 아무리 공부를 하고 준비를 철저히 했다지만, 시련에 시련이었다.
“처음 심은 사과나무 1000그루 중 300그루가 죽었지요. 물론 절반 가까이 살아남았기에 희망의 끈은 놓지 않았죠. 농촌의 삶은 밖에서 보듯 여유롭거나 전원생활의 낭만을 느끼기엔 현실적인 어려움이 큽니다.”
3년간 혼자서 실패를 거듭하며, 과수에 대한 지식을 조금씩 쌓아갔다. 아담한 보금자리도 마련했다. 결국 부인 김씨도 남편의 고집에 두손을 들고 시골로 내려왔다.
이제 부부가 함께 4500평 규모의 사과농사를 짓고 있다. 힘에 부딪히기도 하지만, 이른 새벽부터 밤늦도록 땀의 축복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귀농생활 5년째. 이제는 귀농자의 꼬리표를 떼고 싶다는 이씨. 그간 이웃과 마음고생도 컸다.
“농사를 지으며 부닥치는 시련보다는 처음에는 이웃 주민들과의 관계가 더 힘들었습니다. 혼자서 살아갈 수도 없고, 시골이다 보니 몇 세대되지 않아 이목은 집중되고….”
그러던 중, 2004년 1월 교구에서 귀농자가족모임을 갖는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 모임에서 초대팀장을 맡아 2년간 이끌었다. 그는 “귀농자모임은 같은 어려움과 아픔을 겪는 이들이 만나서 마음의 문을 열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고, 새로 온 귀농자들을 신앙 안에서 엮어주는 통로”라고 말했다.
이씨는 귀농하려는 이들에게 당부한다. “조바심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귀농자들의 한계는 5년이라고 봅니다. 당장의 수확없이 땅에 지속적으로 투자를 해야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이웃과의 융화가 더 시급한 과제입니다.”
이씨가 있는 봉화군 내에 최근들어 귀농자들이 늘고 있다. 예전에 봉화본당 기타구역으로 묶였던 물야면은 이제 13가정의 귀농가족으로 이뤄진 제8구역이 됐다.
올초 같은 구역신자들과 함께 ‘성심작목반’도 만들었다. 같은 신앙 안에서 서로 돕고 의지하기 위해서다. 주일이면 한 형제로, 작목반 회의때는 한 동료로 공동체를 맺고 있다.
이씨는 올해도 사과수확량이 그리 많지 않다. 냉해가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을 햇살 아래 검게 그을린 얼굴에서는 결실을 앞둔 농군의 희망이 묻어난다.
사진설명
▶교구장 권혁주 주교(앞줄 가운데)와 교구 귀농가족들이 8월 23일 경북 봉화군 춘양면 춘양공소에서 올 들어 두번째 모임을 갖고 함께 기념촬영했다.
▶이한열씨와 부인 김순희씨가 가지마다 영근 사과를 보며 환한 웃음을 짓고 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